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왼쪽) 사라 에버슨 부부가 각지에서 구호품으로 보내온 아기옷을 들어보이고 있다. | ||
지금 미국은 여섯 쌍둥이를 낳은 한 부부의 ‘사기극’이 화제가 되고 있다. 낳지도 않은 쌍둥이를 낳았다고 속인 간 큰 부부는 미주리주 그레인밸리에 거주하는 사라 에버슨(45)과 남편 크리스(33). 이들이 지역 주민들을 속이는 것부터 시작해 아예 언론까지 속인 데 대해 많은 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도대체 어떻게 해서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는지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이들의 사기 행각이 문제시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부금과 구호 물품까지 챙겼다는 데 있다. 심지어 인터넷에 구호 사이트까지 개설해 미 전역에서 기부금을 조달받은 이들은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모든 범행을 자백하고 꼬리를 내렸다.
지난 4월 10일 지역 신문인 <디 이그제미너> 1면에는 여섯 벌의 아기옷을 펼쳐 보이고 있는 에버슨 부부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렸다. 여기에는 에버슨 부부가 지난 3월 여섯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과 함께 쌍둥이들에 대한 다소 구체적인 설명이 실려 지역민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여섯 쌍둥이를 낳았다는 사라는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세 쌍둥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매달 병원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아이가 하나씩 늘었다”면서 웃었다.
이어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아들 넷과 딸 둘을 낳았다고 밝힌 그녀는 하나는 금발, 둘은 붉은 머리, 나머지는 갈색 머리라는 다소 구체적인 설명도 곁들였다.
또한 그녀는 임신 중 자신이 겪었던 애로사항도 구체적으로 털어 놓았다. 이미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다른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우선 몸이 너무 무거워서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다. 옆으로 누울 수도 없었으며, 배가 너무 커서 숨도 짧게 내뱉어야 했고 말하기도 힘들었다”면서 임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막달에는 뱃속의 아기들이 돌아가면서 발길질을 하는 통에 20분 이상 잘 수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부부의 구체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정작 주인공인 여섯 쌍둥이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쌍둥이들을 볼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들 부부는 “아기들의 건강 상태가 양호하지 못해 아직 병원에 있다”고 말하면서 직접 아기들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여섯 쌍둥이 모두 몸무게가 0.8~0.96kg에 불과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라는 “아기들이 보고 싶어서 죽겠다. 떨어져 지낸다는 게 정말 견디기 힘들다”면서 울먹였다. 사진 대신 이들이 기자에게 내보인 것은 쌍둥이들의 초음파 사진이었다. 그러면서 아기들의 몸무게가 적어도 2kg은 넘어야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이들 부부는 병원 측에서 아기들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여태 사진 한 장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유는 밝힐 수 없지만 남편의 가족들이 쌍둥이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위험한 상태라는 다소 의아한 말도 했다. 이에 법원으로부터 병원의 주소는 물론 쌍둥이들에 대한 일체의 정보도 밝혀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이들의 형편이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역민들은 이미 수주째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한 자선단체는 이들 부부를 위한 구호 단체를 설립했는가 하면 남편의 직장 동료들은 출산 소식이 전해진 후 일주일 만에 900달러(약 85만 원)의 성금을 모으기도 했다.
▲ 여섯 쌍둥이를 낳았다며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던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나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 ||
이렇게 각지에서 모여든 구호 물품은 기저귀나 분유는 물론, 심지어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도 있었다. 하지만 에버슨 부부는 성금을 모금하는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기왕이면 현금이나 상품권이었으면 좋겠다”고 귀띔했다. 직접 아기들 옷과 물품을 고르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이들의 거짓말은 신문에 기사가 실린 후 불과 하루 만에 모두 들통이 나고 말았다. 이들의 꼬리가 잡힌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도우려는 온정의 손길이 너무 많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지역 경찰서로 “어디로 성금을 보내면 되느냐”는 문의전화가 곳곳에서 쇄도했다. 이에 조사를 시작한 경찰은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캔자스시티의 한 병원에서 여섯 쌍둥이를 낳았다는 부부의 주장과 달리 수사 결과 어느 곳에서도 여섯 쌍둥이를 출산했다는 기록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경찰은 에버슨 부부를 불러 추궁했고, 결국 이들 부부는 한 시간 만에 모든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크리스는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그랬다.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그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몹쓸 짓을 저질렀다”면서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기 행각은 쉽게 용서받을 수 없을 듯하다. 수사 결과 이들이 과거 저질렀던 비슷한 사기극들이 하나둘 차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라의 전 직장 보스인 헬렌 브라운은 “지금까지 열 번도 넘게 임신했다고 말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아기를 낳은 걸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다섯 쌍둥이를 임신했다면서 이름 목록까지 보여주었지만 아기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5~6년 전에는 교회 신도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사기를 쳤다. 당시 그녀는 한 여성 신도에게 다가가 여섯 쌍둥이를 임신 중이라면서 초음파 사진을 보여 주었다.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곧 수개월 동안 자원봉사를 통해 무료 급식을 제공해주었다. 하지만 몇 달 후 그녀는 “아이들을 사산했다”면서 울먹였고 더 이상 교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현재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면서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부당하게 모은 성금과 물품이 얼마나 되는지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이들의 사기 행각이 처벌받아 마땅하다면서 따끔한 매를 들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미국인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은 그 액수를 떠나 사람들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상대로 장난을 쳤다는 사실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