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여당 내부에서조차도 “소리만 컸지 수레에는 별 다른 내용물이 들어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오히려 이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을 역이용해 정국 반전의 대반격 카드를 준비 중인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근원적 처방’에 담긴 양날의 칼을 추적해 보았다.
요즘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근원적 처방’에 관한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은 이 대통령이 언급했던 ‘근원적 처방’에 대해 개헌, 인적쇄신, 행정체제개편과 같은 정치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각계각층의 쇄신 요구에 부응해 이번에야말로 전면적인 정국 수습책을 내놓을 것이라며 백가쟁명식의 대안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헌은 이 대통령이 필연적으로 레임덕에 빠질 것이란 점에서 그 가능성이 낮다. 인적쇄신론도 친박그룹과 자유선진당까지 포함하는 보수 연합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파격적 인사가 아닌 이상, ‘단계적 개편’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점에서 정확한 답은 아니다. 행정체제개편과 같은 사안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사과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현재의 경색정국에서 민주당과의 협의 후 타결은 언감생심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대통령이 언급한 ‘근원적 처방’은 개헌이나 인적쇄신과 같은 정치 전략적인 방법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가 언급했던 이념·지역 갈등, 권력형 비리, 정쟁의 세가지 문제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느 것 하나 개헌과 인적쇄신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정치권에서 계속 떠들던 개헌이나 인적쇄신이 아니라 앞서 밝힌 세가지 ‘사회적’ 적폐를 어떻게 뜯어고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이 발상의 전환을 하려는 것 같다. 정치적인 문제를 사회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해결하려는 것 같다. 그동안 역대 정권이 정치적 악습을 정치적 관점으로만 접근해 실패한 것을 거울삼아 역발상으로 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해 해결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인사는 ‘근원적 처방’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현재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 과정이 일부 세력에 의해 이념적으로 왜곡돼 정부의 올바른 정책도 본래 의도와 달리 자꾸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이 이런 점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최근 자주 강조하는 ‘정치선진화’ 관점에서 해결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재 여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국정 기조가 경제에서 사회 안정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관가 소식에 정통한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관가에는 이 대통령의 관심이 경제보다 정치·사회적 악습 해결에 더 집중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도 ‘좌파가 진실을 호도하고 국민을 미혹해 사회 안정을 저해하는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국정운영기조를 성장에서 사회 안정으로 급선회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정보기관이 진보 사회단체 등에 대한 스크린을 크게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국정원을 통한 민간사찰이 이뤄지고 있다’고 폭로한 데서도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박 상임이사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시민단체와 관계 맺는 기업의 임원들까지 전부 조사해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통에 많은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힘겨운 상태다.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곳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며 ‘국정원 개입설’을 주장했다.
▲ 지난 10일 6·10항쟁 22주년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이 등장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대통령의 ‘근원적 처방’은 개헌이나 인적쇄신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지난해 촛불정국 이래 계속돼온 ‘왜곡’된 사회 여론 형성 구조의 ‘쇄신’이라는 데로 결론이 모아진다. 앞서의 청와대 관련 소식통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쇠고기 정국을 거치면서 ‘좌파’가 국민을 미혹해 사회불안을 야기시키고 있어 국가의 명운이 걸린 성장을 저해하고 있으므로 좌파척결이 안 되면 미래도 없다는 절박한 상황인식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향후 정치선진화를 위한 제도개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시국인식 ‘바이러스’는 최근 장관들과 여권 인사들에게도 그대로 전파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검찰의 MBC
사실 이 대통령의 시국 인식은 지난해 촛불정국 이후 한 걸음도 ‘전향적’으로 바뀐 적이 없다는 게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의 전언이다. 오히려 이 대통령은 지난해 촛불정국과 올해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진보매체의 ‘편향된’ 보도로 인해 서울광장에 모인 인파가 마치 국민 전체의 여론을 대변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고집불통’ 시국 인식은 “좀처럼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 말이 언젠가는 옳을 것’이라고 믿는 강한 자기 확신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내가 옳다’는 자기 확신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말단직원에서 현대건설 회장에까지 오른 그로서는 당연히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성향이 대통령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가 각계각층으로부터 ‘변화와 소통’을 주문받지만 이를 서울시장 때의 ‘청계천 복원 공사 반대 수준’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의 반 이명박 정서도 그로서는 언젠가는 잊혀질 ‘휘발성 여론’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요즘 여의도 정가에 흘러 다니는 이야기 중에 ‘이 대통령에 대한 청와대 인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이 뒤섞여 있는 것도 그의 독단적 성향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청와대 인사들이 이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는 경향도 늘었다고 들었다. 아마 참모 교체가 임박했기 때문에 여러 말들이 나오는 것 같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일을 이 대통령 본인이 다 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기업가 기질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참모들을 잘 믿으려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중요한 현안에 관여하고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무원이나 정치인 등의 전문가들이 결정해야 할 일도 전부 대통령이 ‘혼자’ 결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 일각에서는 ‘누가 내 자리에 와도 어차피 대통령이 다 결정하니까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푸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서울시장 때도 현안에 매우 밝아 자주 참모들을 몰아붙였던 전례를 보듯이, 그때보다 더욱 핵심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이 대통령이 참모들의 조언이나 보고를 무시하는 경향도 생기고 있어 아랫사람들의 보신주의도 날로 늘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시국에 대한 근원적 처방이 결국 ‘좌경화된 사회를 계몽·선도해야 한다’는 일방적 인식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그리고 그 징후는 여당 지도부의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사과 거부와 미디어법 강행 처리라는 밀어붙이기식 정국 운영으로 일부 나타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언급한 ‘근원적 처방’이 자신의 변화와 국민을 향한 소통으로 향했던 것이 아니라, ‘좌파’에 놀아나는 ‘우매한’ 국민에 대한 처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