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다이애나의 생전 거처였던 영국 켄싱턴궁 앞에서 그를 추모하는 방문객. | ||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의 사망사건을 조사해온 영국의 진상조사단이 지난 14일 발표한 최종 결론이다. 전 런던경찰청장 존 스티븐스 경이 이끄는 진상조사단은 832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통해 이와 같이 밝히면서 “다이애나의 사망은 살해가 아닌 ‘비극적인 사고’였다”고 결론지었다. 이로 인해 지난 9년 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음모론, 즉 다이애나가 영국 왕실과 비밀정보국(MI6)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주장에도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에 대해 여전히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 영국인들의 반 정도가 “조사단의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고 답변했는가 하면 다이애나와 함께 사망한 도디 알 파예드의 부친인 모하메드 파예드 역시 “보고서의 내용을 인정하지 못한다.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진실’이란 따로 있는 걸까. 만일 있다면 이대로 땅 속에 묻혀 버리게 되는 걸까.
13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지난 3년여 동안 2만 장에 가까운 사건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1500장에 이르는 목격자 진술서를 통해 다각도의 수사를 펼쳐 왔다.
또한 파리와 런던을 오가면서 철저한 조사를 한 것은 물론, 과학수사와 함께 사고 차량을 영국으로 이송해와 재조립한 후 정밀 점검을 하거나 컴퓨터로 사고 순간을 재현해 보기도 했다. 여기에는 여러 차례에 걸친 혈액 검사와 DNA 검사도 뒤따랐다. 그리고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핵심 내용은 단순한 ‘교통사고’였다.
그렇다면 보고서에서는 그간 논란이 되어 왔던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결론을 내렸을까.
우선 사건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 다이애나와 연인 도디 알 파예드는 지난 1997년 8월 31일 새벽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운전기사 앙리 폴이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과속을 하다가 그만 지하차도의 교각을 들이받은 것이다. 당시 충돌사고로 폴과 도디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으며 다이애나는 병원으로 이송된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던 것은 과연 운전사 폴이 음주운전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 당국에 의하면 폴의 혈액에서는 알코올 성분이 검출되었고, 사건을 조사했던 수사팀 역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였다”고 결론 지었다.
▲ 사고로 함께 죽은 다이애나와 그의 연인 도디. 로이터/뉴시스 | ||
하지만 모하메드를 비롯한 일부의 주장은 다르다. 수사 과정에서 누군가 고의로 폴의 혈액 샘플을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다.
더욱 이상한 점은 사건 당일 폴과 함께 있던 사람들 중에는 그가 취해 있는 모습을 본 사람이 전혀 없었으며, 호텔 CCTV 카메라에도 그가 비틀거리는 모습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혈중 알코올 농도라면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었을 텐데 수상하다는 것이다.
한편 진상조사단은 사고 직전 폴의 눈에 강력한 광선이 발사되었으며, 이로 인해 폴이 앞을 보지 못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런 주장은 당시 사건 현장의 목격자들에 따른 것이었지만 조사단은 “그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 지었다.
또한 폴이 영국 비밀정보부(MI6)의 요원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근거 없는 억측”이라는 발표를 했다. 이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전 MI6 비밀요원 리처드 톰린슨이 자신이 부당 해고된 데 대한 복수심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MI6 파리 사무국은 다이애나가 파리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톰린슨은 끊임없이 폴이 MI6 비밀요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지난 1992년 MI6가 유고 연방의 밀로셰비치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었는데 당시 계획했던 암살 수법이 다이애나 사망 사건과 동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폴을 둘러싼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3만 5000달러(약 3200만 원)의 봉급을 받던 그가 어떻게 프랑스 전국 14개 은행의 비밀 계좌에 16만 달러(약 1억 5000만 원)를 예치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이 중 12만 달러(약 1억 1000만 원)가 사고 발생 직전에 한꺼번에 입금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분명 어렵다는 것이다.
▲ 죽은 도디의 아버지 모하메드 파예드와 사고차량 안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 반지. | ||
하지만 모하메드는 “다이애나의 시신이 서둘러 방부 처리된 점, 그리고 옷이 사고 직후 즉시 소각된 점은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한 책략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다이애나는 임신 9주째였으며, 사건 당일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임신 사실을 알려왔다고 말했다. 또한 28일과 29일 도디가 친구들과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 커플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있다”고 귀띔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둘이 약혼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도디가 반지를 구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뿐일 뿐 둘이 약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디는 사고 전날 오후 파리 방돔 광장에 있는 ‘르포시’ 귀금속점을 방문해서 반지 두 개를 주문했다.
이에 대해 모하메드는 사건 발생 다음날 도디가 다이애나에게 청혼할 계획이었으며, 동시에 언론에 발표할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도디가 반지를 구입했던 보석상 사장인 알베르토 르포시 역시 이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는 “사고 발생 전 생 트로페즈에서 다이애나와 도디를 만나 반지를 주문받았다. 다이애나가 직접 반지 디자인을 골랐으며, 손가락 둘레도 쟀다. 그건 분명히 약혼 반지였다”고 말했다.
이번 영국 진상조사단의 보고서 내용은 지난 1999년 프랑스 법원이 내린 결론과 거의 차이가 없다. 또한 여전히 여러 가지 의혹을 시원하게 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타살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