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임 반년 만에 교체설이 돌고 있는 후쿠다 총리. 최근 정서가 불안한 징후를 보이며 주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 ||
일부 조사에서는 후쿠다 내각의 지지율이 30% 이하로 떨어졌고 비 지지율은 50%를 넘어섰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처음부터 떠안고 시작한 연금 문제를 비롯해 주가 폭락, 가장 최근에 일어난 해상자위대 이지스함과 어선 충돌사건까지 굵직굵직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욕이나 리더십을 별로 보여주지 못했으니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그러나 정작 후쿠다 총리 본인은 아직도 “대책은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일본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일본 언론들은 ‘후쿠다 야스오 총리(71)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기사를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후쿠다 총리가 국회에서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가 하면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등 돌발행동을 보이고 있는 데다가, 국회나 언론 인터뷰에도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30% 밑으로 내려간 지지율 때문에 충격을 받은 후쿠다 총리가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마침내 ‘정신을 놓아버린 것 아닌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국회에서 보인 ‘눈물과 호통’ 사건이다.
지난 2월 19일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 ‘아타고’와 어선이 충돌해 어부 두 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초 해상자위대는 “충돌 2분 전에야 어선을 발견해 미처 피할 여유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나중에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비난을 샀다. 후쿠다 총리가 이 사건을 인지한 시점도 문제였다. 사건 발생 후 두 시간이 지난 후 보고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늑장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처음에 후쿠다 총리는 “방위대신이 사고 소식을 접한 것이 한 시간 반 후였으니 나한테 소식이 오는 데 두 시간은 충분히 걸릴 것”이라며 뭐가 잘못됐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2월 29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아타고 사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눈물과 함께 반성과 유감의 뜻을 보였던 것. 하지만 잠시 후에는 “위기의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에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당장 방위대신에게 전화해보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후쿠다 총리는 예전부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모든 일에 담담하게 대처하는 편이었다. 그 때문에 일부에서 ‘극장 정치’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쇼맨십이 강했던 고이즈미와 아베 전 총리의 ‘퍼포먼스’를 누구보다 싫어했다. 그런 후쿠다 총리가 최근 들어 눈물부터 호통까지 온갖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고 언론은 물론이고 자민당 관계자들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일본 정계에서는 후쿠다 총리를 이미 감정 조절이 불가능한 ‘정서불안정 환자’로 규정지었는지 총리 교체설이 심심치 않게 흘러 나오고 있다. 심지어 같은 자민당 관계자가 “고이즈미 개혁의 후계자는 요사노 가오루 전 관방장관”이라고 대놓고 말해 사실상 ‘포스트 후쿠다’의 이름까지 거론된 상태다.
같은 편인 자민당까지 등을 돌리게 만든 이유 중 하나는 후쿠다 총리의 무책임한 태도다. 3월 1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솔직히 말해 취임 후로 과거(전임 총리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연금 문제가 가장 상징적인 예”라고 발언했다. 이 말을 들은 한 관저 출입기자는 “뭐든 내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후쿠다 총리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주가의 폭락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원인이고, 연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아베 전 총리가 잘못한 탓이고,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민주당의 잘못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내 책임은 아니다’라는 것이 후쿠다 총리의 본심이라는 것이다.
▲ 국회서 이지스함-어선 충돌 사건 언급 중 눈물을 흘리는 후쿠다 총리. 이내 화를 버럭 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 ||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처음부터 논란이 되었던 ‘후쿠다 총리의 자질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별 노력이나 준비 없이 아베 전 총리의 퇴임으로 ‘운 좋게’ 총리 자리에 앉게 됐기 때문인지, 아직도 뚜렷한 정책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무위무책(無爲無策)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후쿠다 총리는 ‘공무원 체질’일 뿐 처음부터 ‘총리가 될 그릇’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다. 눈앞에 당면한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비 지지율이 50%를 넘어서면서 선거에서 승산이 없어진 자민당 관계자들의 바람은 후쿠다 총리가 알아서 총리직에서 물러나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 대담 프로그램에 나온 후쿠다 총리는 다음과 같은발언으로 자민당 관계자들을 또 한 번 ‘좌절’시켰다.
“지금은 어쨌거나 많은 씨앗을 뿌리면서 여러 가지 일을 도모하는 시기다. 반년이나 1년이 지나면 (그 결과물을) 모두 알게 될 것이다.”
자민당 관계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후쿠다 총리는 아직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