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성관 신임 검찰청장(왼쪽)이 내정되면서 검찰청사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대규모 인사 태풍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천 내정자의 깜짝 발탁에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던 검찰은 외형상 다시 평온을 되찾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조직 내부에는 곧 불어닥칠 대규모 인사태풍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고 일부 부서의 경우 새로운 사건 진행을 보류하는 등 ‘개점휴업’에 가까운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들은 인사태풍이 몰아칠 때까지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지속되겠지만 인사에 불만을 품은 인사들이 반발할 경우 또 다른 태풍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대규모 물갈이를 초래할 A급 인사 태풍이 서초동 검찰청사를 차츰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인사태풍에 희생될 가능성이 높은 검찰 내 일부 불만 세력들이 현 여권 실세들이 연루된 중요 수사 기밀자료를 따로 챙기거나 외부에 유출하는 등 반격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숙청에 가까운 인사태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보다 3기수 아래인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사시 22회)이 신임 총장으로 내정된 이후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말들이다.
천 내정자의 선배로 차기 총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권재진 서울고검장(사시 20회)과 김준규 대전고검장(사시 21회)은 6월 22일 사의를 표명한 상태고, 천 내정자보다 윗기수인 고검장 5명도 용퇴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검찰 고위간부들의 용퇴 선언이 잇따를 조짐이 일자 김경한 법무장관은 조직 안정을 위해 사의 표명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긴급 진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상명하복’ 관계가 철저한 검찰 조직의 속성상 천 내정자보다 선배 기수는 물론 동기와 일부 후배들도 용퇴 의사를 내비치고 있어 검사장들의 대규모 연쇄 사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전체 검사장급 자리 55개 중 4분의 1 이상인 15석 정도가 공석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박순용 검찰총장이 발탁됐을 때 검사장급 이상 13명이 용퇴했고,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직후 ‘기수 파괴’ 인사로 14명의 검사장이 물러났을 때보다 많은 수치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집권 2기에 진입한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 개혁과 쇄신을 명분으로 권력의 핵심인 ‘검찰 장악’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과거에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통과의례처럼 검찰 조직에 메스를 들이댄 전례에 미뤄 이 대통령 또한 본격적인 ‘검찰 손보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과거 10년 진보 정권 때 승승장구한 검찰 내 호남 인맥이 대거 물갈이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실제로 천 내정자의 선배로 용퇴가 예상되고 있는 고검장급 7명 중 명동성 법무연수원장(사시 20회. 전남), 문성우 대검차장(사시 21회. 광주), 이준보 대구고검장(사시 21회. 전남) 등 3명이 호남 출신이고, 동기인 이귀남 법무부 차관 역시 호남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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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이어 “고검장급 호남 인사의 용퇴는 불가피하더라도 고위 간부들에 대한 인사 과정에서 과거 정권에서 성장한 호남 인사들에 대한 편파·보복성 인사가 단행될 경우 조직적인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검찰 속성상 인사를 문제 삼아 조직적으로 반발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물론 인사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분명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답한 뒤 “하지만 오랜 세월 검찰 수뇌부 및 고위 간부로 활동해 온 호남인맥 일각에서 자신들이 타깃이 된다고 여길 경우 현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수사 기밀을 은밀히 외부로 유출하는 등 ‘반격’에 나설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천 내정자의 발탁으로 검찰 조직 전체가 대규모 인사태풍에 직면한 만큼 인사 이후 그 후폭풍 또한 거셀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검찰의 인사태풍이 검찰 내 호남 인맥 등 특정 대상의 숙청으로 비화될 경우 그 부메랑이 정치권으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돌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책임론에 휩싸여 낙마한 임채진 전 총장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법무부의 수사지휘권 발동’ 등 외압 의혹을 부추길 수 있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따라서 인사 태풍에 휘말려 용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검찰 수뇌부나 한직으로 좌천된 고위 간부들 중 일부가 작심하고 폭탄 발언을 쏟아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조직의 명예’를 중시하는 검찰의 속성상 용퇴한 수뇌부와 고위 간부들이 폭탄 발언으로 불만을 토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여권 인사 관련 수사 X파일 등을 야권이나 언론에 흘리는 방법으로 ‘반 정부’ 정서를 드러내거나 검찰 인사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분출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 진상규명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박영선 의원은 얼마 전 기자회견을 통해 “권력 핵심부에서 천신일 씨의 정치자금 부분은 조사하지 말아달라는 압력이 있었다. 제보자는 수사 핵심 주변에 있는 사람이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과 수사팀 내부에도 현 정부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인사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조만간 단행될 검찰의 대규모 인사 태풍에 떠밀린 검찰 내 일부 불만 세력들이 정치권과 언론에 또 다른 X파일을 흘릴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불러온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 대한 편파·보복 수사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박연차 사건이나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기밀 자료가 외부로 유출될 경우 여권과 정치권은 또다시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