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반도에는 유명한 만리포가 있는데, 주변으로 천리포 십리포 일리포 등 그 이름을 패러디한 듯한 길고 짧은 해변들이 있어 흥미롭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면 길은 서산 태안 방면의 32번 국도로 바로 이어진다. 32번 국도를 따라 30~40분 남짓, 서산 태안 시내를 관통하여 내달리면 국도의 끝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해안 드라이브를 기대해도 좋다. 길 왼쪽으로는 파도리 해수욕장과 어은돌 모항 등이 있고, 오른쪽으로 북상하면 만리포로 이어지는 길이 시원하게 열린다.
파도리나 어은돌 해수욕장은 한여름 휴가철에도 피서객이 몰리거나 바가지 요금이 성행하지 않는 비교적 조용한 곳이다. 대신 계절에 관계없이 꾸준히 손님이 드나드는 아담한 마을들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마을의 높은 언덕에 오르면 양면이 바다로 트여있어 나지막한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한쪽은 푸른 바다, 한쪽은 개펄이 펼쳐지는 이색 지대다. 차로 돌아볼 수 있다면, 작고 예쁜 길을 따라 파도리 마을의 가장 매력적인 풍광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파도리에서 만리포 방향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어은돌 해수욕장. 해변에 늘어선 송림을 따라 민박집이 줄지어 있다. 어느 민박집 주인은 “비라도 후두둑 내리면 빗소리, 파도소리가 어울려 더 운치 있는 곳”이라며 굳이 맑은 날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른 아침, 맑은 바다 옆으로는 햇살에 반짝이는 개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조개를 캐느라 분주하다.
붕어낚시로 유명한 모항저수지를 거쳐 해변을 따라 북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름부터 넓고 여유로운 만리포 해수욕장이다. ‘이름 한번 거창하다’ 싶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르게 펼쳐진 해변을 만나면 그만 입이 쏘옥 들어간다.
파도리부터 일리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해변 가운데 만리포는 규모나 관광객에서 단연 최고다. 호젓함이나 분위기 면에서는 작은 해변에 밀리지만 조개구이 전문점이 많아서 먹거리나 놀거리에서는 환영받기 때문이다.
해변 드라이브는 만리포에서 잠시 이별하고 잠시 마을의 속살로 깊이 숨었다가 천리포, 십리포로 넘어간다. 야생화나 희귀식물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천리포수목원>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곳은 회원 전용제로, 회원 가입 후에나 입장이 가능하다.
해변 드라이브의 마지막 여정은 ‘서해안의 푸른 바다’ 십리포와 일리포. 웬만큼 상세한 지도가 아니면 잘 나타나 있지 않은 이 해변들은 그 덕분에 여전히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다.
서해안 특유의 들쑥날쑥한 해안선도 아니며 물은 맑아 제주도처럼 투명한 바다색이다. 특히 십리포 해변에는 바다로 나갈 듯한 작은 동산이 예쁘다. 바람이라도 부는 가을날 높은 하늘을 만끽하기에 딱 좋은 장소다. 마치 서해에서 동해안을 만난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십리포, 일리포조차 하얀 펜션들이 뚝딱뚝딱 들어서는 중이라 내년 여름까지 요즘 같은 분위기가 유지될 지는 의문이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기 전의 짧은 계절, ‘인디언 서머’에는 서해안의 푸른 바다로 소박한 여행을 꾸려도 좋을 것이다.
파도리에서 어은돌, 만리포를 지나 일리포까지 달리는 데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박수운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