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의원 | ||
하지만 최근 그의 행보는 예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21일 ‘친이-친박’ 부산 회동에서 보듯 계파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 모임에 참석하면서 당의 화합을 호소하는 등 공개적으로 당의 ‘중심’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 그가 이렇게 바람을 일으키며 당의 화합을 강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치권에선 그가 3월 초 불어 닥칠 ‘이재오 귀국 파장’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수성의 벽을 쌓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이 의원의 광폭 행보는 이 전 최고위원의 ‘권력 스틸’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견제구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 의원은 이명박 정권 2기를 맞아 이상득 친정 체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셈이다. 이상득 의원의 여권 재편 전략 밑그림을 들여다봤다.
이상득 의원이 여권 권력 재편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이명박 정권 1기 동안 이 의원은 그야말로 여권 내에서 ‘1인지하 만인지상’의 탄탄대로를 질주했다. 당내에선 “누가 당 대표인지 모르겠다”라는 말도 자주 나왔다.
하지만 이 의원이 맞이하는 이명박 정권 2기는 1기 때와는 상황이 사뭇 달라질 듯하다. 먼저 집권 여당의 ‘주주’ 격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3월 초 귀국을 앞두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그를 따르는 정치지망생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리한 공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당권 쟁취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55인 회동’을 통해 이 의원의 공천 배제를 주장했던 정두언 의원도 일정 부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득 의원이 최근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정두언 의원 주최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적군’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 것을 근거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상득-이재오-정두언’ 트리오의 협력 체제가 이명박 정권 2기 여권을 이끌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특히 이상득 의원이 최근 계파를 초월해 당내 각종 모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향후 여당의 권력 구도를 1인 중심에서 3인 협력 체제로 만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과연 그럴까. 이 의원은 그동안 자신이 누려온 권력의 향연을 이명박 정권 2기에서는 이재오-정두언 두 사람과 같이 나눌 준비를 과연 하고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 이재오 전 최고위원(왼쪽), 정두언 의원(오른쪽) | ||
이상득 의원이 그리고 있는 여권의 차기 권력재편은 이재오-정두언의 두 축을 포용해 같이 끌고 가는 협력 체제가 아니라 자신의 친정 체제를 더욱 ‘정밀하게’ 공고히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협력이 아닌 독주의 전략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먼저 이 의원 개인의 ‘욕심’이 다른 계파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상득 의원을 만난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부분 ‘그가 변했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다. 그의 측근 중 한 명인 B 의원은 한때 친박그룹과도 어울리며 두 계파를 오락가락하던 것이 그에게 포착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의원은 B 의원을 불러놓고 불호령을 내리면서 “처신 똑바로 하라”며 질책했다고 한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여의도에 퍼졌는데 당 주변에서는 “예전 같으면 그에게 ‘계파’는 필요 없었지만 이제는 관리해야 할 정치인이 부지기수다. 당연히 단호한 메시지를 던져 그들을 적절하게 묶어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가 점점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B 의원은 시범 케이스로 걸려든 것이다”라는 해석이 흘러나왔다.
또한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최근 모임에서 이 의원을 봤는데 마치 이명박 대통령처럼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아 조금 놀랐다. 예전의 이 의원이 아닌 것 같더라. 그에게 집중되는 권력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특유의 자신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 또한 자신이 실수하면 여당 전체가 흔들린다는 책임감도 작용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최근 이 의원이 국회 상임위 도중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의 ‘형님’ 발언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장면은 권력에 취해 오만해진 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틀어쥔 권력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는 정치권의 불문율을 떠올려 보면 이명박 정권 2기에서도 이상득 의원의 독주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의원은 또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나 정두언 의원을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공천 배제를 정면으로 제기해 그를 ‘정치적으로 죽이려’ 했던 정두언 의원이나 지난해 5월 수유리 모임에서 자신의 뜻을 거스르고 당 대표로 출마할 ‘거사’를 꾸민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그 뒤부터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전 최고-정두언 의원 간의 정치적 화해는 벌써 옛날에 물 건너갔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지난해 이 의원과의 ‘화해’ 모임에 참석한 뒤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전횡 등에 대해 이 의원에게 얘기하면 ‘그건 내게 맡겨라.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라며 변명으로만 일관하더라. 그때 이 의원한테 ‘자꾸 그렇게 하면 우리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라며 강력하게 얘기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자꾸 후회된다. 우리가 강력하게 나가야 이 의원도 위축될 텐데 너무 약하게 있으니 혼자 욕심내서 독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이 전 최고를 비롯해 소장파의 지분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소장파를 포용하는 순간 ‘정풍운동’을 명분으로 자신을 구세력의 상징으로 몰아 내칠 것이 분명하다고 보고 계속 견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적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이 의원으로 하여금 이명박 정권 2기에도 ‘이대로 계속’을 외치며 1인 독주의 친정 체제를 강화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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