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에 출판될 오드리 헵번에 대한 책 'Enchant-ment: The Life of Audrey Hepburn'에 의하면 그녀는 함께 출연한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과 수도 없이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한다.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너무 열정적이어서 어떤 때는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술고래에다 골초였다. 유머 감각이 있었고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강력한 성욕을 지니고 있었다”고 책은 말하고 있다.
남자를 밝히는 오드리 헵번의 경향은 아버지 조셉 러스턴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몰락한 귀족집안 출신인 조셉은 1935년 여섯 살의 오드리와 아내 엘라를 버리고 벨기에를 떠났다. 아버지가 그녀를 버렸기 때문일까. 그녀는 성인이 되어서 연상의 남자만을 사랑했고 원했다. 오드리 헵번은 23세 때 영국의 부자 귀족이었던 제임스 핸슨과 약혼을 했다. 그리고 1953년 그녀의 첫 히트작인 <로마의 휴일>에 그레고리 펙과 함께 출연하면서 제임스 핸슨과 헤어졌다.
▲ 오드리 헵번과 제임스 핸슨, 오드리 헵번과 윌리엄 홀든, 오드리 헵번과 멜 페러, 오드리 헵번과 안드레아 도티(위에서부터) | ||
두 사람은 호텔과 아파트에서 뜨거운 사랑을 이어 나갔다. 윌리엄은 오드리에게 아내와 이혼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지키지 못했다. 결국 오드리는 윌리엄이 정관절제수술을 받아 아이를 가질 수가 없다고 털어놓자 헤어졌다.
그 다음 오드리는 12세나 많은 배우 멜 페러와 1954년 결혼했다. 그녀는 결혼생활 동안 수차례 아이를 유산하다가 1960년 아들 션을 낳았다.
1966년 그녀가 <언제나 둘이서>를 찍을 때 그녀의 결혼생활은 거의 파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녀는 이 영화에 같이 출연한 알버트 피니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오드리는 엄마의 자격이 없어질까봐 그와의 관계를 끝냈으나 끝내 1968년 멜과 이혼했다.
1년 뒤 그녀는 이탈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 안드레아 도티와 결혼했다. 1970년 그녀는 안드레아 사이에서 아들 루카를 출산했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은 1981년 배우 벤 가자라와 사랑에 빠졌다. 벤은 <뉴욕의 연인들>에 함께 출연했다. 벤은 오드리 헵번을 찼다고 한다. 그 뒤 오드리는 네덜란드 출신 배우 로버트 월더스와 사랑에 빠졌다가 199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