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이라크 사마와에 도착한 자위대 병사들. AP/연합뉴스 | ||
일본은 지난 2004년 1월 이라크 남부 사마와에 육상자위대를 파견했다. 그해 4월엔 항공자위대 소속 C130 수송기 3대와 대원들을 쿠웨이트에 파견했다. 육상자위대는 2년 6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지난 7월 철수했고, 내년 7월 시한만료 예정이었던 항공자위대는 2009년 7월까지 주둔이 연장된 상태다.
미-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계적인 비판여론과 자위대원들의 연쇄자살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총리는 올해 1월 초 “해외 활동을 주저하지 않겠다”며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켰다. 이 말은 향후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더욱 늘리겠다는 뜻이다. ‘군국주의화’ 움직임 속에서 일본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파묻히고 마는 것일까. 일본 대중지 <주간포스트>는 최근호에서 자위대원들의 잇단 자살 원인은 심층분석했다.
2005년 8월 7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시 교외의 인적 없는 산 속에서 육상자위대 ‘삼좌’(소령에 해당·당시 38세)가 부인과 아이를 남겨둔 채 목숨을 끊었다. 사인은 차 안에 가지고 들어간 연탄에 의한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그는 경비중대장으로 2004년 5월부터 약 석 달 동안 사마와에서 근무했다. 당시 경비부대 숙영지 인근으로 쉴 새 없이 포탄이 날아다녔으며, 외곽경호 때 지뢰나 테러의 위험성도 상존했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온 후 줄곧 이라크에서 겪은 공포에 시달려왔다고 한다. 지인의 증언이다.
“귀환 후 그의 정신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졌다. 2005년 1월 삿포로에서 열린 미일 공동훈련에 참가했을 때 갑자기 ‘미군 가까이에 가지 마! 죽을 거야!’라고 말해 주위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마와 근무 당시 미군이 테러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매일같이 접한 그가 어느샌가 ‘미군과 함께 있으면 죽는다’는 공포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자살한 자위대원은 그뿐만이 아니다. 2005년 4월에는 파견돼 운송 업무를 담당했던 ‘이조’(하사)가 귀국 후 우울증에 걸려 약 넉 달 동안 통원치료를 받다가 결국 자택에서 목을 매달았다. 그 다음달에도 파견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육사장’(육군 병장)이 야마가타 현의 훈련장에서 목을 맸다. 그밖에도 네 명의 이라크 파견 근무자가 자살했다. 모두 합하면 육상자위대 6명과 항공자위대 1명이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은 지원자 중에서 선발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의지로 이라크에 간 자위대원들이 귀국 후 하나둘씩 죽음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육상자위대 주둔지 사마와는 비전투 지역이다. 하지만 근무 당시 전쟁 경험이 없는 자위대원들이 받은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고 한다. 파견 경험이 있는 한 육상자위대원은 “사마와의 자위대 숙영지는 10회 이상 박격포나 로켓탄의 공격을 받았다. 숙영지 밖에서는 늘 폭발 소리나 소총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대원들은 바닥에 엎드렸다. 고도로 훈련받은 경비 담당 대원이라면 소리만 듣고도 폭탄인지 박격포인지, 거리나 방향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운송, 위생, 설비 담당 대원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은 점점 쌓여가는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고통받았다”고 말한다. 그도 귀국 후 박격포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몇 번이고 자다가 벌떡 일어난 적이 있다고 한다.
실전훈련을 받은 경비 담당 대원이라고 해도 공포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또 다른 대원에 따르면 “이라크 주민들과 교류하는 자리에는 대장이나 간부들은 무장을 않고 참석한다.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다. 거리에 무기를 소지한 주민들이 우글거리는 상황에서 대장들을 경호하는 것은 엄청난 긴장감을 요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테러의 타깃이 돼버린 대원들의 ‘미묘한 입장’이다. 자위대 이라크 파병 금지 소송을 주도하는 사토 히로부미 변호사는 “이라크 복구 지원을 위해 파견된 자위대가 실제로 한 일은 미군 지원이었다. 문제는 미군에 물을 보급하거나 미군 운송차량 경비를 맡는 등 미군을 후방 지원하는 것이 가장 테러당하기 쉬운 행동이라는 것이다”고 지적한다.
자살까지 가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에 이상이 생긴 대원들도 적지 않다. 한 육상자위대 간부는 “파견 대원들 중에 얼굴이 완전히 변해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얼굴이 야위고 표정이 험악하게 변해 부인이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귀국 후에 이혼하는 대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다. 부인이나 여자 친구와 다툰 후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 대원도 있다”고 밝혔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방위성이 파견대원들이 귀국하기 전 쿠웨이트에서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쿨 다운’ 프로그램에 참가하도록 조치했지만 ‘자살 도미노’를 막을 수는 없었다.
파견 자위대원들이 지진 재해 피해자들이 겪는 것으로 알져진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PTSD는 극도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또는 위험도는 낮지만 반복적으로 공포를 체험했을 때 나타난다. 이라크에 파견된 자위대원들은 후자에 해당된다고 한다.
PTSD의 주요 증상은 공포 체험으로 인해 악몽 등을 꾸는 ‘충격의 재경험’, 충격적인 체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다가 억울상태(우울증 등)에 빠지는 ‘감정회피’, 그리고 짜증을 잘 내거나 공격적으로 변하는 ‘과민반응’으로 설명된다. 미국에서도 베트남전 귀환병들의 PTSD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또한 2001년부터 3년 동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견된 약 18만 명 중 5%인 약 9000명이 PTSD로 진단을 받았다.
군사 저널리스트 우시오 마사토 씨는 “현재 항공자위대는 이라크에서도 가장 위험한 바그다드의 항공 운송을 맡고 있다. 언제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임무를 수행할 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두세 번씩 다시 파견되는 대원도 적지 않다. 그들은 PTSD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그러나 연쇄 자살에 대한 일본 당국의 입장은 좀 다른 듯하다. 방위성 측은 “자살의 원인이 반드시 이라크 파견 근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대원들의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수시로 강습이나 심리치료를 실시하고 있다”며 해명했다. 이에 민주당의 야마노이 가즈노리 의원은 “이라크 파병과 자살의 인과관계를 철저하게 파헤쳐 완벽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심리치료는 그 다음 문제다. 무엇보다 방위성은 대원들의 자살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에 의한 ‘전사자(戰死者)’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