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만 한국철도공사 사장, 유제복 코레일유통 대표이사,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박희성 한국동서발전 사장 직무대행,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영훈 한국수자원관리공단 이사장,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공공부문노동조합 공동대책위는 7월 18일 적폐 공공기관장 10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이들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사진 = 연합뉴스
공대위 발표는 대대적인 공공기관장 물갈이설과 맞물리면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발표 후 이틀 만에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사의를 표명하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전 사장 임기는 내년 6월 30일까지로 1년가량 남아 있었다. 한국가스공사 측은 “공대위 발표가 이 전 사장 사퇴에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이 전 사장 사퇴는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전 사장은 성과연봉제를 강행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했으며,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3년 연속 D를 받는 등 무책임 경영을 했다는 이유로 적폐기관장으로 지목됐다. 이 전 사장이 물러나면서 적폐 기관장으로 지목된 다른 공공기관장들도 줄줄이 자진 사퇴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에 대해 직접 사퇴를 요구하지 않고 공대위를 앞세워 우회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공대위 관계자는 “적폐 기관장 선정은 공대위 자체적으로 선정한 것”이라며 “선정 과정에서 정부 여당 측과의 교감은 전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 전 사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사표를 내라는 압력은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적폐 기관장 선정 기준에 대해 국정농단 세력 또는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알박기로 임명된 기관장, 성과연봉제를 강제 도입하고 성과연봉제 폐기 등 새로운 정부의 정책 수행을 거부하는 기관장, 국정농단 세력에 적극 부역한 전력이 있는 기관장이라고 밝혔다.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은 성과연봉제 도입, 노조파괴, 밀실경영, 채용비리 등의 이유로 지목됐다. 김 사장은 취임 후 현재까지 노조와 극심한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해 말 석유공사 노조는 김 사장 사퇴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석유공사는 이 과정에서 사내게시판에 노조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고 아예 게시판을 없애는 등 강압적인 태도를 보여 갈등이 더 심화됐다.
현대중공업 출신인 김 사장은 취임 후 현대 출신이거나 학연 등으로 얽힌 인사들을 채용해 특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석유공사가 몇 년 동안 적자를 기록해 직원들이 연봉 10%를 자진 반납하기로 했지만 정작 김 사장은 연봉 반납을 거부해 도덕적으로 지탄받기도 했다.
김 사장은 공대위 발표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나의 관점에서는 과거 정권에서 과실을 향유해 오다가 이제 개혁하자는 노력에 저항하는 그들이 적폐가 아닌가 한다”며 “적폐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은 최순실 박근혜 의료게이트 연루, 김영재 의원 특혜 및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조작관여 의혹 등의 이유로 적폐 기관장에 선정됐다. 서 원장은 최순실 주치의를 맡았던 이임순 순천향대병원 교수 추천을 통해 대통령 주치의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원장도 특검 조사에서 본인이 대통령 주치의가 되는 과정에 최순실 씨가 개입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은 국정농단세력 낙하산,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 재직 시 특조위 활동 방해 등의 이유로 리스트에 올랐다. 이 이사장은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 시절 “세월호 특조위가 정치적 놀음에만 골몰하는 일탈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전원 총사퇴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면서 당시 여당 특조위원들과 비슷한 주장을 폈다. 이로부터 얼마 후 ‘BH(청와대) 조사 시 여당 위원 사퇴’ 지침을 담은 해수부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다. 이 이사장은 특조위를 사퇴한 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돼 보은인사가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박희성 한국동서발전 사장 직무대행은 직무대행으로는 유일하게 적폐 기관장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박 직무대행은 성과연봉 미폐기, 이명박 정부 동서발전 노무팀장으로 발전노조 파괴 지휘 등의 이유로 지목됐다. 동서발전은 지난해 성과연봉제 합의를 통해 받은 인센티브를 직원 전체가 반납하지 말자며 직원들을 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공대위는 문재인 정부 성과연봉제 폐기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동서발전은 과거 산별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다가 지난해 대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기도 했다. 당시 노무팀장이 박 직무대행이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은 성과연봉제 도입과 국정농단세력 낙하산라는 이유로 선정됐다. 김 이사장은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로 꼽힌다. 예비역 대령 출신인 김 이사장은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후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을 함께 해왔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성과연봉제 도입과 박근혜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노조파괴 노동개악을 진두지휘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홍순만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성과연봉제 불법행위, 부당노동행위, 국회중재거부, 노사관계 파탄, 국민안전 위협, 중대재해사고 책임전가 등의 이유로 선정됐다. 2019년 5월까지가 임기인 홍 사장은 7월 28일 사의를 표명했다. 유제복 코레일유통 대표는 성과연봉제 미폐기, 국정농단세력 낙하산, 새 정부 정책수행 거부, 모럴해저드 등이 거론됐다. 정영훈 한국수자원관리공단 이사장은 성과연봉제 미폐기, 황교안 대행 알박기 인사로 리스트에 포함됐다.
대체로 성과연봉제 도입에 동의한 기관장들이 타깃이 됐는데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성과연봉제는 전 정부의 국책과제로 공공기관장으로서는 선택의 여지 없이 추진했어야 하는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또 이번에 선정된 적폐 기관장들 중 일부는 경영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공대위 측 관계자는 “성과연봉제라는 제도 자체가 부적절한 제도였는데 이번에 선정된 적폐 기관장들은 사내 노조와 엄청난 갈등을 일으키며 성과연봉제를 강제적으로 추진한 인사들이었다”면서 “성과연봉제 추진 등으로 가산점을 받아 좋은 경영평가를 받은 것은 오히려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 아직 임기가 남아 있는 기관장들 하차를 주장하는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감지된다. 야당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친 정권 인사들에게 ‘한 자리’ 챙겨주기 위해 임기가 끝나지 않은 기관장들을 내쫓으려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권 초 반복됐던 낙하산 투하의 일환이라는 얘기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측 관계자도 “선정 기준 자체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