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친이세력만의 자체 경선은 당헌·당규 개정 등 많은 난제가 있긴 하지만 현재의 ‘박근혜 대세론’으로는 대권 후보 경선이 국민적 관심을 끌 수 없다는 점에서 당내 소장파들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친이세력의 자체 경선 구상은 아직 대선이 4년이나 남았다는 점에서는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그동안 위축돼 있던 친이세력이 자체 경선 프로젝트를 돌파구로 ‘박근혜 죽이기’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논란이 커질 수 있다. 친이세력의 ‘박근혜 대세론 깨부수기’ 핵심 프로젝트를 따라가 봤다.
그동안 여권의 친이세력이 사분오열된 원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박근혜 전 대표와 겨룰만한 차기 대권 주자의 부재에 따른 것이다. ‘포스트 이명박’을 담보해낼 차기 주자가 당의 중심에 서서 여권의 결속을 강화시켜 줘야 하는데 그런 구심점이 없다 보니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친이세력이 다시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확실하게 내세울 차기주자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친이세력의 당내 입지도 사상누각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친이세력은 ‘포스트 이명박’을 겨냥한 새로운 대권 주자 발굴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이세력 관계자들은 “아무리 둘러봐도 박근혜 전 대표와 싸울 만한 대항마는 없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라며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실 친이세력의 그 어떤 의원들도 차기 주자에 대해서는 시원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보도되는 차기 주자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2위 후보와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최근 <리얼미터>의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전 대표가 38.5%로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대선 출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4.8%로 뒤를 잇고 있다. 이밖에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9.8%),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7.1%),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6.1%),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4.5%), 김문수 경기도지사(3.4%), 오세훈 서울시장(3.1%) 순이었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친이세력이 내세울 만한 후보인 김문수 지사와 오세훈 시장은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 친이세력의 고민이 숨어 있다. 현재의 차기 대권 후보 구도로는 친이세력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나오는 ‘반전의 카드’가 의외로 신선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게 친이세력 일각의 주장이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핵심적인 전략 전문가로 활동했던 A 씨는 “상식을 뒤엎는 혁신적인 전략 없이는 친이세력의 차기 대권 주자 옹립은 불가능하고 박 전 대표와의 대결에서도 백전백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박근혜 전 대표 위주의 일방적 독주 구도로는 당내 경선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지난 경선이야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간의 피 말리는 경쟁이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 전 대표만을 위한 경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예상된 1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의 반감과 함께 만년 1위 박 전 대표에 대한 식상함으로 대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대권 주자 구도를 박 전 대표 1인 지배 판에서 양자 대결 구도로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항마를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A 씨는 ‘박근혜 대세론’을 뒤엎을 만한 획기적인 방법으로 “친이세력이 전국을 순회하며 자체 국민경선(예비경선)을 치러 후보를 선정한 뒤 대선 몇 달 전 박근혜 전 대표와 ‘파이널 라운드’를 개최하자”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런 구상은 친이세력 일부 의원들이 ‘박근혜 대세론’을 꺾을 만한 프로젝트 차원에서 심도 있는 논의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 이재오 전 최고위원(왼쪽), 정몽준 최고위원(가운데), 김문수 경기도지사(오른쪽) | ||
특히 친이세력의 자체 국민경선론은 ‘박근혜 죽이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논란도 예상된다. 앞서의 A 씨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내년 초까지 어느 정도 경제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2010년 지방선거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점에서 2010년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권의 후반기 명암을 가를 중요한 변수다. 박근혜 전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을 제기하며 전격적으로 당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반면 친이세력의 당내 입지는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친이세력 자체 국민경선론으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정풍운동을 일으켜 지방선거를 지휘했던 지도부를 물갈이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친이세력이 국민경선을 적극 제기해 여권의 활로를 찾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내년 지방선거 뒤 자체 국민경선론을 적극 제기해 국면 전환을 꾀하는 동시에, ‘박근혜 대세론’의 판을 깨고 새로운 대권 구도를 만든다는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친이세력의 한 의원은 “아직 대선이 4년이나 남아 있고, 박 전 대표를 제외하고 친이세력만의 자체 경선을 치르는 것도 친박그룹의 용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런 논의는 할 수 있어도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사실 친이세력의 자체 국민경선론은 시기상조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전략의 배경에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박근혜 대세론을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하면 영원히 추격의 기회를 잃을 것”이라는 친이세력의 절박함이 숨어 있다. 이런 점에서 친이세력의 자체 국민경선론은 그 실현 가능성을 떠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박근혜 죽이기 전략의 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의 대권 구도가 계속될 경우 박 전 대표는 무려 5년 동안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노출된 상황에서 대선을 맞이해야 한다. 당연히 대중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식상함과 여론조사 1위 피로증에 직면하게 된다. 박 전 대표의 이러한 딜레마를 친이세력은 자체 경선론으로 역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로서는 김문수 정몽준 남경필 원희룡 등 친이세력이 내세울 만한 차기 대권 주자들이 박 전 대표의 카리스마에 눌려 정치적 잠재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자체 경선을 통해 극적으로 후보로 선출될 경우 ‘스타 탄생’을 예고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 구도가 박근혜 독주에서 양자 경쟁 구도로 새 판이 그려지면 국민적 관심 폭발과 함께 친이세력도 자체 브랜드로 박 전 대표와 대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1위를 느긋하게 고수해오던 박 전 대표는 방어자의 입장이 돼 도전보다는 수구의 이미지로 비칠 수 있다. 반면 새롭게 선출된 친이세력 대표주자는 박 전 대표의 ‘수구성’을 비판하며 강력한 개혁 브랜드를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친이세력의 자체 경선론은 비록 그것이 성사되지 못하더라도 그 논의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수구성을 충분히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괴력이 있다는 게 정가의 시각이다. 또한 이런 친이세력 자체 경선론의 그랜드 디자인을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B 의원이 총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친이세력 일각의 이 ‘자체 경선 프로젝트’는 앞서 거론된 후보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경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과,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친박그룹의 용인도 받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지난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체를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대세론에 안주해오던 박 전 대표에게 수구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 친이세력의 자체 경선론은 머나먼 얘기가 아닌, 박근혜 죽이기의 또 다른 발톱인 셈이다.
성기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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