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청문회에 참석한 발레리 플레임. 로이터/뉴시스 | ||
리크게이트는 2003년 미국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극비사항인 CIA 비밀첩보요원의 신분을 은근슬쩍 흘린 사태로부터 촉발됐다. 즉 백악관과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발레리 플레임이라는 여자 스파이의 신분을 외부에 공개한 불법행위를 다룬 사건이다.
결론적으로 이 게이트는 지난주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이 중죄를 선고받음으로써 일단락됐다. 이로 인해 리크게이트를 사실상 총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딕 체니 부통령마저 사임할 것이란 소문에 휩싸여 있다. 루이스는 법정에서 위증 혐의, 재판방해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다만 발레리의 정체를 밝힌 혐의에 대해선 법적 처벌이 면제됐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CIA 스파이’ 발레리 플레임이 얼굴을 드러낸 채 부시 행정부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 한눈에 보기에도 우아하고 빼어난 이 금발의 미녀는 하원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백악관과 국무부의 고위 관리에 의해서 내 존재와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면서 “부시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내 경력을 망침으로써 미국 첩보네트워크에 크나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발레리는 또 “스파이는 신분이 드러나면 곧 죽음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스파이 신변 공개는) 국가 안보에 크나큰 위험이 될 뿐만이 아니라 외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CIA 스파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며, 그들의 가족들을 위협하는 일”라고 흥분했다.
그렇다면 발레리 플레임이 미국 CIA 소속의 비밀첩보원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리크게이트는 어떤 사건일까. 이 게이트의 중심인물인 루이스 리비는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 루이스는 발레리가 CIA의 비밀첩보요원(undercover agent)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교묘하게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발레리의 정체를 가장 먼저 흘린 사람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재판에서 어떤 혐의도 받지 않았다.
▲ 부시 미국 대통령. | ||
그럼 이들 관리들이 왜 발레리 플레임이 CIA의 비밀첩보원이라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려고 했을까. 그 배경에는 그녀의 남편인 전 이라크 대사 조지프 윌슨이 있다. 조지프 윌슨은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를 가장 맹렬하게 비난한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부시의 말대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는지 조사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2003년 6월 <뉴욕타임스>의 논평에서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연설에서 한 ‘사담 후세인이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구입했다’는 발언은 명백한 거짓이라고 주장해 결정적으로 부시를 코너에 몰아넣었다.
검찰 측 주장에 의하면 딕 체니를 중심으로 하는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 인사들이 윌슨의 행동반경을 제약하기 위해 그가 이라크 관련 조사를 맡게 된 배경엔 CIA 요원인 그의 부인 발레리가 있다는 식의 루머를 퍼트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정책을 맨 앞에서 방해하고 있는 윌슨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음모 차원에서 발레리의 신변을 공개했다는 주장이다. ‘CIA 비밀요원을 아내로 둔 윌슨이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식의 공격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발레리는 “나는 아예 남편을 추천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럴 힘도 없었다”면서 “단지 상부에서 내 남편을 거론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지금 공화당 의원들은 발레리의 첩보요원 신분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발레리는 이에 대해 “나는 CIA 핵무기 확산 저지팀에 고용될 때부터 비밀 요원으로 임용됐다”면서 “미국에서 내 존재를 알고 있던 사람은 고작 고위직 5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발레리는 청문회에서 이번 게이트로 인해 자신의 CIA 경력은 끝장이 났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했다.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망친 장본인이 미국 행정부라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로니컬하다.”
발레리는 2003년 리크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 비밀요원이 아닌 평범한 CIA 직원으로 일하다가 2005년 은퇴했다. 요즘 발레리는 워싱턴의 사교계에 자주 나타나 자신이 알고 있던 비밀스러운 사실들을 하나둘씩 털어놓고 있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