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회장은 지난해 7월 박연차 회장이 세무조사를 받을 때 박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받고 구명로비를 벌였다는 의혹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의 특별당비를 대신 납부했다는 의혹 등을 사고 있다. 만약 이런 부분에 국한해서 검찰 조사가 이뤄진다면 천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는 의외로 여파가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두 사건 모두 개인 간 자금거래로 밝혀질 경우 ‘기업인’인 천 회장에 대한 처리는 그 정치적 의미가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대로 천 회장이 2007년 대선 직전 주식을 팔아 현금화한 171억 원과 한나라당 경선 전인 2007년 4월 주식 매각으로 마련한 49억 원 등의 자금 흐름에 대해 검찰이 집중 추적해 비리 여부를 가리게 되면 사건이 정치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필연적으로 ‘경선·대선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당의 대선자금도 수사해야 한다는 형평성 문제로 이어져 제2의 대선자금 수사정국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일단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최근 언론 브리핑에서 천 회장과 관련해 “혐의가 없는데 왜 출국금지를 했겠느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하겠다”면서도 “박연차 회장 관련 부분만 하고 대선자금 쪽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천신일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 확전 여부는 철저하게 여권 핵심 실세들의 의중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실 여의도 주변에서는 ‘여권 핵심들이 검찰의 수사 상황을 실시간 보고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 만큼 이번 박연차 게이트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어른거리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천 회장에 대한 처리도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개인 간 채무 관계로 천 회장의 의혹을 ‘톤 다운’시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끝낼 것이라는 예상이 당 일각에서 계속 나온다.
하지만 최근 재보선 참패로 정국 돌파의 모멘텀이 필요한 여권이 의외로 초강수를 꺼내들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는 여권의 권력 구도와도 맞물려 있다. 사실 친 이재오 계나 소장파는 “이번 기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인사들을 싹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친 이재오 계 의원들은 이상득 의원과 관련된 의혹의 처리 여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기류는 박연차 게이트의 일부 의혹과 관련해 배후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이상득 의원과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SD(이상득 의원 이니셜)라인’의 청산을 의미하기 때문에 필연적인 권력쟁투를 가져올 전망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4·29 재보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SD라인에 속하는 ‘박희태 대표 체제의 존속’을 용인했기 때문에 천 회장에 대한 의혹이 여권 핵심부로 옮겨 붙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