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상춘재로 향하는 녹지원 입구에서 오찬회동을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양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MBC(MB+창)연대’가 현실화될 경우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은 거센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고 차기 대권지형 또한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충청 연대론’을 명분으로 사실상 ‘박근혜 고사 작전’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른바 ‘MB-이회창 밀약’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여야 정치 지형은 물론 차기 대권구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메가톤급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밀약설의 실체 및 그 후폭풍을 들여다봤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여권과 선진당의 연대 움직임은 여러 번 감지된 바 있다. 여권은 민감한 현안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선진당에 보수연대를 명분으로 정책 공조를 구애했고, 차별화된 보수 야당을 표방해 온 선진당은 대여 비판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여권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여왔다.
양측의 느슨한 연대는 조각이나 개각 때 ‘충청 총리론’을 매개로 수면 위로 부상했다가 인사가 끝나면 다시 물밑으로 가라앉는 미완성 행보를 반복했다. 지난해 7월 개각 때는 선진당 심대평 대표가 ‘충청 총리론’을 등에 업고 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리면서 ‘한(나라당)-자(유선진당) 동맹’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심대평 카드’가 무산되고 한승수 총리가 재신임을 받으면서 ‘충청 총리론’을 매개로 한 ‘한-자 동맹설’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지난 6월 중순부터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 보수대연합론을 기치로 한 ‘충청 연대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7·8월 개각설과 맞물리면서 ‘충청 총리론’도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개각 때마다 총리 하마평에 올랐던 심대평 대표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이원종 전 충북지사 등이 ‘충청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충청 총리를 매개로 한 ‘충청 연대론’이 정치권의 핫 이슈로 부상하자 이 총재는 파문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직접 진화에 나서고 있다. 이 총재는 7월 13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요즘 선진당과 여권 사이에서 충청권 연대니, 대연합 같은 말이 오가고 있는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한마디로 그런 말이 오간 일이 전혀 없다”며 “특정 사안에 대한 개별적 공조는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 정책 공조나 정치연대는 말할 상황도, 시기도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 총재는 이어 “여권 사이에 정책공조 및 정책 연대의 틀이 생기면 모르되 한두 사람이 총리나 장관으로 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시기와 방법이 문제이지 MB와 이 총재를 정점으로 한 ‘충청 연대론’이 어떤 식으로든 현실화될 가능성에 힘을 보태고 있는 분위기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구도를 겨냥하고 있는 MB와 이 총재 입장에서는 ‘충청 연대론’이야말로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최상의 승부 카드라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마음 한 구석에 꺼지지 않은 대망론을 품고 있는 이 총재로서는 소수 야당을 이끌고 대권에 도전하는 것은 분명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거대 여당과의 동맹을 통해 그 속에서 대권 해법을 찾는 게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특히 ‘충청 연대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고조될 경우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 입지를 구축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총재가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대망론은 접을지라도 정치권에서 무르익고 있는 개헌론이 현실화될 경우 ‘권력 분점’의 틈새를 노려 권력 자체보다 권위와 명예직을 목표로 삼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대권이든 개헌론을 매개로 한 권력 분점이든 이 총재가 향후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펼치기 위해선 거대 여당과의 끈끈한 연대가 결코 손해 볼 장사는 아닐 것이란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MB 입장에서도 ‘충청 연대론’은 내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나아가 차기 대권에 유리한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는 더 없는 승부 카드가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충청 민심을 잡지 않고서는 결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역대 대선 교훈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92년 14대 대선 때는 민자-민주-자민련 간의 3당 합당을 성사시켜 충청권 맹주였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끌어안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권의 주인공이 됐다. 97년 15대 대선 때는 이른바 ‘DJP 연합’을 이끌어 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좌를 거머쥐었고,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수도권 충청 이전’ 공약으로 충청권 민심을 사로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리의 주역이 됐다.
동서로 정서적 벽이 작용하는 정치현실상 2012년 차기 대선에서도 충청권이 대권 향배를 가르는 중요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MB와 여권 핵심부가 소수 야당에 불과한 선진당과 이 총재에게 ‘보수대연합’ ‘충청 연대론’ 등을 흘리면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여권 관계자들은 ‘충청 연대론’ 이면에는 친이계나 자신의 정치 철학과 이념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후계자에게 권좌를 넘겨주고 싶은 MB의 대권 복심도 어느 정도 투영돼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MB가 자신의 지지기반인 수도권에 충청권 민심을 더하고 보수기득권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총재를 끌어안을 경우 여권 내 유력한 차기주자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박근혜 전 대표와 정면 승부를 펼친다 해도 승산이 있을 것이란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란 얘기다.
친박 진영이 ‘충청 연대론’에 강한 불쾌감을 표출하면서 숨은 노림수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보수대연합론’으로 포장된 ‘충청 연대론’에 사실상 박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고도의 노림수가 담겨져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친박계의 한 재선 의원은 “‘충청 총리’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선진당과 충청 민심을 흔들어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하는 동시에 ‘박근혜 고사 작전’에 시동을 걸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청와대와 친이계의 얄팍한 술수가 드러날 경우 국민적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분개했다.
친박계는 아직까지는 ‘충청 연대론’과 관련한 가시적인 진행상황이 포착되지 않은 만큼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연대론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경우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전면전도 불사할 것이란 결의를 다지고 있는 분위기다.
과연 MB는 이번 개각 때 ‘충청 총리’를 매개로 한 ‘충청 연대론’ 카드를 꺼내들까. 또 이 총재는 자신의 대망론 및 향후 정치적 구상을 펼치기 위해 MB와 손을 잡을까. ‘MB-이회창 밀약설’과 맞물린 두 사람의 정치적 선택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