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미국 올랜도 공항에서 ‘연적’을 납치하려다 체포된 리사 노웍이 다음날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AP/연합뉴스 | ||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하게 다루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연인들의 ‘삼각관계’다. 삼각관계를 소재로 한 스토리는 질투와 복수, 애정과 희생 등 드라마틱한 요소로 끊임없이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곤 한다. ‘삼각관계’ 자체는 흔해빠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만일 그 배경이 미 항공우주국(NASA)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게다가 납치 및 살인혐의까지 추가된다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지난 5일 촉망받는 한 여성 우주비행사가 하루아침에 살인미수범으로 추락한 사건이 벌어졌다. 다름이 아니라 연적관계의 여성을 상대로 납치극을 벌이려다 체포되고 만 것이다.
현재 NASA에 의해 정신감정을 받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리사 마리 노웍(43).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인 동시에 해군 대령이자 NASA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베테랑 우주비행사다. ‘삼각관계’에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은 노웍이 짝사랑한 동료 우주비행사 윌리엄 오펄레인 중령(41)과 오펄레인이 좋아하고 있던 콜린 시프먼 공군 대위(30)다.
유부녀인 노웍이 오펄레인을 마음에 품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해 디스커버리호 탑승 훈련을 받기 시작하면서 오펄레인과 부쩍 가까워진 노웍은 지난해 7월 함께 13일간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귀환한 후부터 점차 그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19년 동안 이어진 그녀의 결혼생활도 곧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 리처드(43)는 우주비행관제센터의 항공관제소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겉으로 보기에 이들 부부는 다정하고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사건 발생 몇 주 전부터 이들 부부는 별거에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일’을 저지른 것은 지난 2월 5일. 이미 수개월 전부터 오펄레인을 마음에 품고 있던 그녀는 언제부턴가 오펄레인이 다른 여성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상대는 다름 아닌 자신보다 열세 살이나 젊은 시프먼이었다. 시프먼은 케네디우주센터 인근에 있는 패트릭 공군기지에서 NASA 기술자로 근무하고 있다. 이때부터 시프먼-오펄레인 사이를 감시하기 시작한 그녀는 어느날 오펄레인의 컴퓨터를 훔쳐 보다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했다.
오펄레인이 시프먼에게 보낸 사랑 고백 이메일을 발견한 것이다. 이에 질투심에 불탄 그녀는 이성을 잃은 채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웠다. 시프먼이 오펄레인과 주말을 보내기 위해 올랜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녀는 그 길로 자동차를 타고 올랜도 국제공항으로 달려갔다. NASA 본부가 있는 텍사스주 휴스턴으로부터 무려 1500㎞나 되는 먼 거리였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질투심에 휩싸인 그녀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우주비행사용 기저귀를 차고 차 안에서 소변을 해결하면서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밤새워 달린 끝에 자정 무렵 올랜도 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녀는 일단 인근 호텔에 투숙했다. 호텔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몹시 피곤해 보였고 “가능한 빨리 잠자리에 들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잠시 후 짙은 색 가발과 안경으로 위장을 하고 트렌치 코트를 입고 호텔을 나선 그녀는 셔틀버스를 타고 부리나케 공항으로 달려갔다. 자정이 지난 시각에 홀로 셔틀버스에 오르는 그녀를 수상히 여기는 운전기사에게 그녀는 “공항으로 남자친구를 데리러 가는 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 왼쪽부터 리사 노웍, 노웍이 짝사랑한 빌 오펄레인, 오펄레인의 고백을 받은 콜린 시프먼. | ||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시프먼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에 노웍이 울면서 “휴대폰을 빌려달라”며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시프먼은 창문을 살짝 내렸고 바로 이 순간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노웍은 최루가스를 발사했다. 놀란 시프먼은 가까스로 차를 몰고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인근 쓰레기통에서 가발과 공기총 등 증거물을 버리고 있는 노웍을 발견해 체포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소지하고 있던 검정색 가방 속 내용물이었다. 망치, 10㎝ 길이의 접이식 칼, 라텍스 고무장갑 여섯 켤레, 대형 쓰레기봉투, 현금 600달러(약 60만 원), 여러 길이의 고무줄 등 다분히 살해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증거물들이 발견됐다. 이에 현장에서 납치 미수로 체포된 그녀는 추후 다시 일급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이번 사건에 대해 NASA 측은 매우 당황하고 있는 상태. 동료 우주비행사들 역시 “그녀는 매우 유능한 우주비행사 중 한 명이었다. 늘 성실했으며 우주비행사로서의 자질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웃들 역시 “늘 다정한 엄마였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었다”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매우 놀랍다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사랑에 눈이 멀어 극단적인 범죄를 기도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 가장 그럴 듯한 추측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사생활이 엉망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도 높은 훈련과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생활 등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2003년 컬럼비아호가 귀환 도중 공중폭발한 사건도 그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사망한 비행사 중 세 명은 그녀의 절친한 동료였으며, 이 사건으로 그녀는 한동안 매우 힘들어했다.
현재 노웍은 위치추적이 가능한 전자팔찌를 부착한 채 보석금 2만 5500달러(약 2400만 원)를 내고 석방된 상태다. 순간적인 질투심에 저질러진 우발적인 범행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오는 3월 예정된 비행에서는 탈락한 상태다. 또한 앞으로의 비행 여부 역시 불투명해진 상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