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이 지난달 16일 금강산콘도에서 대 북송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발표문을 들고 있는 이는 김윤규 사장. | ||
그러나 정치권의 공방과 무관하게 거액의 대북 송금으로 국내 제일의 재벌그룹이 붕괴됐고, 그 돈이 북한의 군사력 증대에 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실체 규명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고 있다. 지난 2월14일과 16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당사자인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대북 송금에 대한 입장을 밝혔지만 ‘진실’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로처럼 얽힌 대북 송금 의혹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단초가 확인돼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98년 정국을 강타한 이른바 ‘총풍 사건’의 장본인 중 한 명인 대북사업가 장석중씨가 작성해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가 바로 그것.
장씨에 따르면 A4용지 27장 분량의 이 자필 진술서에는 98년 당시 대북 사업을 전제로 현대 정몽헌측과 북한이 합의한 ‘대북 비밀 지원’ 내역 등이 담겨 있다.
이 진술서대로라면 현대측이 북한에 물밑 지원키로 한 물자의 규모는 액수로 환산해 조 단위. 이는 대북 사업을 펴기 위해 현대측이 이미 98년부터 비공식적으로 막대한 물자를 제공해 왔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대금 송금 의혹으로 인한 특검 정국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장석중 진술서’는 장씨가 ‘총풍 사건’으로 수감중이던 98년 10월22일부터 27일 사이에 작성됐다. 장씨는 이 진술서에서 현대의 대북사업에 직접 관여한 당사자로서 당시의 사업 전개과정을 상세히 언급했다. 이에 따르면 대북 송금 사건의 뿌리는 당시 정몽헌 회장이 북측에 제시한 ‘큰 떡’에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98년 1월13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정몽헌(MH) 부회장을 한 단계 격상시켜 정몽구(MK) 회장과 공동 그룹회장을 맡도록 했다. 그리고 대북사업을 성공시키는 아들에게 대권을 물려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후 두 형제간 대권 경쟁은 필사적이었다. 초기 대세를 탄 것은 MK였다. 그는 대북사업가 장석중씨를 통해 북측에 접근할 수 있었다.
98년 1월 말 북한 통천의 ‘왕회장’ 생가를 다녀온 장씨는 정 명예회장에게 생가 소식과 함께 대북사업의 일부를 제시, 허락을 받아냈다. 이를 확인한 MK는 장씨와 접촉해 대북사업에 적극 나설 의사를 밝혔다. 2월 초 현대가에서는 ‘MK-장’ 라인이 대북사업을 거머쥐는 듯했다.
전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그러자 위기에 몰린 MH가 ‘비상수단’을 썼던 것으로 알려진다. 같은 해 2월8일 MH는 베이징에서 북측의 전금철 아태 부위원장을 만났고, 이 즈음 MH의 오른팔격인 이익치 회장은 왕회장에게서 북측에 전하는 친서를 받아냈다고 한다. 친서와 함께 MH의 ‘북한 지원 메시지’(큰 떡)가 대북통인 요시다 다케오를 통해 평양에 전달됨으로써 무게의 추가 다시 MH에게 기울게 됐다는 것.
현대의 대북사업 주체를 결정지은 ‘큰 떡’의 내용은 장씨에 따르면 △식량 50만톤 △디젤유 5만톤 △생고무 5만톤 △비닐원료 5만톤 △평양에 종합체육관 건립 등 5가지다.
이를 98년 2월 가격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 규모에 이른다. 당시 소비자가격을 기준으로 할 때 쌀은 톤당 2백3만3천3백75원, 디젤유는 톤당 89만5천6백68원, 생고무 (3급)는 톤당 1백39만9천7백70원, 비닐원료(폴리에틸렌)는 톤당 1백16만2천원이었다. ‘큰 떡’을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체육관 건립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1조1천7백억원(약 10억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평양체육관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 투자된 금액은 3천4백20만달러(약 4백10억원)로 알려졌다. 장씨가 나중에 북측 강덕순 아태 대남공작 책임자를 통해 전해들은 바로는 체육관 건립을 약속한 게 여러 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할 때 ‘큰 떡’의 규모는 1조원을 훨씬 넘어설 것이라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98년 2월20일께 MH측이 약속한 ‘큰 떡’의 규모에 놀란 박세용 당시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은 장씨에게 “(정주영) 회장님을 만나 (MH의 ‘큰 떡’을) 막아야 한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놀라기는 장씨도 마찬가지였다. 장씨는 하루 뒤인 2월21일 왕회장과 독대해 “요시다·이익치가 큰일을 내고 있다”며 “디젤유·생고무는 전략물자라 미국이 가만 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상황은 긴박하게 흘러갔다. ‘전략물자’인 디젤유와 생고무 등의 지원 약속에 대해 정부에 해명할 필요성도 대두됐다고 한다. 결국 DJ정권 출범 하루 전인 2월24일 대북 문제와 관련 수세에 있던 MK는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만나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대북사업 10개 항목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금강산 △해주공단 △철도차량 △원산수리조선소 △김책제철소 가동 △공단개발 △은행 △건설 △농업 △발전 등이 그것.
그러나 같은 날 MH는 MK의 ‘경고’(“북측과 접촉하지 말것”)에도 베이징에서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과 만났다. 이후 MK의 대북사업 제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현대와 정부의 대북 창구는 정몽헌·이익치-송호경, 임동원·박지원-송호경 라인으로 전개됐다.
지난해 9월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의 ‘4천억원 정상회담 대가설’로 촉발된 대북 송금 의혹은 여야 정치권과 정부·현대의 엇갈린 주장으로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가장 큰 쟁점은 대북송금 액수가 5억달러에 불과하냐는 것과 정상회담 뒷거래 여부.
이와 관련, 리종혁 아태 부위원장은 지난 1월 방북중인 SBS취재진에게 “경제협력 사업은 1998년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이를 2000년 6월 북·남 수뇌 상봉과 연결시키는 것은 불순한 모략”이라고 밝혀 대북 송금 의혹의 실체에 다가서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리 부위원장의 주장은 현대가 98년부터 대북 사업을 위해 ‘장석중 진술서’에 나타난 ‘큰 떡’ 공약을 이행해왔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전략물자인 까닭에 디젤유와 생고무의 대북 지원 약속은 현물 대신 다른 방편으로 이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MH가 제시한 ‘큰 떡’의 규모로 볼 때 실제로 투입된 현대의 ‘대북사업 물밑 자금’이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
정몽헌 회장은 지난 2월16일 기자회견에서 “7대 대북사업 대가로 5억달러를 송금했다”고 밝혔으나 재계 관계자나 대북 전문가들은 대부분 그 이상일 것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대북사업가 장석중씨도 “드러난 (대북 송금액) 5억달러는 새발의 피”라며 98년부터 시작된 사업과 물밑 지원 규모로 볼 때 엄청난 돈이 북측에 전달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현대의 대북송금 5억달러 중 확인된 2억달러 외에 의문의 뭉칫돈이 적지 않다. 2000년 5월 현대전자의 스코틀랜드 공장 매각대금(1억6천2백만달러) 중 현대건설 두바이 현지법인(알카파지, 페이퍼컴퍼니)에 대출(2000년 6월9일)된 후 사라진 1억달러도 대북송금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 회생작업에 쓰였다던 1천7백65억원(현대건설 CP 매입 1천억원, 자체 CP 상환 7백65억원) 역시 최종 용도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현대그룹 계열사 대한알루미늄공업의 해외 매각대금 2억4천8백만달러 중 4천8백만달러도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 까닭에 현대의 대북송금 규모에 대해서는 8억달러설, 10억달러설, 20억달러 이상설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