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전의 안네 프랑크. | ||
1941년 오토는 자신의 대학친구인 나산 스트라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곳 상황이 더 참혹해지기 전에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며 “이 일은 우리가 돌봐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해야 한다. 내 자신의 운명은 그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다”고 당시의 절박한 상황과 뜨거운 가족애를 표현했다.
이 편지들은 동유럽 유태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한 단체에 의해 최근 공개됐다. 문제의 편지들은 이 단체가 약 1년 7개월 전 입수한 유대인의 대학살 자료와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문서들은 오토 프랑크가 부인 에디스와 두 딸 마르고와 안네, 그리고 장모 로사 홀랜더를 미국이나 쿠바로 보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보여준다.
독일이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자 오토는 1941년 4월 30일에서 12월 11일까지 가족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 친척들과 친구들, 그리고 관계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편지를 썼다. 하지만 나치정권이 기승을 부리자 미국은 이민정책을 바꿔버렸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 미국 이민비자를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30만 명이나 됐다. 그런 데다가 오토의 친척들이 독일에 살았기 때문에 프랑크 집안은 미국의 정책변화에 따라 미국 이민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그는 간신히 쿠바 비자를 하나 받게 되지만 독일이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자 그것마저 1941년 12월에 취소됐다. 결국 오토는 1942년 7월 가족들을 은신처로 피신시킬 수밖에 없었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