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항복’ 알린 게 시초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삐라가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해방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비평서인 <스물한 통의 역사진정서>(앨피)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 오후 1시 무렵, 일본의 항복 사실을 알리는 벽보가 붙고 조선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만세’를 부르며 삐라를 뿌렸다고 한다. 가로 18~18.5㎝, 세로 17.3~17.8㎝ 크기의 빨간 종이에 ‘조선 노동자 동맹 선언’이라는 제목으로 ‘1. 조선 독립 만세 2. 노동자계급 해방 만세 3. 신정부 지지만세’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삐라가 뿌려지면서 민심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45년 9월 1일, 미군이 남한에 들어오기 전 비행기를 통해 서울과 인천 부산 등에 ‘한국민에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미군 상륙을 알리는 10만여 장의 삐라를 뿌리기도 했다.
외국에서도 삐라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주로 전시 중에 뿌려진 삐라는 상대방의 항복을 종용하거나 심리전의 도구로 사용됐다. 2차 대전 때 연합군은 비행기를 동원해 적진에 항복요령을 알리는 삐라를 뿌렸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 당시 아프간 사람들이 탈레반의 희생자라는 점을 알리는 삐라를 뿌리기도 했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가면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엔 독일 곳곳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수와 교황의 발에 입을 맞추는 군주들의 모습을 나란히 그린 그림이 뿌려져 예수와는 달리 교황의 위선에 대해 고발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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