▲ ‘오바마 열풍’이 박근혜 전 대표 등 차기 대권주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특히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는 여야 ‘잠룡’들은 ‘오바마 돌풍’을 예의주시하면서 대권 전략을 급수정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기 대선까지는 아직도 4년이란 세월이 남아 있지만 변화를 선택한 미국 정치 풍향이 차기 대권지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잠룡들은 오바마 당선인의 파란이 자신들의 ‘대망론’에 득이 될 것이란 아전인수식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오바마 돌풍’이 차기 대권구도에 어떤 영향과 변수로 작용할지 여야 잠룡들의 대권 기상도를 그려봤다.
오바마 당선인의 ‘대선 혁명’ 소식을 접한 여야 잠룡들의 셈법은 복잡하기만 하다. ‘오바마 돌풍’이 복잡·미묘한 국내 정치상황과 맞물려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아직 섣부른 예단을 불허하는 상황이지만 잠룡들 모두 저마다 아전인수식 청사진을 내놓기에 바쁘다.
여야의 젊은 정치인들은 40대 오바마의 당선을 계기로 ‘차세대 기수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 1960년 존 F 케네디가 제35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70년대 초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이른바 ‘40대 기수론’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오바마 돌풍’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까지만 본다면 박 전 대표는 여야를 망라하고 대적할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확고한 대권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오바마 돌풍’이 몰고 온 ‘변화와 도전’의 메시지가 탄탄한 대권가도에 암초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초의 미국 여성 대통령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여성 후보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하고 민주당 경선에서 낙마한 사실도 박 전 대표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정치인인 오바마 당선인이 진보성향으로 서민·중산층을 대변하고 있는 반면 박 전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보수·기득권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도 오바마 돌풍이 껄끄럽게 다가오는 대목.
하지만 일부 정치 분석가들은 오바마 당선인이 철옹성 같았던 ‘인종의 벽’을 넘는 대파란을 연출했듯이 박 전 대표도 변화의 바람을 타고 여성 콤플렉스를 극복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 왼쪽부터 정몽준 최고위원, 김문수 경기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 ||
하지만 ‘오바마 돌풍’은 두 사람이 국지성 구름 속을 빠져나와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정치적 배경이나 경력 면에서 신인이나 다름없었던 오바마의 파란은 조직력과 전통적 텃밭을 중시해 온 국내 선거 문화에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정 최고 측은 ‘오바마 돌풍’처럼 ‘변화’를 기치로 서서히 대권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중장기 전략을 마련한 상태다. 이를 위해 정 최고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과 국제축구연맹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터득한 국제감각을 최대한 활용해 오바마 행정부와 관계를 다지면서 대권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최고는 특히 한나라당이 미 대선 결과 후속 대책 마련을 위해 설치한 한미관계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어 오바마 측과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상태다.
김 지사 측도 “새로운 변화의 트렌드가 발생한 만큼 김 지사의 개혁 마인드와 도전정신이 차기 대권정국에서 ‘화두’로 부상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당내 잠룡들에 비해 조직력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열악한 정치환경을 극복하고 최고봉에 오른 오바마의 정치역정을 벤치마킹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40대인 오바마 당선자의 선거 혁명 이후 국내 정치권 일각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차세대 기수론’을 부각시켜 21세기 트렌드형 리더십을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이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 등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는데도 그 반사이익을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잠룡들은 모처럼 ‘오바마 돌풍’에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특히 지난해 대선 참패와 4·9 총선에서 고배를 마시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야인생활을 하고 있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손학규 전 대표 입장에선 더 없는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
두 사람은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내년 4월 재·보선 출마설과 함께 ‘조기 복귀론’이 나돌고 있지만 여론은 아직 차가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진보 성향인 오바마 행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는 민주당 내 유력한 차기주자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당내에서도 민주당에 유리한 지금의 정치환경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두 사람의 역할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 다시 중심으로 민주당은 정치적 색깔이 비슷한 오바마 행정부의 긍정적 영향을 기대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동영 전 장관, 손학규 전 대표, 정세균 대표, 추미애 의원. | ||
손 전 대표는 지난 9월께부터 강원도 춘천 인근 대룡산 자락에 위치한 친척 농가에서 부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야인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손 전 대표가 서울과 춘천을 오가면서 독서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절치부심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는 손 전 대표의 대권 복심에 비춰볼 때 그도 ‘오바마 돌풍’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하며 정계 복귀 플랜을 서두를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6일 기자와 만난 손학규계의 한 의원은 “손 전 대표가 미국 대선에 큰 관심을 보여왔던게 사실”이라며 “오바마 당선 이후 당내 분위기와 여론 추이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계 복귀를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와 추미애 의원도 ‘오바마 돌풍’에 반색을 나타내고 있다. 두 사람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민주당의 지지율에 비춰볼 때 대권 기상도 또한 잔뜩 흐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정체성과 정책 코드가 유사한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정체된 당 지지율을 높이고 대권가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분위기다. ‘오바마 돌풍’을 접한 정 대표가 “북핵 문제나 북미 관계 개선 등 한반도 정세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한 것이나 추 의원이 “오바마의 당선은 변화 이슈를 선점하고 신뢰를 받았기 때문”이라며 한껏 고무된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러한 기대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