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평범한(?) 책에 싫증이 나 있다면 이런 책은 어떤가. 앞에서부터 뒤로 읽어도 되고, 또 거꾸로 뒤에서부터 앞으로 읽어도 되는 책 말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심지어 순서를 뒤죽박죽 섞어서 읽어도 이야기가 된다.
그루지아 출신의 소설가 아카 모르칠라체(40)의 소설인 <산타 에스페란차>가 바로 이런 책이다. 총 36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소설은 어느 방향에서 읽어도 완벽한 이야기가 된다. 각각의 책이 하나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유기적으로 스토리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읽는 독자들마다 어떤 순서로 읽었느냐에 따라서 저마다 다른 스토리가 구성되며, 원하는 대로 다른 결말을 지을 수도 있다. 이렇게 뒤죽박죽 읽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스토리 수는 100여 가지.
이 소설은 가상의 섬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 관한 이야기로 사랑, 전쟁, 세대 간의 갈등, 종교, 우정 등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작가 모르칠라체는 “독자들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결말을 지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민주적인 소설이 어디 있는가”라면서 흐뭇해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이 기막힌 소설을 집필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72일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