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송구·면목·부탁·사과·사죄….’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노 전 대통령은 ‘사과·사죄’라는 말을 총 6차례 사용했고 ‘부탁’도 6번 등장했다. 또 ‘바랍니다’(4번), ‘해명’(4번)이라는 말도 여러 번 사용했다. 이어 ‘변명’ ‘면목’ ‘송구’도 세 번씩 등장해 노 전 대통령의 마음 상태를 대변했다.
심리분석 전문가 박상용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은 큰 이슈 때마다 감정에 호소하는 글이나 연설을 통해 정치적 이슈에서 벗어나곤 했다. 실례로 대선 당시 권양숙 여사 가족의 빨치산 논란이 불거지자‘내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는 호소를 통해 감성적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사죄의 의미가 담긴 단어가 많이 사용되었지만 ‘사실’이란 단어가 총 18번 등장했다는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글에 담긴 궁극적인 목적은 ‘사실’과 다른 점을 알리고 ‘해명’하고자 함이다. ‘사실대로 가는 것이 원칙이자 최상의 전략’이라는 부분이 글 전체의 키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점은 지난 12일 세 번째로 올린 글에서 두드러진다.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노 전 대통령은 “언론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 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소재는 주로 검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이미 기정사실로 보도가 되고 있으니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박상용 대표는 “이 글에서는 ‘주도형’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대표적 성향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정당함을 대중에게 알리며 자신을 지키려는 적극적인 자기 방어의 심리상태”라고 해석했다.동시에 노 전 대통령은 ‘응분의 법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언급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박상용 대표는 “인정은 역설적으로 강한 부정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시키면서 자신의 잘못과 검찰의 권위를 인정하는 겸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조차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어필하면서 자신의 정당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금원이라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상황묘사도 등장한다. ‘강 회장이 구속되기 전의 일이다. 내가 물어보았다. “강 회장은 리스트 없어요?” “내가 돈 준 사람은 다 백수들입니다. 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돈을 왜 주었어요?” “사고치지 말라고 준 거지요. 그 사람들 대통령 주변에서 일하다가 놀고 있는데 먹고 살 것 없으면 사고치기 쉽잖아요. 사고치지 말고 뭐라고 해보라고 도와준 거지요.”
이러한 부분은 마치 한 편의 ‘시나리오’와 같이 당시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심리분석 전문가들은 “보다 사실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사실 관계를 떠나 글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인 글쓰기’에 능숙하다”고 설명했다. 박상용 대표는 “변호사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증거와 사실에 근거를 둔 행동을 선호한다.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호소하기 위해 그게 합당한 증거를 논하는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끝으로 노 전 대통령은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라는 마지막 글에서 지지자들에게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는 대목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박상용 대표는 “홈페이지는 대중과 함께하려는 노 전 대통령이 이를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통로를 통해 ‘나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표현한 것은 지지자들이 그래도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냄과 함께 또 다른 감정적 지지의 호소이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대처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감성의 정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있게 한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솔직함과 정직’이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노 전 대통령은 정직함을 무기로 국민들과 소통했고 이를 통해 인기를 얻었던 인물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었으나 이번 사안에서는 정직함으로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 쓴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속에는 현재 그의 상황에서 ‘되새길 만한’ 대목이 있다. 책 속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하고도 유용한 수단은 무엇일까?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기억나는 짧은 만화 하나가 있다. 사장이 회사간부들을 모아놓고서는 “여러분, 올해 우리 회사의 전략은 정직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간부 중 한 사람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입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다른 간부가 이렇게 말을 했다. “하지만 모험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닙니까?” 우스개 만화지만 그 속에는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