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채진 검찰총장이 정·관계를 겨냥한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를 시사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실제로 KT·KTF 납품비리와 관련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고 일부 여권 거물급도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프라임 비자금 사건에는 참여정부 핵심 실세와 구 여권 몇몇 중진 등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은 특히 편파·보복 사정 논란을 불식시키고 ‘정치 검찰’이란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참여정부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강원랜드 비자금 사건과 신성해운 로비 사건에 대해서도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규명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칼날을 세운 검찰의 서슬 퍼런 사정 드라이브 속으로 들어가 봤다.
“정·관계 거물급을 겨냥한 본격적인 사정태풍이 몰아 칠 것이다.”
11월 12일 기자와 만난 검찰 고위 관계자의 일성이다. 이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공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전 방위적인 사정 드라이브는 ‘대어’ 사냥을 위한 정지작업 성격이 짙었다”며 “그동안 편파·보복 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저인망식 수사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고 있고 정·관계 거물급들이 연루된 정황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임채진 검찰총장도 11월 10일 대전 고·지검 이전 10주년 행사에서 정·관계를 겨냥한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를 시사한 바 있다. 임 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공기업 수사와 관련해 “지난해 1월부터 올 5월까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등으로 공기업에 대한 사정활동을 하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지난 5월 14일부터 공기업 수사를 시작했다”며 “최근 들어 수사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관계를 겨냥한 고강도 사정몰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강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검찰 주변에서는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거물급 사정 리스트’가 또다시 나돌고 있다. 구 정권뿐 아니라 현 여권 핵심 실세도 리스트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들 거물급이 연루된 정황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지만 이들을 확실하게 옭아맬 수 있는 구체적인 물증 확보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물급 리스트’ 정점에는 KT·KTF 납품비리와 프라임그룹 비자금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검찰이 두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데다 최근 가시적 수사 성과물과 함께 거물급 연루 의혹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KT·KTF 사건은 남중수 전 KT 사장과 조영주 전 KTF 사장이 구속되면서 단순한 납품비리 차원을 넘어 정·관계 로비사건으로 확전되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은 이강철 전 수석과 진대제 전 장관 등 참여정부 핵심 실세들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이 전 수석의 보좌관을 지냈던 노 아무개 씨가 조 전 사장 측으로부터 5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진 전 장관의 보좌관 출신인 임 아무개 씨 또한 남 전 사장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은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노 씨와 임 씨가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 전 수석과 진 전 장관이 각각 2005년 10월 대구 재·보궐 선거와 2006년 5월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당시에 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구속된 노 씨와 체포영장이 발부된 임 씨의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이 돈의 용처 및 추가 정치자금 수수 여부, 이 전 수석과 진 전 장관의 인지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두 사람의 진술 내용과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이 전 수석과 진 전 장관이 검찰에 출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KT·KTF 납품비리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진대제 전 장관(왼쪽)과 이강철 전 수석. | ||
검찰 일각에서는 현 여권 일부 핵심 실세들도 KT와 KTF 측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수수했을 것이란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현 여권 거물급인 K 의원과 또 다른 K 전 의원의 경우 선거자금과 후원금 명목 등으로 수억 원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이야기도 떠돌고 있어 사실 여부에 따라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프라임그룹 비자금 사건은 이주성 전 국세청장이 11월 12일 전격 구속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검찰은 지난 10월 16일 프라임그룹 백종헌 회장을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대우건설 인수 청탁과 함께 백 회장으로부터 19억 원짜리 아파트를 받았다가 돌려준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전 청장을 구속했다. 검찰은 백 회장의 횡령 액수가 400억 원대에 달하고 이 전 청장에게 20억 원대 로비를 벌인 정황이 포착된 만큼 다른 거물들에 대한 ‘접촉’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구 정권 및 정·관계 실세들에 대한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백 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참여정부 핵심 실세 L 씨와 구 정권 중진인 A·B 의원 등이 이른바 ‘백종헌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L 씨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폭발력 있는 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참여정부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강원랜드 비자금 사건과 신성해운 감세 청탁 로비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도 탄력을 받고 있다. 두 사건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 상당수 참여정부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됐으나 아직까지 이들에 대한 혐의는 드러나지 않아 표적 수사 논란만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검찰은 강원랜드 비리 의혹과 관련해 부정한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무소속 최욱철 의원의 출석을 강하게 압박하는 등 사건 수사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강원랜드 비자금 수사를 전 방위적으로 진행해 온 만큼 조만간 ‘대어’급이 사정 레이더망에 걸려들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검찰 일각에선 참여정부 시절 요직을 거친 민주당 C 의원도 ‘거물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다.
신성해운 사건과 관련해서는 한동안 정·관계 ‘로비 리스트’가 구체적으로 나도는 등 파문이 예상됐으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됐고 정 전 비서관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검찰의 체면을 구긴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최근 이주성 전 청장이 구속된 만큼 신성해운 사건을 재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신성해운 로비 사건과 관련해 수십억 원이 들어있던 차명계좌 수십 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도 돈의 성격을 규명하지 못하고 사건을 종결했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신성해운 사건의 경우 참여정부 인사들이 상당수 연루된 정황은 포착했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와 핵심 인사의 신병 확보가 지연되면서 편파·기획 수사 논란이 증폭돼 어쩔 수 없이 마무리를 지었던 것”이라며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이 전 청장이 구속된 만큼 실체 규명에 탄력이 붙게 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KT·KTF 납품비리와 프라임그룹 비자금 수사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또다시 강력한 사정드라이브를 구사하고 있는 검찰이 이번에는 ‘대어’ 몰이에 성공할 수 있을지 정·관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