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한 정세균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 9월 3일 정기국회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의원 워크숍 자리에서도 날카로운 말들이 부딪쳤다. 당 진로를 놓고 비공개로 진행된 자유토론에서 중부권의 한 중진이 “대표 주변에 호랑이도 아니고 토끼들이 장벽을 쌓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정 진영의 목소리가 당론을 좌우한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날 토론에서는 또 지도력 문제를 비롯해 조기전당대회 문제까지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고된 논란이다. 사방으로 뚫린 길이지만 자욱한 안개 속에 자갈·진흙·모래·가시밭으로 시작하는 길이다. DJ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출발해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 국민에게 평가받겠다고 선언한 민주당과 정세균 대표가 험로에 직면했다.
반면, 청와대는 톡톡히 재미를 본 ‘중도실용, 친서민’ 행보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민주당이 장외에서 미디어법 원천무효를 외치고 있는 사이 선거제도·행정구역 개편 카드를 꺼냈다. 얼음장벽 같던 남북한 왕래 길도 다시 열렸다. 급기야 민주당 영입대상 1순위로 거론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영입해 정책수행의 전면에 내세웠다. 정 총리 내정자의 성공여부와는 무관하게 청와대가 DJ 서거 이후 정국을 주도하는 결정판이 됐다. ‘MB의 국정수행지지도가 취임 후 최고치를 향해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민주당으로선 서민·중산층 정책, 개헌과 행정구역개편 등 과거 야당이 선점했던 이슈를 집권세력에게 모두 넘긴 꼴이 됐다.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예정된 10월까지 당 활동의 중심은 ‘원천무효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라던 목소리가 빛을 잃을 것은 뻔한 상황이 됐다. ‘강력한 반MB연대’ 선언은 집권세력의 상승세 앞에 “대안 없이 반대만 일삼는 집단”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십상인 형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 내부와 주변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미디어법 장외투쟁에서부터 원내 등원, 탈당인사 복당, 민주대연합 대상의 각개약진 등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내부 분란은 당내 갈등구조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지도부 내에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박주선 최고위원이 정세균 대표를 향해 쏟아내는 비판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정동영(DY) 등 탈당인사의 복당시기와 방법에 대한 이견처럼 보이지만 당내 세력 간 주도권 경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박지원 정책위의장의 등장에 구민주당계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림수로 해석되기도 한다.
DJ 서거 이후 리더십의 빈 공간을 선점하기 위한 시도가 빈번해질수록 충돌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당내에선 조기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진로를 새롭게 정립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10월 재보선 결과에 따른 갈등 확산을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정세균 대표의 한 측근 인사는 “최고 관심지역인 안산 상록을 후보자 결정 자체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반증이다.
‘새로운 민주당’에 대한 논의가 당내 인사들 간의 권력투쟁, 세력 간의 득실계산으로 변질될 경우 당 분열의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피할 묘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이철희 수석애널리스트는 “민주당이 ‘질서 있는 혼란’을 기대하는 것은 결국 쇄신하지 않겠다는 선언 이상이 아니다”며 “훨씬 더 깊고 세심하게 내려가 소통하고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