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한 남자’ 토마스 비티(34)는 현재 아내 낸시(45)와 아기를 만날 생각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 ||
미국 사회가 ‘임신한 남자’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는 7월 딸을 출산할 예정인 토마스 비티(34)라는 이름의 남성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으로 성전환한 여성’이다. 10년 전 성전환 수술을 받았던 비티가 임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술 당시 출산에 반드시 필요한 자궁, 난소 등 여성 생식기를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개방적인 미국 사회라고 할지라도 ‘남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이미 사방에서 그의 임신을 손가락질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요, 신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라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있는 비티는 최근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당당히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한편 초음파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임신 사실을 떳떳하게 알렸다.
현재 오레곤주 벤드시에 살고 있는 그의 본명은 트레이시 래건디노.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이미 어려서부터 자신 안의 ‘남성’을 느끼고 있었다. 사내아이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못 말리는 말괄량이였으며, 옷차림새도 남자아이 같았기 때문에 간혹 그를 사내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쁘장한 외모와 호리호리한 몸매를 타고난 탓에 주위에서는 “모델이 되라” 혹은 “미인대회에 나가보라”는 등의 권유가 쏟아졌다. 결국 그는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동안 모델 활동을 했는가 하면 18세 때에는 ‘미스 틴 하와이’ 지역 미인대회에 참가해 결선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로 산다는 것은 그에게는 고통이나 다름 없었다. “여자 옷을 입고 있는 단 하루도 편안하지 않았다”고 밝힌 그는 지금의 아내인 낸시(45세)를 만났던 24세 때 비로소 ‘남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그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며, 얼마 후에는 유방 절제 수술도 받았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출생 증명서나 여권, 운전면허증도 모두 ‘남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2003년 비티는 낸시에게 정식으로 청혼했으며, 남자와 여자로서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데 성공했다.
비록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사실 그는 엄밀히 말해서 ‘완벽한 남자’는 아니었다. 성전환 수술을 해도 그가 마지막까지 남겨두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궁 주위의 여성 생식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낸시가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부부는 먼 훗날 자신들의 아이를 갖기 위해서 자궁만은 그대로 남겨 두기로 결심했다.
▲ 성전환 수술 전 1989년 모델 활동 당시 토마스 비티. | ||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사람들의 선입견과 비난이 비티의 임신을 어렵게 했다. 몇몇 정자 은행은 종교적인 이유로 정자 기증을 거부했으며, 시술을 해주겠다는 의사들도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의사들은 “수염부터 깎고 와라”고 요구했는가 하면 또 어떤 의사들은 그를 ‘he’라고 칭하길 거부했으며, 낸시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가족들도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비티의 오빠(혹은 형)는 “네 아기는 괴물이 될 것이다”며 악담을 퍼부었고, 비티가 임신하기 전까지 그가 과거에 여자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낸시의 가족들은 배신감에 충격을 받았다.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법적으로 남자는 나팔관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남자인 비티의 경우에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이 없는 것이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시술 두 번째 만에 어렵게 인공수정에 성공한 비티는 현재 임신 6개월 중이며, 태아 역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처음 그가 세상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떳떳하게 알린 것은 동성애 잡지인 <애드버케이트>를 통해서였다. 지난 3월 잡지에 자신의 임신 사진과 소식을 공개한 그는 볼록해진 배를 자랑스럽게 내밀면서 “물론 임신을 한 상태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남자로 느껴진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나는 아빠로서, 그리고 낸시는 엄마로서 아이를 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도 예의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비티는 “아기를 갖는 것은 남자로서 혹은 여자로서의 욕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욕망이다”고 말하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서방 사회가 동성애자들에게 비교적 관대하다고는 하지만 과연 임신과 출산과 관련된 소위 말하는 ‘천륜’에 관해서도 얼마나 관대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