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북 군인의 사연이 소개된 북한의 삐라(위) , 1990년대 남한 경제 발전상을 홍보하는 삐라. | ||
진 소장이 소장하고 있는 삐라는 6·25 전쟁 이전부터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뿌려진 삐라까지 500여 장이 넘는 방대한 양이다. 진 소장은 “삐라의 변천사만 살펴보아도 우리나라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 소장에 따르면 6·25 전쟁 때는 대 공산군 심리전용으로 삐라를 많이 살포했는데 일본에서 만들어져 공수된 삐라가 많아 맞춤법이 틀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1970~1980년대에 북한에서 넘어온 삐라는 대부분 우리나라 대통령을 욕하거나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삐라에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만큼 노골적이고 인격모독적인 표현이 난무했다는 것. 대표적인 삐라 중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명 여배우 A 씨의 결혼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미모의 여자가 함께 있는 모습 등이 담긴 것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90년대에는 남측의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킨 북한 삐라가 국내에 살포되기도 했다. 인기배우 B, L 씨의 얼굴이 담긴 이 삐라에는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 해당 배우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북한전문가들에 따르면 과거 북측의 삐라 제작 및 살포는 ‘301호 연락소 운영위원회’라는 비밀기관에서 관장했다고 한다. 이 기관은 작성된 삐라를 남쪽으로 바람이 부는 날 기구에 달아 공중에 띄우고 가압식 혹은 도화선 방식으로 터뜨려 이를 살포했다고 한다.
반면 80~90년대 우리나라에서 북한에 보낸 삐라는 한국의 경제발전 상황을 알리는 내용이 많았다. 진 소장은 “대한민국이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임을 알리거나 북한의 경제상황과 비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지난 90년대 중반 탈북한 정순영 씨 등은 육필수기에서 자유롭게 사는 남한 사진과 ‘자유를 누려라. 생활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남측의 삐라를 보고 탈출을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씨 등에 따르면 당시 남측은 이따금씩 옷 양말 통조림 1㎏짜리 봉지쌀 브래지어 시계 등에 삐라를 붙여 북한에 살포했다고 한다. 이 ‘물자’들을 장마당에 갖다 팔다가 보위부에 붙잡히는 북한주민들도 있었다는 것.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보내는 삐라는 비닐로 포장돼 있어 북한 주민들에게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진 소장은 “북한은 비닐조차 부족한 상황이어서 삐라 비닐로 문을 막거나 물건을 보관하는 데 쓰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탈북자 및 민간단체의 후원으로 일부 삐라는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1달러나 중국 돈 10위안 정도를 함께 담아 보낸다고 한다.
진 소장은 최근 북한이 삐라를 보내지 않는 ‘숨은’ 이유에는 “종이가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오히려 남한 내에 반북 감정이 부추겨질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북한을 포장하는 내용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도 없거니와 오히려 북한체제에 대한 산교육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