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출산 전망대에 올라선 등반객들이 들쭉날쭉한 기암 괴석을 감상하고 있다. | ||
아무도 찾는 이 없는 공간을 찾겠다면 아예 높은 산, 눈으로 뒤덮인 고원을 찾아가도 좋겠다. 영암 월출산은 기암괴봉에 성글은 눈들이 쌓여 겨울산의 정기를 내뿜는다. 정상부에서 맞는 겨울 바람이 차갑지만 끓어오르는 답답증을 날리기엔 적격이다. 시원한 바람결에 묵은 체증까지 날아가 버린 듯하다.
월출산(809m)을 향하는 동안 머릿속을 맴돌다 끝내 혼자서 흥얼거리고 만 노래는 대중가수 하춘화가 부른 ‘영암 아리랑’이었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임 보는 아리랑.
월출산을 오르는 대표적인 산행 길목은 영암읍에서 13번국도를 타고 가는 천황사 지구와 경포대 지구, 그리고 819번지방도를 따라가다 만나는 왕인 박사 유적지 앞 도갑사 지구다. 그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은 천황사 지구. 매표소를 지나 잘 닦여진 포장 도로를 따라 약 5분 정도 오르면 월출산 국립공원 관리소가 나온다.
산행채비를 차리고 등산로를 따라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초입에서는 등산객 하나도 마주치질 못했다. 10여 분 올라가면 바람폭포와 구름다리로 나뉘는 갈림길. 천황사 절터를 들러보기 위해 왼쪽의 구름다리 팻말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우거진 산죽길을 따라가다 보니 여느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허물어져가는 돌담이 나선다. 서너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텅빈 천황사 절터가 나선다.
절터를 암시해주는 것은 약수터다. 관을 통해 흘러나오는 약숫물. 등산객들을 위한 바가지 두어 개와 여기서 물을 준비하라는 친절한 팻말이 있다. 그 뒤로 있는 층층계단식 묵힌 밭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천막을 쳐 놓은 임시 암자에 모셔둔 불상 주변으로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불이 나면서 임시로 만들어 둔 막사다. 천막 옆으로 채소밭과 한봉을 치는 꿀통도 눈에 띈다.
▲ 월출산 산행 | ||
울산 배로 만들었다는 달콤한 배즙과 물도 함께 나눠 마셨다. 구슬땀을 흘리고 발품을 팔아 정상부에 오르니 바위 언덕 위에 시원하게 걸쳐진 구름다리가 보인다. 1918년에 설치된 이 다리는 바람폭포 양쪽 옆의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한다. 지상 1백20m 높이에 매달린 길이 52m, 폭 0.6m의 한국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 월출산의 명물이다. 다리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건너가자니, 당연한 얘기지만, 발밑이 흔들흔들 출렁거린다. 현기증이 나고 호흡도 거칠어진다.
겨우 건너편에 닿아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 순간 무릎을 터억 꿇고 싶은 기분.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길이 아주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구사일생’이라는. 대자연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인간은 없으리라. 하지만 이 소박한 모험을 후회할 사람 역시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가 바로 선계가 아닌가. 사진으로 보던 월출산의 위용, 그 장엄함, 두려우면서도 편안하고,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고. 차비 들여가며 발품팔고 올라와 간 떨어질 구름다리까지 건널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다리 건너엔 천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넓직한 사각의 공간이 있다. 겨울 하늘과 월출산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일상사 막혔던 스트레스는 바람에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준 동행자들은 배낭속에 넣어온 막걸리로 천황봉까지의 산행을 유혹하지만 여기서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 한다.
올라갈수록 눈길이 미끄럽고 아이젠 장비가 없으니 다시 내려올 일이 엄두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월출산의 최고봉, 정상에 오르면 동시에 3백 명쯤은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있다는 천황봉은 고개 들어 아쉬운 눈도장만 찍었다.
마침 대여섯 명의 여성들이 다리를 건너온다. 서울서 교수와 함께 땅끝의 일몰을 보고 월출산 산행을 기행했다는 여학생들이다. 건축디자인 전공인 여학생들과 희끗한 수염이 멋진 교수 한 분의 여행길. 단체사진 한 장으로 그들은 월출산 추억의 한 페이지를 담는다. 오르는 길에서는 혼자였지만 오고 가는 길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 국내 최장의 월출산 구름다리. | ||
월출산(月出山)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부터 대표적인 달맞이 명소였다. 신라 때는 월나산(月奈山), 고려 때는 월생산(月生山)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날카로운 능선 위에 뜬 둥근 달, 그 하모니의 사무치는 아름다움을 한번 본 사람은 평생을 잊을 수 없다고들 한다.
김시습은 이 산을 두고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고 노래했다. 월출산은 금강산이나 설악산처럼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높은 천황봉(809m)과 구정봉, 도갑봉 등 높은 바위 봉우리가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늘어서서 병풍 모양을 이루고 그 갈피 갈피에 온갖 형상의 바위와 절벽들이 가득 찼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비슷하다고 해서 남한의 금강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남원 지리산, 장흥 천관산, 부안 변산, 정읍 내장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혀 왔다. 월출산은 바위 전시장이라 할 만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위용있는 산. 구정봉 정상 가까이에 있는 한 바위에는 거대한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구정봉은 꼭대기에 샘이 아홉 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아홉 개의 샘이란 오랜 세월 화강암 바닥이 고인 빗물에 삭아 가마솥처럼 파인 웅덩이를 말하는 것으로 큰 것은 지름 3m에 깊이가 50cm나 된다. 사자봉 왼쪽 산 중턱 계곡에서는 폭포수가 일곱 차례나 연거푸 떨어지는 칠치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도갑사와 무위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펼쳐진 미왕재의 갈대밭은 가을이면 황홀한 절경을 이룬다. 특히 서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몰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폭포수와 천황봉에 항상 걸려있는 안개,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 등 월출산의 사계는 그때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감동을 안겨준다.
▲ 대중교통: 광주에서 영암행까지 직행버스가 10여 분 간격으로 운행. 영암에서 원하는 방면까지 군내버스 이용.
▲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광산IC-13번국도-송정. 나주 거쳐 영암라이온스탑 앞 삼거리 왼쪽 13번국도-오리정 오거리에서 우회전-천황사 지구.
▲ 별미&숙박: 영암읍내 동락회관(061-473-2892) 중원회관(473-6700). 독천마을에는 영명식당(472-4027) 독천식당(472-4222) 등 세발낙지 전문점들이 밀집되어 있다. 숙박은 월출산온천(473-6311) 호텔 등 관광지구 안에 여럿이 있다. 이혜숙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