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의원(왼쪽)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된 박희태 대표. | ||
그런데 이 전 최고위원에게 있어 이번 ‘귀국’은 날 선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는 위험한 카드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의 활용에 대해 여전히 ‘시기상조론’을 펴고 있고, 이상득 의원도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진영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 전 최고위원의 활동 공간을 제한하려고 하는 시점에서 불거져 나온 국내 복귀 카드가 자칫 그의 정치적 재기 자체를 무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여권 핵심부의 뜻을 거스르며 전격 귀국을 하려는 속내는 무엇일까. 최근 친 이재오 그룹 일각에서는 “이대로 계속 권력 핵심에서 밀릴 경우 계파 자체가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자파의 기류 때문에 이 전 최고위원은 국내에 복귀한 뒤 적절한 시기에 조기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에 오르는 강공 위주의 복귀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오 리턴’의 막후를 들여다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2년차 권력 운용 프로그램에 ‘이재오’란 이름은 애초에 없었다. 이 대통령은 맹형규 정무수석을 공성진 최고위원 등에게 수시로 보내 이재오 전 최고위원 역할론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못을 박았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 전 최고위원과 독대를 했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여권 핵심부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라고 최종 확인해주었다.
그 뒤 이 전 최고위원이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시그널’이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이 전 최고위원의 입각 실패다. 올해 초 이 대통령이 개각을 할 때 이 전 최고위원 일부 측근들은 “원하는 부처에 동그라미만 치면 언제라도 입각할 수 있다”라며 그의 입각을 기정사실화했다. 특히 친 이재오 그룹에서는 지난해 ‘이재오 역할설’이 나왔을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에게 “차기 주자의 경력 관리를 해달라”며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를 청와대에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집권 2년차 권력 운용의 포맷을 정치 1번지 여의도가 아닌, 자신의 측근들을 대거 포진시킨 청와대 위주로 확정하면서 이 전 최고위원의 입각이나 그의 컨트롤 타워 역할설도 쑥 들어가 버렸다.
이 즈음에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그의 입각 실패를 전후해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더 이상 예전의 ‘넘버 투’가 아니다”라는 얘기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친박 의원은 “입각은커녕 국내 복귀도 여권 핵심부의 강한 견제 때문에 여의치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의 국내 복귀가 2009년 5월이나 10월로 늦춰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자신의 귀국에 대해 부정적 기류를 읽은 이 전 최고위원은 국내 복귀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판단, 여권 핵심부와 ‘조율’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를 전후해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오는 3월 국내 복귀를 위해 그동안 그의 귀국을 반대했던 이상득 의원에게 ‘충성 서약’을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상득 의원은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면 박근혜 전 대표 쪽과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당내 분란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동안 이 전 의원의 귀국에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개각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의 투톱 체제로 이뤄졌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 계파나 정두언 의원 측은 배려되지 않았다. 이 전 최고위원은 특히 이번 개각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권력 운용 구도를 간파했다. 당분간 ‘이명박-이상득’ 투톱이 유지되기 때문에 이에 맞서기보다 타협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귀국 시기를 두고 이상득 의원 측과 접촉해 ‘향후 친박그룹과 분란을 만들지 않겠다’라는 일종의 서약을 한 뒤 귀국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해도 당분간 ‘자숙 모드’로 지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이런 배경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전 최고위원은 최근 “귀국한 뒤 분란을 만들지 않을 것”임을 간접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그를 만난 일부 의원들에게 “난생 처음 큰 세상에 나와 보니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을 갖고 싸우는 정치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느꼈다. 3선을 하고 정권까지 만들었는데 내가 더 이상 ‘투사’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싸움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공개적 ‘워딩’은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 뒤의 행보에 대해 여권 핵심부와 사전 조율했다는 대목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를 ‘공천 학살 원흉’으로 꼽는 친박 진영에서는 “듣기 좋은 정치적 수사일 뿐, 그는 또다시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김무성 의원도 “그는 싸움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다. 귀국하면 당내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전 최고위원을 잘 알고 있는 한나라당 관계자들이나 친박 진영 관계자들도 대체로 “그가 귀국한 뒤에도 계속 ‘조신 모드’로 죽어지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당내 소장파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최고위원은 그동안 수도 없이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지난해 초 정두언 의원이 중심이 돼 이상득 의원의 공천 배제를 주장했던 ‘55인 회동’ 파문 때에도 그가 막판에 ‘동지’들에게 등을 돌려 참여했던 의원들이 황당해했던 일도 있었다. 이번에도 일단 무난한 귀국을 위해 이상득 의원 측과 잠시 ‘휴전’을 한 것이지 일단 복귀하게 되면 또 언제 표변할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 전 최고위원이 결국 오는 5월경 조기전당대회를 추진해 당 대표직을 차지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는 ‘친 이재오 그룹’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의 독대가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물거품이 됐다. 당시 친 이재오 그룹에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대통령에게 굉장히 서운해 했다. 이 대통령도 자신의 측근들을 통해 친 이재오계 의원에게 ‘그때는 유감이었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그 뒤 개각 과정에서도 친 이재오 그룹은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이명박 정권에 일정한 지분이 있는 친 이재오 그룹으로서는 분명히 서운함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이 계속 이런 권력 구도로 끌고 갈 경우 ‘친 이재오 그룹’의 입지는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이는 계파의 존폐가 걸린 중요한 문제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조용히 지켜봤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배제 상황이 올 경우 공격적인 대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이 전 최고위원의 국내 복귀는 자파의 입지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모멘텀으로 작용될 수 있다. 특히 이 전 최고위원은 여권의 차기 주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상황에 있다. 이명박 정권이 후반기에 접어들면 그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올해 초에 복귀해 ‘터’를 닦아놓지 않으면 향후의 정치적 재기는 더욱 난망해진다. 이 전 최고위원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올해 안에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회복해야만 하는 절박한 입장이다. 그것이 실패할 경우 ‘친 이재오 계파’도 함께 몰락해 공중분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전 최고위원의 재기 여부는 친 이재오 그룹의 존폐와 향후 여권의 권력 구도 지각변동과 맞물리는 중요한 요소다.
이 때문에 이 전 최고위원이 복귀한 뒤 가만히 앉아있지는 않을 것이란 게 여권의 중론이다. 특히 친 이재오 그룹 일각에서는 ‘5월 조기전당대회 개최론’이 회자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이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에 올라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다는 게 그 골자다. 이 전 최고위원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재·보궐 선거가 있는 오는 4월 박희태 당 대표가 출마하면서 대표직을 사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에 이 전 최고위원 계파인 공성진 박순자 최고위원이 동반사퇴해 당 최고위원회를 무력화시켜 조기전당대회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그 시기는 5월이 될 것이고 조기전당대회에는 이 전 의원이 대표직에 출마할 예정이다.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는 김무성 의원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가 이길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친박 진영에서도 친 이재오 그룹의 조기전당대회 개최 추진을 의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 연말 “내년에는 자리가 생기면 치고 들어가자”라고 발언해 그가 당 대표직에 뜻을 두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의 여권 권력 구도를 자신과 ‘형님’ 이상득 의원으로 일원화시키고 있다. 이번 개각에서 그것이 여실히 증명됐다. 이런 점에서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도 대통령 ‘형님’의 결재 도장을 받아야 할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계속 이 전 최고위원의 권력 의지를 억지로 내리누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의 권력을 만든 지분이 있는 공동 주주이지 ‘종업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 전 최고위원이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위해 그 억눌림을 견디고 있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할 경우 예전의 ‘파이터’ 이재오로 돌아가 권력 쟁취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본격적인 권력 투쟁의 시기가 오면 이 전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후보 경선과 대선 등을 거치며 쌓아온 여권 핵심부의 ‘판도라의 상자’도 전장에 뿌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폭발력은 상상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