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에선 노무현 정권의 비자금 의혹도 재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
한나라당과 보수진영 주변에서는 이번 기회에 2차 남북정상회담 뒷거래 의혹을 비롯해 노무현 정권의 비자금 의혹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건평 씨에 이어 박 회장이 사법처리될 경우 사정당국의 칼끝은 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게 될 것이라는 섣부른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을 뒤흔들 메가톤급 태풍으로 부상할 조짐이 일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뇌관 속으로 들어가 봤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정치 비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과거 전직 대통령들의 경우 집권 중후반이나 퇴임 후에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는 사실에 미뤄 매우 이례적이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대세론을 구축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막대한 후원금을 제공했던 대기업들이 대선 직전과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뒤늦게 노 전 대통령 측근들에게 정치 후원금을 전달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당선 축하금’ 사건은 참여정부 출범 초부터 ‘측근 비리’로 얼룩지면서 노 전 대통령의 재신임 논란과 탄핵사태를 촉발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2002년 12월 26일 SK그룹으로부터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11억 원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났고, 여택수 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이 2003년 8월 롯데 측으로부터 수수한 3억 원도 당선 축하금 성격이 짙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받은 삼성 채권 6억 원 등 대선을 전후해 측근 인사들이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은 밝혀진 것만 수십억 원에 달했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노무현 후보 공보특보를 지낸 유종필 국회 도서관장은 “대선 이후 돈벼락이 떨어지니 참모들이 이성을 잃은 듯했다”고 당시 상황을 폭로할 정도였다. 2003년 대선 자금 수사가 진행될 때도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한결같이 5대 기업에서 받은 후원금은 한 푼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삼성에서만 30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대선자금 수사 이후에도 정치권 주변에서는 참여정부 내내 당선 축하금과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04년 1월 16일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한화그룹이 노 대통령 당선 축하금으로 250억 원을 건넸다”는 제보 내용을 공개하는 동시에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과 관련된 비자금 CD(양도성예금증서) 100억 원 중 일부가 노 대통령 대선자금으로 들어갔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홍 의원은 또 같은 해 2월 5일 “노 대통령의 당선축하금 및 총선자금으로 보이는 1300억 원대 괴자금이 하나은행에서 발행한 CD 형태로 발견됐다”고 주장했지만 하나은행 조사결과 문제의 CD는 위·변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당선 축하금과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 사건에 대해 내사를 벌였지만 모두 내사종결 처리했다. 또 지난 4월 17일 막을 내린 삼성비자금 특검팀도 삼성의 당선 축하금 의혹을 조사했으나 무혐의로 종결한 바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에 불거진 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검찰이 규명하는 것은 분명 현실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정치 공세’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만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논리다.
당내 법조인 출신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의 경우 재임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당선 축하금 등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다시 수사할 명분과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과 핵심 측근들이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측근 게이트’가 현실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만큼 내친김에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형국이다.
여권 핵심부도 노 전 대통령이 집권 초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해 1차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불거진 검은 커넥션 의혹을 밝혀냈듯이 현 정부 또한 2차 정상회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남북 간 긴장 고조에 따른 비판 여론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에서 수세에 몰린 여권이 ‘정상회담 뒷거래 규명’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정치권 주변에선 지난해 10월 2~4일 평양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배경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과 검은 커넥션이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것처럼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에도 남북 간의 뒷거래 내지는 밀약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이 증폭됐던 것.
지난해 초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대통령 측근 자격으로 중국에서 북측과 비선접촉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뒷거래 의혹이 수면 위로 급부상한 바 있고, 당초 8월 중순으로 잡혔던 정상회담 일정이 10월로 연기된 배경과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석연찮은 비밀 방북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특히 여권 일각에선 세종증권 게이트의 핵심 주역으로 지목받고 있는 박연차 회장이 2차 정상회담 때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 회장이 당시 2차 정상회담 커넥션 의혹과 관련해 일정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한 친노 인사는 “당시 박 회장은 신발사업 관련 경협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여권에서 내놓는 남북 뒷거래설 등은 전혀 근거 없는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여러 의혹의 ‘키맨’인 박 회장에 대한 소환을 앞두고 보강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 회장은 현재 세종증권 매각 비리와 휴켐스 특혜 인수 의혹, 미공개 내부정보 이용 주식 거래 및 탈세 혐의 등으로 검찰 소환이 임박한 상태다. 검찰은 박 회장이 드러난 혐의 외에 비자금 조성 정황을 잡고 별도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홍콩법인을 통해 소득 신고 없이 편법으로 취한 배당금 800억 원의 용처를 파악 중인 검찰은 현재까지 500억 원 이상의 비자금을 찾아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은 태광실업 계열사를 상대로 한 국세청의 추가 세무조사가 끝나면 최소한 500억 원 이상의 비자금이 추가로 발견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박 회장을 금명간 소환해 조성한 비자금의 정확한 규모와 사용처를 규명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박 회장이 조성한 비자금 규모와 그가 오랜 세월 노 전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 왔고 참여정부 실세들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어 왔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정치권에 메가톤급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박 회장을 겨냥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여권 또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녹다운시킬 수 있는 카운터펀치를 준비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권의 전 방위적 압박과 검찰의 사정 칼날이 노무현 정권의 비자금 판도라상자를 열 수 있을지 여의도 정치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