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미 각오가 된 사람입니다.”
영감의 얼굴은 올 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야비한 표정을 짓던 강도의 눈이 순간 고민하는 빛을 띄었다. 강도들이 탄 차가 그를 버려둔 채 끼익하고 타이어마찰음을 내면서 가버렸다. 며칠 후 그 강도가 총을 들고 한 교회의 백인목사 방에 들이 닥쳤다. 목사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고 강도가 소리쳤다.
“너는 예수를 믿으니까 죽을 각오가 되어 있겠지?”
순간 백인목사는 당황했다. 강도는 이번에는 그 백인목사를 죽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공범 중 한명이 뺏은 돈 가방을 그 교회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백인 목사의 표정에 여러 의미가 스쳐갔다.
“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백인목사가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대답했다. 강도가 순간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강도는 목사실에 숨겨둔 돈 가방을 찾아 가버린다. 밤늦게 혼자 보던 영화의 한 장면이다.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죽음이 닥치면 나는 바로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죽음을 앞에 둔 여러 사람과 대화를 했다. 검사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암에 걸린 고교선배와 나눈 대화가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검사로 출세해 보려고 참 쓸데없는 짓을 많이 했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는 절실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검사장이 되고 검찰총장 장관이 되고 싶었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고 세상 사닥다리의 끝까지 올라가 날개를 펼치고 싶던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그는 의사에게 “죽여줘, 죽여줘”하고 사정을 했다. 너무 심한 고통 때문에 화장실을 급하게 가듯 저 세상으로 뛰어갔다. 그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영정 사진 속에서 그는 이승의 나를 쳐다보면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화장장에서 그가 타고 있는 소각로 앞에 나 혼자 서 있었다. 평소 그의 주변에 들끓던 그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화장장까지 가게 했을까. 그는 모함에 빠진 나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는 또 죽기 얼마 전 내게 전화를 걸었었다. 내가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제약회사의 약들을 자상하게 소개해 주었다. 그는 입원해 있는 동안 독학으로 약에 대해 통달해 있었다. 그런 정이 나를 그의 마지막 길까지 배웅하게 한 것이다. 그의 죽음을 통해 이웃을 사랑한 흔적을 세상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걸 막연히 깨달았다. 죽음이 몇 달 안남은 의사에게 좋은 점심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만 했다. 돈을 벌어 비로서 해변가에 좋은 집을 사고 살만하니까 암이란 손님이 불쑥 찾아왔다. 힘들게 번 돈을 최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미국병원에 쏟아 부어도 죽음의 천사는 그를 놓아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체념을 한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평생 진료실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이만육천장의 차트가 나의 인생이었어요.”
그의 그늘진 표정을 보면서 그가 아쉬워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바닷가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건 아닐까. 가족과 밤하늘에 뿌려진 보석 같은 별들을 바라보고 싶을까. 특별한 게 아니라 그런 일상의 자잘한 행복들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원로 소설가 정을병씨가 죽음을 얼마 앞두었을 때 더러 만나곤 했다. 죽음을 앞둔 그는 가족이 없었다. 아들과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한번은 그가 이렇게 말했다.
“문학을 나의 종교로 삼았죠. 문학을 하기 위해 평생 하루에 한 끼만 먹었어요. 생활에 돈이 들지 않아야 문학을 할 수 있으니까요. 밥 대신 일생 많은 책을 읽었어요. 몸이 요구하는 음식보다 정신적인 밥이 내게 더 중요했으니까. 나는 죽어도 죽지 않아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일흔일곱권의 책이 바로 나니까.”
그 얼마 후 그의 영혼은 혼자 살던 집의 적막한 방을 빠져나와 저세상으로 갔다. 인간은 이세상의 시간 속으로 잠시 들어왔다가 돌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삶이란 무엇일까. 평소에 하던 일의 집적일까? 주변에 뿌린 한줌의 사랑이 본질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언제든지 부르시면 “예”하고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