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야는 당 대 당 대결에 앞서 당내 계파 싸움으로 후보선정 과정에서부터 적잖은 잡음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선거를 불과 3주 남겨놓고 터진 ‘노무현 변수’의 여파도 관심거리다.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파장이 어디까지 튈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이 때문에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도 잔뜩 몸을 낮추고 긴장하는 모습이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여야 모두 선거 직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역선거인 재·보궐 선거의 의미를 넘어서 국민 전체 여론이 선거의 흐름을 좌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의 관문 격인 이번 4·29 재보선의 승기를 과연 누가 잡게 될 것인지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 3월 23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에선 ‘4월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들 중 가장 관심이 가는 지역이 어디인가’는 질문에 ‘경주 선거구’라는 응답이 24.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인천 부평을(21.6%), 전주 덕진(21.4%), 울산 북구(8.8%), 전주 완산갑(1.8%) 순이었다.
KSOI 윤희웅 정치·사회 팀장은 “이러한 여론은 이번 재보선을 이명박 대통령의 중간평가의 의미로 부각하고자 하는 야당의 의도와는 달리, (특정 지역구의) ‘친이 대 친박 간 대결 및 결과’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더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주 지역은 민주당 채종한 후보, 자유선진당 이채관 후보, 창조한국당 정강주 후보 등이 나설 예정이지만 한나라당 ‘친이계’ 정종복 후보와 ‘친박계’인 무소속 정수성 후보의 맞대결로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다. 몇몇 여론조사에 따르면 초반엔 정수성 후보가 앞서다가 최근 정종복 후보가 역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마다 결과가 뒤바뀌고 있어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지난 3~4일 포항 MBC·에이스 리서치가 경주 시민 1021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정종복 후보가 35.9%, 정수성 후보가 25.8%를 얻어 정종복 후보가 지지율에서 10.1%포인트(p)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주지역 케이블방송인 신라케이블이 3월 25일 한국갤럽에 의뢰한 조사(경주지역 유권자 514명 대상)에서도 정종복 후보가(18.0%)가 정수성 후보(13.4%)보다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의 다른 조사에서는 정수성 후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KSOI의 지난 4월 2일 조사에서는 정수성 후보가 41.0%를 얻어 정종복 후보(22.6%)보다 무려 18.4%p를 앞섰다.
다음날인 3일 실시된 경향신문·현대리서치 조사에서는 정종복 후보 29.7%, 정수성 후보 27.9%로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1.8%p에 불과했다. 3월 30일 중앙일보 조사에서도 정종복 후보(15.4%), 정수성 후보(14.5%)의 격차는 0.9%p밖에 나지 않았다.
이렇듯 친이 대 친박 인물의 대결이라는 점, 양 후보의 지지율이 조사마다 순위가 뒤바뀌고 있는 점은 선거결과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이고 있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연구팀장은 “경주지역 유권자들은 보수성을 많이 띠고 있고 응답을 유보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상황이어서 현재의 결과만으로 판세를 진단하긴 섣부르다”고 설명했다. 경주 지역 선거가 여권 내의 친이 대 친박 대결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한나라당은 적잖은 부담을 갖고 있다. ‘이상득 의원이 이명규 의원을 통해 정수성 후보의 사퇴를 권유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 양측의 대리전 양상이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
흥미로운 대목은 이상득 의원의 ‘후보사퇴 종용 사건’이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KSOI 윤희웅 팀장은 “이상득 의원의 (정수성 후보) 불출마 종용 발언이 정종복 후보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히려 친한나라당 정서를 자극해 정종복 후보의 지지도가 올라가는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상득 의원의 발언은 당내 계파 갈등을 겉으로 내보인 꼴이어서 당내 친박계 인사들의 정수성 후보 지원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총선과 같은 매머드급 선거도 아닌 데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당에서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원유세 요청을 받은 상황이어서 정수성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 경북 경주 선거구는 친이계 정종복 후보(가운데 왼쪽)와 친박계 정수성 후보(가운데 오른쪽)의 맞대결로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승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지난 3월 31일~4월 1일 실시된 울산매일신문·한길리서치 조사에서 한나라당 박대동 후보는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와의 가상대결에서 각각 3.8%p, 10.9%p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후보단일화를 이뤄낼 경우 한나라당이 ‘패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인 것. 한편 민주당은 이곳에 올해 만 29세의 김태선 후보를 공천자로 확정했다.여기에 무소속 후보들의 출마도 한나라당에게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박대동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전략공천’했는데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들이 무소속 출마를 준비 중이다.
‘친박연대’ 후보로 지난 18대 총선에서 출마했던 최윤주 전 울산시당 대변인, 역시 친박계인 이광우 전 한나라당 중앙위원, 김수헌 전 한나라당 울산시당부위원장 등이다. 이들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이곳 역시 친박 대 친이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게 돼 한나라당 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
배종찬 팀장은 “울산 북구는 지역 특성이 전통적인 영남과는 다른 데다 이번에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된 이들이 인지도가 그리 높은 인물들이 아니다. 만약 이곳에서 입지가 튼튼한 정몽준 최고위원이 측면지원에 나서 선거에서 낙승을 이끌어낼 경우 대권주자로서의 당내 위상이 높아질 수도 있다.
또 MB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이곳 유권자들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호남 지역의 전주 덕진, 전주 완산갑은 모두 ‘정동영 변수’의 여파가 주목되는 지역이다. 민주당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전주 덕진 무소속 출마로 인해 전주 완산갑 무소속 후보와 ‘무소속 연대’가 이뤄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전주 덕진에서 정동영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에 대해서도 현지에선 긍정적 여론이 우세한 상황. 지난 3월 26일 폴리뉴스·모노리서치가 전국 성인남녀 8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 전 장관이 민주당 공천 탈락시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고 응답한 이는 46.1%에 달했다.
또 3월 25~27일 중앙일보 조사에서 정동영 전 장관은 전주 덕진에서 46.2%의 지지도를 기록했다.
지난 4월 7일 민주당은 정동영 전 장관을 공천에서 배제하면서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전략공천해 대항마로 내세웠다. 지난 6일 기습적으로 정동영 공천불가 방침을 밝힌 이후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일.
김 교수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과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등을 지낸 ‘대북전문가’다.
여론조사 결과로 본다면 현재로선 정동영 전 장관의 당선이 유력하다. 여기에 전주 완산 갑과의 ‘무소속 연대’가 성사돼 돌풍을 몰고 온다면 민주당은 텃밭인 호남에서도 휘청거릴 가능성이 있다.
이미 이 지역에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오홍근 전 국정홍보처장은 18대 대선 당시 정 전 장관의 언론특보를 지낸 바 있는 ‘DY계’ 인물. 여기에 전북 전·현직 도·시·군위원 66명이 정동영 전 장관의 공천배제 방침에 반발하는 성명을 내는 등 현지 분위기도 민주당에 우호적이진 않다.
전주 완산갑의 경우 민주당 후보는 13일쯤 경선을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 지난 3월 26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는 한광옥 후보가 9.2%로 선두를 달렸으나 기타 후보와의 격차가 미미해 당 후보가 된 후에도 ‘정동영 벽’을 넘긴 힘들어 보인다. 배종찬 팀장은 “예전 같았으면 민주당은 수도권인 인천 부평을에만 신경 쓰면 되었겠지만 이번 재보선은 호남 지역에도 화력을 분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수도권의 ‘인천 부평을’은 양당의 승부처로 거론되는 곳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영·호남보다 이 지역의 선거 결과가 각 당에게 더 큰 의미부여가 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민주당에서는 애초에 재보선 전략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중간심판론’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재훈 전 산자부 차관이 공천을 받았지만 공천과정에 불만을 가진 천명수 전 인천시 정무부시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이어서 지지층 분산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홍영표 전 한미FTA국내대책본부장이 후보로 확정된 상황.
지난 3월 30일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홍영표 후보가 8.0%로 1위를 기록했고, 당시 홍미영 민주당 예비후보가 7.1%로 뒤를 이었다. 한나라당은 박현수 예비후보가 2.6%를 기록했으나 공천대상자를 정하기 이전의 조사여서 큰 의미를 두긴 어렵다.
부평을은 지난해 4·9 총선에서 한나라당 구본철 후보가 당선되긴 했지만 당시 민주당 홍영표 후보와의 득표율 차가 5.3%p에 불과했던 곳.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곳으로 분석되고 있어 선거 당일 투표율과 투표참석 연령층에 의해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