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균 민주당 대표(왼쪽),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 ||
정치권 주변에선 4·29 재·보선을 둘러싼 정 대표와 DY의 갈등이 단순한 기 싸움을 넘어 ‘이별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전북 출신인 두 사람 간에 호남맹주와 유리한 차기 대권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서바이벌 대혈투가 본격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양측이 공천 갈등을 치유하지 못하고 전면전을 선택할 경우 ‘분당’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지되고 있다. 신·구주류 측 일각에서 DY를 4·29 재·보선 최대 승부처로 부상한 인천 부평을에 전략공천하는 절충안을 놓고 막후 협상에 돌입한 것도 파국만은 모면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내 권력지도와 차기구도에 대변화를 몰고 올 두 거물의 피 말리는 혈투 속으로 들어가 봤다.
“두 사람의 선택이 민주당의 명운을 좌우할 것이다.”
3월 18일 기자와 만난 민주당 중진 A 의원이 던진 일성이다. 민주당 차기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준비 중인 A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자칫 경선과 관련해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는 만큼 비보도를 전제로 말문을 열었다. A 의원은 “민주당의 대주주인 정세균 대표와 DY가 논란이 일고 있는 재·보선 공천 문제에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며 “두 사람은 개인적인 사욕을 버리고 당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A 의원은 이어 “대선후보였던 DY가 고향 출마를 선언한 것이나 DY 출마를 어떻게든 저지하려고 하는 정 대표와 신주류 측의 움직임 모두 국민들에게는 볼썽사나운 권력다툼으로 비춰질 것”이라며 “정 대표와 DY가 공천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민주당은 또다시 극심한 내홍으로 빠져들면서 분당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A 의원의 주장처럼 DY 공천을 둘러싼 당내 계파 갈등은 기 싸움 수준을 넘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정 대표와 신주류 측은 DY의 출마 포기를 다각적으로 압박하는 동시에 DY의 무소속 출마 결행에 대비한 대응책 마련에도 분주하다. 특히 정 대표와 가까운 최재성·조정식·강기정 의원 등 386세력들은 DY가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기 이전부터 공개적으로 출마를 반대했고, 출마 선언 이후에는 ‘출마 반대 10인 성명’을 주도하기도 했다.
정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3월 18일 DY가 출마를 선언한 전주 덕진과 인천 부평을 두 곳을 후보 공모 절차 없이 ‘전략공천’ 지역으로 전격 결정한 배경에도 이들 386 세력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 의원은 이날 “대선후보를 지낸 분이라면 나처럼 지역구나 챙기는 정치인과는 달라야 하는 것 아니냐”며 DY 출마의 부당성을 부각시켰고, 조 의원은 “DY 출마는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라는 재선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변질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미경 사무총장도 3월 19일 한 방송 프로에 출연해 “DY의 무소속 출마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쐐기를 박은 상태다. 여기에 수도권 원외위원장들 일부는 전국 원외위원장들을 상대로 ‘DY 출마 반대’ 서명운동에 돌입한 상황이다.
정세균계 일각에서는 DY를 축출하기 위해 김근태 전 의장 등 비주류 세력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외곽 비주류인사들의 모임인 ‘민주연대’를 이끌고 있는 김 전 의장을 부평을이나 서울 금천이 재·보선에 포함될 경우 이 지역에 전략공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의 ‘DY 공천 배제’ 움직임에 대해 민주연대 등 비주류 측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만큼 비주류 좌장격인 김 전 의장을 포용해 구주류의 재결집을 차단코자 하는 복심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주류 측의 전 방위적 압박에 DY 측근들과 구주류 측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들은 당 지도부가 전주 덕진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결정한 이면에는 ‘정동영 죽이기’ 등 정치적 음모가 투영돼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DY의 팬클럽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은 연일 성명을 내고 “전략공천이라는 미명하에 DY를 배제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며 여차하면 무소속 출마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DY의 측근인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3월 19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과거 이회창 전 총재와의 불화로 탈당했을 때 굉장히 불화가 커 보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탈당’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결국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거물 정치인으로 거듭난 전례를 부각시킨 것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DY 역시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결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민주연대’ 공동대표인 이종걸 의원은 “DY가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분당과 유사한 혼란 사태에 빠질 수 있다”며 “이 문제를 잘못 풀어 재·보선에서 실패하면 지도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해 사실상 ‘DY 공천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DY계를 비롯한 ‘정통들’과 DY 지지세력 1000여 명은 3월 22일 인천공항에서 DY 귀국 환영행사를 대대적으로 갖는 등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서고 있다. 정 대표와 DY를 정점으로 한 신·구주류 간 파워게임이 심화될 경우 파국을 넘어 분당으로 치달을 불길한 기운마저 감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A 의원의 주장처럼 정 대표와 DY의 선택에 따라 민주당의 명운이 좌우될 수 있는 중대 기로에 직면한 셈이다. 그렇다면 22일 귀국한 DY와 정 대표는 과연 어떤 정치적 승부수를 띄울까. 정 대표는 DY가 귀국하면 DY와 회동을 갖고 당을 위한 결단과 희생을 촉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고, DY 역시 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를 만나 출마 당위성과 협조를 당부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모두 양자 회동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려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DY가 ‘고향 출마’ 승부수를 띄우자 정 대표는 ‘전략공천’ 카드로 맞불을 놓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양보하지 않는 이상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한 형국이다. DY 입장에서는 당 안팎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작심하고 꺼내든 승부수인 만큼 결코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 역시 재·보선 필승 전략과 맞물려 꺼내든 ‘전략공천’ 카드를 무력화시킬 경우 당 대표로서 위상이 크게 흔들리는 것은 물론 호남맹주 및 차기 대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마이웨이’를 고집해서 파생된 정치적 후폭풍과 비난 또한 두 사람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도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정 대표는 ‘DY 배제론’을 현실화시켜 잠재적 경쟁자인 DY 축출에 성공하더라도 극심한 당내 분열, 나아가 분당으로 비화될 경우 결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DY 역시 탈당 후 무소속 출마로 원내 입성에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한때 집권당 대선주자였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 일각에서 DY가 당의 명령에 불복하고 출마를 강행할 경우 ‘제2의 이인제’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공멸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극단적인 선택 대신 어떤 형태가 됐든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는 ‘상생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당 지도부 주변에서 ‘DY 부평을 전략공천론’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미경 사무총장은 3월 19일 한 방송 프로에 출연해 “당은 DY의 부평을 출마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며 DY의 부평을 전략공천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전주 덕진과 함께 부평을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한 배경에는 DY를 부평을에 출마시키기 위한 고도의 노림수가 투영돼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 지도부 입장에선 4·29 재·보선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최대 승부처인 부평을에 거물급인 DY를 출전시켜 수도권 바람몰이와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확산시키는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 DY가 낙선할 경우에는 당장 당 위상은 추락하겠지만 정 대표의 대망론과 신주류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최대 정적을 자연스럽게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실리를 챙길 수도 있다. 이래저래 정 대표와 신주류 입장에선 DY의 부평을 출마는 ‘꽃놀이 패’로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카드인 셈이다.
문제는 DY가 부평을 카드를 수용할지 여부다. 확실한 당선이 보장되지 않은 부평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할 경우 DY는 그야말로 정치생명을 위협받는 극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DY 측이 수도권 출마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덕진 공천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DY가 고향 출마가 원천 차단된 상태에서 무소속 출마라는 위험한 승부수보다 명분 있는 부평 출마를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당 지도부와 중진그룹이 재·보선 필승 전략 차원에서 DY의 부평을 출마를 적극 권유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선거 판세가 민주당에 유리한 분위기가 감지될 경우 DY가 부평을 카드를 마냥 외면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DY와 구주류 측이 전주 덕진 공천 배수진을 치고 있는 배경에도 부평을 카드 수용 등 재·보선 공천을 둘러싼 막판 협상 정국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 투영돼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과연 민주당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정치적 기로에 선 정 대표와 DY가 어떤 선택을 할까. 4월 재·보선 정국의 뜨거운 핵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정들의 전쟁’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