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10월 25일 청와대에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신임 4강 대사들과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우선 대표적인 친문인사인 정범구 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독일 대사에 임명됐다. 정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으로 과거 학생운동을 함께했던 사이다. 문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에서도 정 전 의원을 언급했다. 정 전 의원은 16,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시사평론가로 활동해오다 대사로 임명됐다.
지난 2011년 청목회 사건(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입법로비 사건)에 연루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최규식 전 민주당 의원은 헝가리 대사에 임명됐다. 노무현재단 노무현시민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던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교황청 대사에 임명됐고, 상하이 총영사에 임명된 박선원 전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안보상황단 부단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인도 대사에는 신봉길 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이 임명됐다. 신 전 소장은 문재인 대선캠프 외교안보 자문그룹인 ‘국민 아그레망’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많은 외교부 간부들이 지원해 경쟁이 치열했던 프랑스 대사에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냈던 최종문 전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이 임명됐다. 노르웨이 대사에 임명된 박금옥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광화문 대통령 공약 기획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외교부는 이들을 임명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해당국에서 학위를 받았다거나, 언론사에서 국제부장을 역임했다는 등의 궁핍한 명분을 제시해 더욱 논란을 키웠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당초 내정된 특임공관장(직업외교관 출신이 아닌 사람을 특별히 임명하는 공관장) 중 상당수가 어학시험에서 탈락해 그나마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부 순혈주의를 개혁하기 위해 특임공관장 비율을 30%까지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자유한국당(한국당) 측은 ‘순혈주의 개혁은 표면적인 명분일 뿐이고 속내는 친문 챙겨주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장제원 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공기업 낙하산도 모자라 전문성을 요구하는 재외공관장 자리까지 전리품 나눠주듯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부가 4강 대사를 비외교관 출신 친문인사들로 임명하자 “외교관을 아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사”라며 비판했다. 반 전 총장 측 관계자는 “당시 반 전 총장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할 목적은 아니었다. 원론적으로 4강 대사를 아무나 임명하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면서도 “북한 외교관들은 아랍에 파견된 사람들도 현지어를 하는데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현지어를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인맥이나 외교력이 크게 차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들은 우리나라 외교에서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전문 외교관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외교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기용하는 것이 장점도 있다.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대사나 공관장을 순수 외교관으로 채우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도 권영세 전 주중대사나 이병기 전 주일대사 등 정치인 출신을 대사로 임명한 경우가 많았는데 한국당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가 지목한 권영세 전 주중대사는 “박근혜 정부를 연일 비판하더니 이제 와서 우리 사례를 예로 드는 것이냐”면서 “처음에 주중대사로 임명하겠다고 하길래 저는 정식 외교관이 아니라 대사를 맡을 수 없다고 거절했었다. 그런데 중국은 직업 외교관보다 청와대와 말이 통하는 대통령 측근이 대사로 오는 것을 더 환영한다고 해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권 전 주중대사는 “외교부 순혈주의가 문제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 외부인사를 임명할 필요는 있지만 정도의 문제”라며 “4강 대사를 모두 비외교관으로 임명하고 다른 나라에까지 비외교관 대사를 왕창 보내는 것은 문제다. 비외교관 출신은 아무래도 서투르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비외교관 출신이 몇 명 안 되면 외교부에서 이들을 관리할 수 있지만 너무 많아지면 중구난방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관리할 수 없게 된다. 적절한 수준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낙하산 논란과 관련해 한 외교부 관계자는 “공관장을 30%까지 외부인사로 채우겠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30%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본인들이 갈 자리를 못 가게 되는 거니까 아무래도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교부 주요 보직까지 외부인사로 채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니까 직업 외교관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다들 심란하다”면서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사람은 없다. 직원들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는 하지만 익명으로 쓸 수 있는 내부통신망에도 관련 글이 올라온 것은 없다. 반발하면 혁신에 반대하는 사람처럼 찍힐까봐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부인사 임명은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니까 새로운 일은 아닌데 아예 외부인사 비율을 30%로 정해놓고 채우겠다고 하는 것은 심하다. 필요한 곳에만 외부인사를 임명하면 되는 것이지 아예 비율을 정해놓고 대안도 없으면서 억지로 채우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외부인사가 대거 영입되면서 기존 외교부 인사들이 긴장하고 더 열심히 하려는 건 있는 것 같다. 외부인사와 경쟁해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우리 자리가 더 좁아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외부인사 영입으로 그런 순기능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비외교관 출신 임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과거 공관장 갑질 사건 같은 경우는 외교부 내부 카르텔 때문에 피해자가 제대로 문제제기를 못하거나 문제제기를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외부인사 수혈로 이 같은 사례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비외교관 출신 임명은 외교부 적폐 청산을 위한 것이지 친문 챙기기라는 것은 억지 주장”이라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외교부 측의 입장도 청취하기 위해 연락을 취해봤지만 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