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각하와 충돌하지 마십시요”
박정희 정권은 1974년 4월 유신정권은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를 발동하고 긴급조치 위반자 180명을 구속·기소하면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1993년 별세)까지 체포해 갔다. 김수환 추기경은 처음에 지 주교의 소재를 수소문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는데 사흘쯤 후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이 찾아와 “우리가 지 주교님을 모시고 있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지 주교에게 올가미를 씌우려는 의도라는 것을 파악한 김 추기경은 주교회의를 소집하고 전국에서 신부 수백 명이 올라와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김 차장이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와 “대통령 각하와 면담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닌 것 같아 주교회의에서 논의한 후 면담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시 김 차장은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박 대통령과의 면담 직전 김 추기경에게 이런 말을 건넸는데 그 ‘비유’가 매우 의미심장했다고 한다.
“추기경님, 환자는 딱딱한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죽처럼 부드러운 음식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대통령 각하와 충돌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김 전 부장은 ‘박 대통령과의 대화를 최대한 부드럽게 끌어가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김 추기경에겐 그가 박 대통령을 ‘환자’에 비유한 것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는 것.
김 전 부장의 ‘조언’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는지 그날 저녁 박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는 1시간 30분가량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과 마주앉아 본 적은 많지만 가장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것이 그 자리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김 추기경이 ‘지학순 주교님을 풀어 달라’고 하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알겠다. 오늘 밤에 풀어드리겠다”고 시원스레 대답했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내친김에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젊은이들이 비상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들을 죽이면 안 된다. 국민과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건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며 즉답을 피했는데 다행히도 며칠 후 국방부 장관 이름으로 감형조치가 내려졌고,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철 전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정무특보 등이 그때 목숨을 건지게 됐다고.
김 추기경은 10·26 사태가 터졌을 때 김재규 전 부장이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학순 주교 구속사건 이후 정권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자주 접촉한 사람이 김 전 부장이었고, 그는 만날 때마다 자신이 박 대통령과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임을 강조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한편 집권자의 야욕과 군사 독재정권의 한계에 대해 괴로워하는 심경을 몇 차례 내비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김 추기경은 김 전 부장의 모친과도 만난 적이 있는데 노모는 “친형제 같은 두 사람 사이에 비극이 일어난 것을 보면 전생에 원수지간이었던 모양이다”라며 아들의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감당키 어려운 고통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감명 깊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이 총을 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유신정권 시절 종교계 지도자와 박 대통령 사이에서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파국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그가 10·26이라는 거대 사건을 몰고 온 장본인이 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
국민의힘, 추경호 재신임 두고 내홍…한지아, “추경호, 계엄 당일 혼선 책임져야”
온라인 기사 ( 2024.12.08 15:03 )
-
'탄핵 불참' 김재섭 지역구서 비판론…서명운동에 항의성 후원금도
온라인 기사 ( 2024.12.09 15:16 )
-
[단독] 충암파에 목줄 잡힌 사령관? 정보사 ‘선관위 상륙작전’ 동원의 비밀
온라인 기사 ( 2024.12.11 17: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