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1월 29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새 운영체제인 윈도 비스타 출시를 하루 앞두고 이를 소개하러 나오고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은 지난해 6월 은퇴를 발표했다. AP/연합뉴스 | ||
지난 2006년 6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50)이 은퇴를 발표하면서 밝힌 심경이다. 그가 말하는 두 가지 열정은 지난 30년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소프트웨어 사업’과 이제 막 시작한 ‘자선 사업’이다.
그는 내년 7월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직은 유지하되 파트타이머로 전환하는 동시에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서는 풀타임으로 일할 예정이다. ‘빠르지만 아름다운 은퇴’라고 추켜세우고 있는 미국 언론들은 그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면서도 앞으로 빌 게이츠 없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한 업계의 흐름에 뒤처졌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과연 ‘포스트 게이츠 체제’에서 어떤 비전을 제시하면서 IT 업계의 선두자리를 고수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언젠가 모든 사람들의 책상 위에, 그리고 모든 가정에 컴퓨터가 한 대씩 설치되도록 하는 것이 내 목표다.”
1975년 고등학교 동창인 폴 앨런과 함께 처음 회사를 설립했을 당시 게이츠가 내세웠던 야심찬 목표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목표를 보란듯이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이었다. 빠르게 변화화는 IT 업계의 동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게이츠는 한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경영인’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도 했다. 창업 당시 그가 세웠던 ‘한 가정 한 PC’ 혹은 ‘1인당 1PC’의 목표는 이루었지만 디지털 제국에서의 독보적인 위치는 점차 위협을 받았고, 결국 여러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일인자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사용자가 중심이 되는 ‘웹 2.0’ 시대가 도래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등과 같은 작은 인터넷 업체에게 선두자리를 내주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또한 굳이 ‘윈도’라는 운영체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가령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보내거나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비디오 게임기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사실 윈도가 깔려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이 없다. 그저 사용하기 간편하고 인터넷 접속만 이루어진다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재빨리 깨달은 IT 중소기업체들이 속속 마이크로소프트를 위협하거나 혹은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게이츠 회장은 처음에는 이를 간과했다.
이에 대해 저명한 미래 연구소 이사인 폴 사포는 “게이츠 역시 마이크로소프트가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컴퓨터 운영체제(OS)가 디지털 세계의 가장 중심이고, 또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한때 미국 내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위기론’까지 대두되었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모델’이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는 곧 소프트웨어 사업만을 주된 기반으로 삼았던 회사의 근본적인 개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 스티브 발머, 크레이그 먼디, 레이 오지 (왼쪽부터) | ||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판매 방식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서 이런 위기감은 더욱 극대화됐다. 사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오픈 오피스’라는 획기적인 소프트웨어가 등장한 것이 한 예다.
또한 앞서 말한 구글, 유튜브, 마이 스페이스 등과 같은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에 한발 늦게 뛰어들었다는 것 또한 분명 IT 업계의 선구자격인 거대기업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5년 동안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가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올해 초에는 ‘윈도 비스타’와 ‘오피스 2007’ 등 두 가지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면서 기존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게이츠가 완전히 은퇴하는 2008년부터 시작될 ‘포스트 게이츠’ 체제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이에 게이츠의 뒤를 이을 핵심 3인방이 구축됐다. 지난 2000년부터 최고 경영자로 일하고 있는 스티브 발머와 크레이그 먼디 부회장, 그리고 레이 오지 최고 소프트웨어 설계책임자 등이 그들이다.
현재로선 이들이 게이츠의 뒤를 이어 어떤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어 나갈지가 최대 관심사. 가장 크게 드러난 변화는 다름 아닌 ‘서비스 사업’의 확대다. 여기에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판매에서 벗어난 비디오 게임기인 ‘X박스360’, MP3 플레이어인 ‘준(Zune)’,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솝박스(Soapbox)’, 지도 서비스인 ‘버추얼 어스(Virtual Earth)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서비스 기업으로의 전환은 사실 커다란 의미가 있다. 기존의 사용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를 사무실에서 일을 하거나 학교 과제를 할 때에만 유용하다고 인식해왔다. 하지만 ‘X박스’의 성공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기업의 이미지가 재미와 오락, 여가 시간에 유용한 회사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로지 PC로만 돈을 벌던 기업이 이제는 PC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라이브 전략’을 내세웠다.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이브 전략’은 기존의 메일 서비스였던 ‘핫메일’을 ‘윈도 라이브 메일’로 전환하고, 또한 ‘메신저’ 서비스도 ‘윈도 라이브 메신저’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X박스에도 ‘라이브 기능’을 추가해서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구글을 겨냥한 새로운 개념의 ‘라이브 검색’ 인터넷 통합 플랫폼인 ‘윈도 라이브’ 등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게이츠 회장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홈서버(가정용 서버)’도 마이크로소프트만이 가능한 새로운 사업 분야다. 이는 온 집안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서비스로 홈 서버에 컴퓨터, X박스, 준 등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가 모두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홈서버는 영화, 사진, 음악 등을 저장하는 중앙 장치인 동시에 가정의 모든 디지털 콘텐츠를 한 곳에 모으는 역할도 하게 된다.
게이츠 회장의 은퇴와 더불어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떻게 변화해나갈지, 또 ‘IT 공룡기업’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디지털 세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으며 명성을 이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