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 분향소에서 상주로 문상객을 맞고 있는 정세균 대표와 유시민 전 장관.(맨 위 사진) 수원 연화장에서 조문하는 손학규 전 대표와 이해찬 전 장관.(위에서 두번째 사진) 봉하마을에서 추모하는 정동영 의원 부부.(위에서 세번째 사진) 봉하마을 빈소에서 한명숙 전 총 | ||
친노그룹 일각에선 신당 창당설이 흘러나오고 있고 원외 거물들의 민주당 복당론도 탄력을 받고 있다. 범민주계의 유력한 차기주자로 군림해 온 무소속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의 대권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반면 정세균 대표는 ‘조문 정국’ 이후 당내 위상이 강화되면서 향후 전개될 범민주계 권력구도와 대권지형 변화를 좌우할 ‘키맨’으로 부상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메가톤급 후폭풍이 범민주계 거물들의 위상을 변화시키면서 범민주계 세력 재편 및 차기 대권지형까지 뒤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조문 정국’ 이후 급물살을 타고 있는 범민주계의 역학구도 재편 움직임과 맞물려 중장기 대권플랜을 급수정하고 있는 범민주계 거물들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생존게임 속으로 들어가 봤다.
“범민주계 잠룡들의 대권전쟁에 서막이 오르고 있다.”
6월 18일 기자와 만난 민주당 A 의원이 던진 일성이다. 수도권 중진으로 당권파로 분류되고 있는 A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범민주계의 위상 강화와 맞물려 민주개혁 세력의 대통합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전제한 뒤 “특히 범민주계 차기주자들은 조문정국 이후 대권지형이 흔들리고 있는 만큼 대권 전략을 수정하는 등 본격적인 대권경쟁 체제에 돌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A 의원은 또 “범민주계 제 정파와 거물들이 해묵은 앙금을 해소하지 못하고 계파 간 대통합을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거센 역풍에 직면해 공멸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는 진단도 내놨다.
A 의원의 주장처럼 민주당을 정점으로 한 범민주계는 ‘조문 정국’ 이후 물밑 접촉을 통해 대통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각 정파들 또한 자파 생존전략과 맞물린 중장기 정치 구상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친노그룹 일각에선 신당 창당설이 흘러나오고 있고 원외 거물들의 복당론도 탄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리틀 노무현’이란 별칭을 얻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측을 중심으로 일부 친노 강경파가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신당설의 골자다. 개혁당과 열린우리당 시절 친노그룹 인사들로 구성된 ‘참정연’ 출신 일부 인사들이 최근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고 신당 창당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신당설은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유 전 장관을 비롯한 친노그룹 핵심 인사들은 신당 창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49재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치세력화를 모색한다는 것 자체가 여론의 역풍을 몰고올 소지가 다분하고 창당 자금이나 조직, 친노그룹이 처해 있는 정치적 현실 등을 감안하면 신당설은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다는 게 친노 진영의 대체적인 기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범민주계 대통합론을 주창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6월 16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등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국민 마음을 끌고 가려면 민주당과 다른 야당, 시민사회, 국민이 잘 협력하고 단결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맏형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마련한 이날 오찬에는 세 사람 외에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도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 전 총리에게 복당 문제를 언급하는가 하면 ‘친노 역할론’을 강조하면서 문 전 실장에게 내년 지방선거 때 부산시장에 출마할 것을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친노 인사들의 복당론과 맞물려 민주당 지도부가 무소속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대표와 주류 측은 친노 인사들에 대한 복당론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정 의원의 복당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정 대표와 정 의원은 4·29 재보선과 5·15 원내대표 경선을 거치면서 쌓인 앙금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당무감사를 통해 4·29 재보선 때 정 의원을 도운 중앙당 당직자와 전북지역 전·현직 지방의원 등 10여 명에 대한 징계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치유되지 않은 두 사람의 앙금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정 대표와 지도부가 범민주계 대통합론을 기치로 친노 인사들의 복당은 받아들이고 정 의원에 대한 복당을 끝내 외면할 경우 민주개혁 세력은 또다시 분열과 반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이 비록 무소속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민주당 안팎의 비주류를 이끌고 있고 4·29 재보선을 통해 전북지역 맹주 자리를 구축하는 등 민주개혁 진영에서는 여전히 무시 못할 차기주자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계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복당 동력을 상실한 만큼 복당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독자세력화를 모색한 뒤 떳떳하게 당 대 당 통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친노그룹과 정 의원 등 범민주계가 대통합에 성공한다 해도 ‘혈액형’이 다른 제 계파들이 대통합 깃발 아래 한마음 한뜻으로 뭉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범민주계 역학구도 재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계파 간 권력암투가 불가피할 것이고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둘러싼 피 말리는 혈투가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범민주계 대통합론은 야권의 차기 대권지형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대권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잠룡들의 힘겨루기 또한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은 벌써부터 10월 재보선 출마설과 함께 내년 서울시장 출마설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 두 사람은 이해찬 전 총리와 더불어 언제든지 차기 대권 레이스에 합류할 수 있는 친노그룹 핵심 인사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정 대표와 친노 핵심 인사들이 조문정국 이후 몸값을 끌어올리고 있는 반면 정동영 의원과 손 전 대표는 당내 입지는 물론 대망론까지 흔들리는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 4·29 재보선 때 무소속 출마라는 승부수로 민주당 텃밭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화려한 정계복귀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민주당 복당이 불발되면서 무소속 한계에 봉착한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북핵문제, 사회 각계각층의 시국선언 열기 등 초대형 이슈가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정치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정 의원 측은 당분간 ‘정중동’ 행보를 유지하면서 정 의원에 대한 복당 문제를 민주당 지도부가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본 뒤 중장기 대권전략을 재정립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 역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칩거가 장기화되면서 그의 존재감이 점점 퇴색돼 대권 입지도 좁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친노그룹이 노 전 대통령의 재평가 움직임과 맞물려 역할론과 함께 범민주계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손 전 대표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손 전 대표는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보따리장수’라는 비판을 받는 등 친노그룹과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조문 정국’ 이후 손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다소 약화되고 있지만 4·29 재보선 때 정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의 요청을 받고 수도권 지원사격에 나서 초박빙이었던 수도권 선거를 승리로 이끈 공로도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손 전 대표의 칩거가 장기화되면서 민감한 현안에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등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최근 기자와 만나 “손 전 대표는 국민들이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한 만큼 조만간 칩거를 풀고 정계복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구체적인 시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측근은 “빠르면 7월 말쯤 칩거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올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역구인 종로 사무실과 대선 경선 캠프로 사용했던 서대문 사무실을 오가면서 당분간 민생행보에 전념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는 1,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박종희 한나라당 의원의 지역구(수원 장안)가 10월 재보선 지역으로 확정될 경우 이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범민주계 각 정파 거물들의 움직임을 보면 ‘조문 정국’ 이후 범민주계 대통합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범민주계 역학구도 및 대권지형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그 반사이익을 톡톡히 챙기면서 대반전의 동력을 확보한 범민주계가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대통합을 일궈낼 수 있을까. 또한 향후 범민주계 권력구도 재편 과정에서 차기 주자들의 대권입지는 어떻게 재정립될까. 정치권의 이목이 다시 여의도로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