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의원. | ||
정치권에선 이 전 최고위원의 연내 귀국 무산 배후에 이상득 의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친 이재오 그룹은 공성진 최고위원 등을 내세워 전 방위적으로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을 위한 ‘멍석깔기’에 들어갔지만 결국 실패했다. 여기에는 권력의 ‘제로섬’ 게임과 같은 논리가 녹아 있다. ‘대주주’인 이상득 의원으로서는 또 다른 주주인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할 경우 자신의 권력 일부를 내놓아야 한다.
이런 미묘한 역학관계에 있는 양측의 갈등이 폭발할 경우 당내 분열과 혼란만을 가져올 뿐이다. 이를 두려워한 이 대통령은 일단 이상득 의원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봐야 한다. 이 대통령의 ‘진압’에 친 이재오 그룹의 이 전 최고위원 ‘복귀 친정 쿠데타’는 불발로 끝나버렸다. 다시 날개를 달게 된 이상득 의원의 파워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상득 의원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그는 현재 여의도에서 가장 노회한 정치인이다. 권력으로 가는 길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무서운 사람이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일했던 한 핵심인사의 말이다. 그는 정권 인수위원회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현재는 이상득 의원 계파에 완전히 밀려나 있다. 그가 전하는 이상득 의원의 정치적 스타일은 6선을 지내면서 쌓은 경륜에, 권력에 대한 동물적 감각을 갖춘 노회한 정치인으로 통한다. 이상득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정치인이다. 그에 따르면 이 의원은 특히 자신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침범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라이벌은 반드시 ‘제거’ 또는 ‘견제’할 만큼 권력의 생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이와 관련된 몇 년 전 일화 한 토막.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4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 대권 도전을 향해 서서히 발동을 걸고 있었다. 당시 그의 대권 도전을 위해 뛰고 있던 핵심 측근이라고 해봐야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 그리고 이춘식 의원(서울시 정무부시장 역임) 정도였다. 이들 밑에서 일하고 있는 참모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전국 조직 구성과 관련된 회의를 했다. 당시 그 모임에 참여했던 A 씨는 이에 대해 “당시 회의라고 해봐야 동네 사랑방 모임 정도였다. 선거 전략과 관련해 나오는 얘기도 수준이 낮았다. 2005년경에는 캠프라고 할 정도도 아니었다. 잡담 수준의 회의가 끝나면 이춘식 현 의원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점심을 샀다. 이 의원이 식사 때 술을 사주며 동네 형님처럼 다정하게 참모들을 관리하는 정도였다”라고 회고했다.
그런데 모임이 잦아지면서 내부적으로 “너무 회의 수준이 낮고 활동도 미약하다”라는 반성이 나왔다. 그래서 정두언 의원 측이 먼저 이명박 대통령에게 “선거조직을 일찍 만들어야 한다. 전국적인 조직을 우리가 만들 테니 허락해 달라”라고 건의했다. ‘오케이’ 사인을 받은 정 의원 측은 전국 조직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이상득 의원의 한 핵심 참모(현재도 여권 실세로 활동 중)가 정두언 의원 측에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A 씨는 이에 대해 “당시 이 의원 측이 어떻게 우리의 전국 조직 플랜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계획을 보고한 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 의원의 핵심 참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정 의원이 전국 조직을 만드는 것은 능력에 비해 격이 맞지 않다. 정 의원은 앞으로 캠프 상황실장을 해야 한다. 전국 조직 만들기는 우리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선거 캠프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쪽에서 조직 사업을 하라고 넘겼다”라고 말했다.
▲ 이재오 전 최고위원. | ||
사실 이명박 캠프의 최대 실세는 정두언 의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 대통령을 잘 아는 정치인도 드물었고 오랫동안 참모로 활동했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의 ‘안희정 이광재’을 합쳐놓았다고 할 만큼, 그는 실세였다. 하지만 인수위 과정을 거치면서 정 의원은 권력 변방으로 밀려났다. 이때도 이상득 의원의 견제가 결정적이었다는 데 이견은 별로 없다. 이 의원은 정 의원 그룹에 대해 “권력 투쟁만 일삼는 무리”라고 보았다. 이 대통령의 성공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세력 확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 이 의원의 ‘생각’은 인수위 과정을 거치면서 정 의원 그룹 배제로 이어졌다. 앞서의 A 씨는 이에 대해 “우리는 그들로부터 몇 번 뒤통수를 맞았다. 대선이 끝난 뒤 한창 인수위 계획을 점검하고 있을 때였다. 이상득 의원의 핵심 참모인 박영준 전 비서관이 갑자기 우리들을 불렀다. 양측은 대선 과정 내내 계속 긴장관계에 있었다. 그때 박 전 비서관은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의 큰형님으로서 잘하도록 하겠다. 그동안 쌓인 감정의 앙금은 훌훌 털고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서 열심히 하자’라는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며칠 뒤 정두언 의원이 인수위 활동 과정에서 고교 동창의 인사 문제에 관여했다는 부정적인 보도가 잇따르면서 갑자기 권력 핵심에서 밀려나버렸다. ‘화해하자’고 해 놓고 우리를 배신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이상득 의원의 직접 지시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의원 측의 견제에 밀려났다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A 씨는 “이상득 의원이 권력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잠재적 위험요소를 꾸준하게 제거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런데 지난 대선과 인수위 과정에서 정두언 의원 그룹이 이상득 의원 그룹에 의해 밀려난 ‘방정식’을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 연내 귀국설에 그대로 대입해볼 수 있다.
현재 이상득 의원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공통된 견해다. 그의 핵심 참모들이 청와대 인사라인의 실무 요직에 포진해 있다. 그의 또 다른 ‘복심’인 장다사로 씨는 청와대 민정1비서관을 맡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 관리가 주 임무지만 검찰과 사정업무도 수시로 협의하는 요직 중 요직이다. 그래서 이 의원은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님으로 통한다)이란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최근에는 여권 일각에서 그를 ‘영일대군’으로 부른다. 이 의원의 고향인 포항의 영일만에서 따온 ‘영일’과 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대군’(大君)을 합친 호칭이다.
하지만 이상득 의원은 당·청 관계 안정을 명분으로 현재의 투톱 시스템에 균열을 가져올 어떤 요소도 허락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의원의 동물적 권력 감각이 이번에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그의 ‘의도된’ 행보에서 잘 드러난다. 그동안 국정 사안에 대해 공개적인 발언을 자제해오던 이 의원은 ‘공교롭게도’ 이 전 최고위원 귀국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그동안 닫았던 입을 열며 공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의원은 최근 당 소속 초·재선 의원들과의 회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소장파 의원들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지난 11일 이명박 대통령의 경선 캠프였던 ‘안국포럼’ 출신 의원들과 만찬을 하려고 했던 것은 대표적 사례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최근 이 의원의 행보를 보면 그동안 의례적으로 가져오던 후배 의원들과의 식사 모임이 아니라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라고 본다. 주요 현안과 관련한 ‘소신 발언’도 눈에 띈다. 이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도권 규제완화에 따른 지방의 반발’에 대한 질문에 “뭘 알고나 반발하나”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동안 국정 사안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언급을 자제해오던 행보에 비하면 이는 파격적이다.
그런데 이와 맞물려 이 의원에 비우호적이던 소장파 일부에서도 미묘한 기류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3월 ‘형님 공천’ 반대에 나섰던 한 소장파 의원은 “지금 당이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이 의원이 직접 나서 역할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상득 역할론’을 주문하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상득 역할론’은 ‘이재오 무용론’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의원의 이재오 견제구는 이미 먹혀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권 내부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온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한 비판에 대해 이상득 의원 스스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함으로써 그 불만을 잠재우는 동시에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도 필요 없다는 식의 명분을 동시에 쌓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도 현재의 당·청 관계에 필연적인 갈등을 동반할 가능성이 큰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서둘러 부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안국포럼’ 출신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복귀설과 관련해) 어려운 시기일수록 차분하게 멀리 보고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대중들로부터 잊혀진다고 생각해 차분하게 멀리 보고 준비하는 것을 잘 못한다. 그러나 어려운 기간일수록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조귀 복귀설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알려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이상득 의원의 당내 입지는 더욱 강화됐고 친 이재오 그룹은 연내 귀국설의 과도한 언론 플레이 시도 등이 도마에 오르면서 이 의원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당 일각에서는 이 의원의 행보에 대해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그렇지 않아도 이 의원은 당내의 최대 실세인데 앞으로 그를 견제할 장치가 자꾸 없어지게 돼 너무 힘쏠림이 심화되는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어수룩한 말투에 대중 정치인의 세련된 기교도 없는 이상득 의원. 하지만 그는 권력 생리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으로 여권을 서서히 평정해 나가고 있다. ‘만사형통’이란 신조어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들릴 듯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