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표 | ||
당내에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쏠림’ 현상으로 계파의 덩치가 커지자 ‘출신 성분’과 ‘전력’을 토대로 소그룹으로 분화되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어서다. 이른바 ‘원박’(원조 박근혜계)과 ‘월박’(이명박계나 중도에서 박근혜계로 넘어온 의원들),‘복박’(박근혜를 떠났다가 복귀한 의원들), ‘주이야박’(낮에는 이명박계,밤에는 박근혜계) 간 이질감이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18대 총선 공천을 받은 그룹(공천파)과 낙천한 후 탈당해서 당선된 후 복귀한 ‘복당’ 그룹 간에도 미묘한 신경전이 벌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총선을 기준으로 보면 박근혜계의 인적 분포는 ‘정상적으로’ 당의 공천을 받아서 당선된 의원 30여 명,공천에서 탈락한 후 무소속 또는 친박연대 간판으로 나서 금배지를 단 경우 30여 명 등 대략 60명 내외라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지금은 계파 의원 수가 많게는 100명이 넘는다는 추정까지 나온다. 총선 이후 월박·복박한 의원이 40여 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이 분석이 맞다면 박근혜계가 한나라당 의석(172석)의 절반을 훨씬 넘게 점유해, 주류인 이명박(MB)계를 압도하는 최대 계파가 된 셈이다.
당내에서 월박 또는 복박 논란에 휩싸인 의원들이 많이 분포한 지역은 영남권이다. 이 지역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점이 총선 과정에서 확인된 데다 당외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이 완료된 후 수적 분포에서도 박근혜계가 MB계를 압도하고 있는 정치지형 때문이다.
특히 부산에선 당 소속 의원 16명(김형오 국회의장 제외) 중 공식적으론 박근혜계가 10명,MB계가 3명,중도 3명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도파들도 친박 성향을 뚜렷이 드러내 실제론 ‘13 대 3’이 세력구도란 평가다.
중도파 중 ‘2세 정치인’인 초선 A 의원은 ‘월박’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이 의원은 얼마 전까지 MB 직계인 안국포럼 출신 의원들과 한때 ‘왕 비서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의 친분을 대외적으로 과시해 왔다. 그러나 최근엔 틈만 나면 박근혜계 의원들과 스킨십을 가지려 하는 것으로 알려져 뒷말을 낳고 있다.
‘원박’인 한 중진은 “본인이 적극적으로 우리와 같이 행보를 하겠다고 하니 말릴 수는 없지만 젊은 친구가 벌써부터 대세와 시류를 따르는 행태를 보여 뒷맛이 씁쓸하다”며 “같이 어울린다고 해서 대소사를 모두 함께 논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구·경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도 박근혜계가 ‘압도적 주류’이긴 마찬가지.27명 의원 중 MB계는 엄밀히 말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 주호영 원내수석부대표 등 5~6명이 고작이라는 분석이다. 월박, 복박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4~5명 정도인데 그중 ‘복박’으로 분류되는 중진 B 의원의 행태가 자주 도마에 오르곤 한다.
B 의원은 과거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있을 당시 선수가 낮음에도 핵심 당직자로 발탁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후 ‘MB 대세론’이 형성되면서 박 전 대표 측과 거리를 두더니 2007년 8월 대선후보 경선이 끝난 후엔 당의 정책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 지난 7월 김무성 의원(왼쪽에서 세번째)을 비롯한 친박무소속연대 소속 국회의원들이 한나라당 복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수도권과 비례대표 중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월박·복박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이미 ‘변신’을 완료한 이들도 있고, 진행형인 경우도 꽤 된다는 분석이다.
중도로 분류됐던 중진 C 의원은 최근 당 지도부와 이재오계를 공개적으로 비난해 주목을 받았다. 주류 일각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조기 복귀 주장을 노골적으로 반박하는가 하면 지도부를 향해선 “당이 반신불수 상태”라고 쏘아붙였다.
당내에선 C 의원의 ‘과격한’ 비주류성 발언을 두고 ‘박근혜계로의 편입을 위한 수순’이란 평가가 나왔다. 박근혜계 내에서도 지난 총선 직후 핵심 당직자로서 당 외부 친박세력의 ‘조기 복당론’을 주장했던 C 의원의 전력을 감안해서인지 별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때 소장파의 리더로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있을 당시 사사건건 대립했던 D·E 의원도 박 전 대표 측과 관계개선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역시 최근 MB정부의 인사·대북정책에 대해 비판 강도를 높이면서 MB계와의 ‘거리 두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의 반응은 신통찮다. 이들이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잡고 있을 당시 ‘반박’(반 박근혜) 기류를 부추기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과거사’를 잊기가 어려운 탓이다. 친박그룹의 한 핵심 중진은 아예 “다른 사람은 몰라도 D·E 의원과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공천파와 복당파 간에도 물밑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복당파’엔 6선의 홍사덕 의원을 비롯해 4선의 김무성 박종근 이해봉 이경재 의원 등 내로라하는 중진들이 많다. 이들 중엔 김 의원처럼 영남지역 의원들을 규합해 사실상 소계보를 형성한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총선 직후 ‘공천파’들이 자신들의 복당을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표시한다. 또 복당파야말로 낙천의 아픔을 겪으면서까지 박 전 대표와 끝까지 함께할 박근혜계의 ‘중핵’이란 점도 강조한다. 한 재선 의원은 “복당 문제로 당이 시끄러울 때 공천파 중에 공개적으로 지도부에 ‘조기 복당’을 요구한 사람은 서병수·주성영 의원 정도가 고작이었다”며 “같은 계파라고 하지만 정치생명이 끊어질 위기에서 살아 돌아온 우리들과 ‘공천이 곧 당선’인 선거를 치른 사람들과는 이래저래 구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천파들도 할 말은 많다. ‘선별 복당’이 ‘일괄 복당’으로 바뀐 것은 허태열 최고위원 등 공천파들이 적극적으로 박희태 대표 등 지도부를 압박해 이룬 성과임에도 복당파들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한편에선 복당파와의 주도권 다툼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출신으로 박 전 대표 측근인 Y 의원이 계파 모임을 만들려다가 박 전 대표의 만류로 중도에 흐지부지된 것이나, 또 다른 측근인 L 의원이 외곽 전국조직인 ‘희망포럼’ 결성을 주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의원은 “계파가 같다고 해서 구성원 모두가 생각과 노선이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박근혜 대세론’이 커가고 그에 따라 계파 구성원이 복잡·다양해질수록 내부 분화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