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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대선이 한창이던 97년 12월 10일. 10·26 뒤 18년간 은둔생활을 하던 ‘영애 박근혜’는 길고 긴 칩거를 깨고 다시 대중 앞에 섰다. 당시 평범한 시민이던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회창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박 전 대표의 영입은 아들 병역 의혹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이 후보에게 추격의 발판을 제공했다. TK에서 상징성을 지닌 박근혜는 이 후보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지방선거 열기로 정치권이 달궈지던 2002년 4월 4일.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후보로 MB를 추대했다. 당초 중진의 홍사덕 의원과 경선이 예상됐지만 홍 의원이 불공정 시비를 제기하며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MB가 단독 추대됐다. 이 과정에서 이회창 총재가 초반 홍 의원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막판에 MB의 손을 들어줬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 결과적으로 이 총재가 96년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정치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던 MB의 정치적 재개를 도운 셈이다.
이 총재는 이렇게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과 우호적인 첫 인연을 맺었지만 ‘협력’은 여기까지였다. 특히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당내 경선 때 이들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시 ‘지독한 경선’ 분위기가 절정을 향해가던 때, 박 전 대표는 이 총재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이 총재가 16대 대선 패배 후 정계를 은퇴했지만 여전히 한나라당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는 ‘이명박 후보’의 정체성 등을 비판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지만 끝내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진 않았다. 대선 삼수를 노리고 있던 이 총재에게는 애당초 ‘불가능’한 약속이었다.
게다가 이 총재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당권·대권 분리를 요구하며 탈당했던 박 전 대표에 대한 앙금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박 전 대표가 탈당하던 날 이 총재는 의원회관의 박근혜 의원실로 직접 찾아가 만류했지만 박 전 대표는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MB도 이 총재를 만나 경선 과정에서의 도움을 부탁했지만, 마찬가지로 이 총재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이 총재로서는 2005년 10월 당시 서울시장이던 MB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노무현과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냐고 하면 노무현이다”고 말한 대목을 떠올렸을 법하다.
이렇게 두 사람을 ‘냉대’했던 이 총재는 2007년 11월 7일 대선출마 선언을 해버렸다. 야권에서 도곡동 땅 차명 의혹, BBK 의혹 등을 제기하며 대대적인 공세를 펴자 MB의 지지율이 급락하던 때였다. MB 측은 격분했다. 당시 선대위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서 “영감(이 총재)이 망령 든 것 아니냐”는 거친 언사가 터져 나왔다.
이 총재의 출마로 아이러니하게 박 전 대표의 몸값은 상한가를 쳤다. 이 총재도, 이 후보도 박 전 대표의 지지를 절절히 바라면서 노심초사했다.
이 총재는 그 해 12월 14일 박 전 대표의 삼성동 자택을 비공개로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다. 지지를 요청하기 위함이었지만 박 전 대표는 만나주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박 전 대표는 1층 응접실까지 이 전 총재를 들였다. 한때 당 총재를 지낸 분에 대한 작은 배려였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2층에 머물며 끝내 응접실로 내려오지 않았다. 이후 이 총재는 두 번 더 박 전 대표 자택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했지만 그의 삼고초려는 허사였다. 그러는 사이 이 대통령도 박 전 대표 측과 접촉하며 절박하게 지지를 호소했다. 참모들 사이에선 ‘18대 공천의 지분 50%를 박 전 대표에게 주자’는 말까지 나왔다. 박 전 대표는 공개적으로 “(이 전 총재를 돕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는 말로 이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다시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이 대통령과 이 총재가 연대를 모색 중이다. 갈등과 반목을 반복했던 두 사람 사이에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인력’이 작용하고 있다. 한 사람은 막강한 ‘미래권력’인 박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은 마지막으로 차기 기회를 한 번 더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충청 연대론’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15일 기자들이 ‘충청 연대론’에 대해 묻자, 그는 “내가 답할 성격이 아닌 것 같다”는 말로 응수했다. 표정에서 비장함은 없었다. 오히려 별거 아니라는 듯 미소와 여유까지 보였다.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 이 총재의 ‘관계’로 보아 밀월은 어렵다고 예상하는 걸까.
이진기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