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뇌관’으로 부상 검찰이 과거 정부의 권력형 비리 사건 재수사에 돌입하며 정·관·재계에 사정 태풍이 예상되고 있다. 사진은 곤지암 리조트 조감도. | ||
검찰 주변에선 정·관계뿐 아니라 대기업 총수가 연루된 대형 권력형 비리 수사가 재점화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극심한 경기침체와 입법전쟁 등으로 4월 재·보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여권 핵심부가 검찰 수뇌부와의 교감하에 과거 정권에서 불거진 대형 권력형 비리를 터뜨려 정국 대반전을 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대검 중수부가 겨냥하고 있는 권력형 비리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2월 임시국회가 끝나고 본격적인 재·보선 정국이 도래하면 대형 권력형 비리가 터질 것이다.”
2월 18일 기자와 만난 대검 고위 관계자 A 씨가 전한 말이다. A 씨는 “‘재계 염라대왕’이란 별명을 얻고 있는 이인규 검사장이 대검 중수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중수부 인력을 대거 보충하는 등 대기업이 연계된 사건 등 권력형 비리 수사를 재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수부가 재수사에 착수한 구체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씨는 “참여정부를 포함한 과거 정권 때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부상했다가 용두사미로 막을 내린 의혹 사건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답한 뒤 비보도를 전제로 “특히 2004년 불거진 곤지암 리조트 특혜 의혹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A 씨의 말처럼 이인규 부장체제로 돌입한 대검 중수부는 막강 사정라인을 구축한 상태다. 중수부 사령탑을 맡은 이 부장은 서울지검 형사9부장 시절인 2003년 SK그룹 비자금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금융수사통으로 정평이 나 있는 우병우 중수1과장과 이석환 중수2과장,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한보 사건 등을 다룬 바 있는 홍만표 수사기획관 등 검찰 내 내로라하는 특수통 검사들이 중수부 핵심 요직을 꿰찼다. 여기에 일선 검사 8명을 파견 형식으로 보강하는 등 중수부 인력도 대폭 확대했다.
최정예 사정라인을 구축한 중수부는 과거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 내지는 특정 의혹 사건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비롯해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수상한 돈 거래 의혹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을 겨냥한 사정작업을 재가동하는 동시에 과거 정권의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재수사 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중수부가 A 씨가 언급한 곤지암리조트 특혜 의혹 사건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경우 정·관계는 물론 재계에도 거센 사정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곤지암리조트 사업은 200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이 특혜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후 사업 승인 등을 둘러싼 특혜 시비와 부동산 투기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LG그룹 총수 일가가 이 사업에 연관돼 있었고 리조트 사업에 따른 지가 상승으로 1조 원대 수익이 예상됐던 만큼 당시 정·관계 로비 의혹 등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전될 조짐이 감지되기도 했다.
곤지암 리조트 사업은 LG그룹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서브원이 지난 10년간 총 2000여억 원을 투자한 개발사업이다.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일대 40만여 평의 불모지를 대단위 휴양지로 탈바꿈시킨 대형 개발사업이었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특혜 시비와 투기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곤지암 리조트가 들어설 지역은 팔당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 대책 지역 1권역에 위치하고 있어 환경정책기본법이나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사업 허가가 안 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광주시가 2004년 7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수질오염 총량제’를 도입하면서 곤지암 리조트 사업은 다시 탄력을 받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2005년 6월 경기도로부터 최종 사업승인을 받고 지난해 12월 화려하게 문을 열었다.
곤지암 리조트 사업을 둘러싼 특혜 시비가 끊이질 않자 대검 중수부는 2004년 10월 중순부터 내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 내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내사 과정에서 곤지암 인근의 오포 아파트 비리 단서를 포착한 검찰이 ‘오포 비리’에 총력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은 오포 비리 사건과 관련해 당시 한나라당 현역이었던 박혁규 전 의원과 김용규 전 광주시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측근인 한현규 전 경기개발원장을 구속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시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건설업체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박 전 의원과 김 전 시장 등이 뇌물을 수수한 시점이 2002년 대선 기간이고 대기업인 LG그룹도 사업체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대형 권력형 비리로 확전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곤지암 특혜 의혹과 맞물려 여야를 망라한 정·관계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이른바 ‘박혁규 리스트’가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박 전 의원 등을 구속하는 선에서 ‘오포 비리’ 사건을 마무리했고, 곤지암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내사를 종결했다.
검찰은 2006년에도 곤지암 사업과 관련한 비리 제보를 받고 은밀히 내사에 착수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치권 일각에선 ‘잦은 특혜 시비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증폭됐던 곤지암 사업에 대해 검찰이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은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건호 씨가 LG전자에 입사한 이후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았던 ‘참여정부-LG 밀월설’과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돌기도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새롭게 진용을 갖춘 대검 중수부가 또다시 곤지암리조트 특혜 의혹에 대해 전면 내사에 착수할 경우 지난 정부 때처럼 용두사미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복수의 대검 관계자에 따르면 중수부는 최근 광주시 등으로부터 곤지암리조트 조성 사업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제출받아 정밀 분석작업에 돌입하는 등 곤지암 특혜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전될 조짐이 감지됐지만 번번이 꼬리를 감춘 곤지암 리조트 의혹이 이번 검찰 내사를 통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될지 정·관계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