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해일과 파도를 일으키며 포효하던 모습은 간데 없고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에선 가을의 우수마저 느껴진다.
서해의 바닷물은 동해처럼 청량하지는 않지만 매일 바다와 갯벌을 생계삼아 다니는 어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작은 어촌에서는 물때에 맞춰 고기잡이 나가고 들어오는 고깃배며 조개, 굴을 따는 아낙들의 부지런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충남 태안은 북쪽 끝 학암포에서 시작되는 태안반도와 남쪽끝 안면도까지 리아스식 해안에 펼쳐지는 수많은 해수욕장,
그리고 크고 작은 포구들이 길게도 이어진다. 해수욕장들은 서로 비슷하게 보이지만 각자의 특성을 갖췄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하루길인 태안 드라이브. 찬바람이 불면서 조개나 대하가 제철로 접어들고 있다.
[여행1 - 안면도]
태안반도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안면도에는 크고 작은 바닷가 마을이 많다. 그중에서도 최근 새로운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곳이 황도다. 평범한 바닷가 마을이지만 관광객을 위한 펜션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바닷가 벼랑 위에는 잘 지어놓은 그림 같은 펜션들이 이국적인 정경을 자아낸다. 황도는 간월도와 함께 천수만에 들어있는 낮고 평탄한 섬이다. 외지인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는 섬마을이었지만 1982년 간척사업과 함께 황도교가 완공됨으로써 안면읍과 연결되어 사실상 뭍의 일부가 되었다.
연육교를 건너 섬으로 들어서면 야트막한 고갯길 넘어 해변으로 펜션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바닷가에는 야트막한 섬이 하나 있고 안쪽으로는 온통 갯벌이다. 마을에서 인공으로 바지락 양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양식장 근처에는 들어갈 수 없다. 대신 마을 주민들이 캐오는 조개를 즉석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물이 빠지면 바다 안쪽으로 차길이 나타난다. 양식업을 위해서 어민들이 다져놓은 길이다. 일반 차량 통행은 입구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안면도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꽃지가 꼽힌다. 해안을 따라 해당화와 매화꽃이 많이 핀다 해서 꽃지다.
이곳 낙조가 아름다운 것은 떨어지는 해를 배경으로 우뚝 선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때문이다. 신라시대 장보고가 활약하던 시절, 출정 명령을 받고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부인이 매일매일 젓개산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다 늙어 할미가 된 채로 죽어 된 것이 할미바위라고 한다. 같이 선 할아비바위는 늙어서야 전장에서 돌아온 뒤 할미바위 곁에 발이 묶인 그 남편의 자리일 터. 애달픈 전설을 간직한 두 부부는 수문장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우뚝 솟아 천년 세월을 그렇게 지켜왔을 것이다.
눈을 들어 멀리 바다를 보면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내파수도, 외파수도가 바라다 보인다. 지는 해는 늘 새로운 감흥과 회한을 느끼게 해준다. 꽃지 해수욕장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방포해수욕장.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꽃지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운여해수욕장은 지포저수지-법정사 입구로부터 약 3km지점, 장곡3구에 위치하고 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해수욕장이어서 찾아가는 길도 편치만은 않다. 황포라는 자그마한 마을을 지나면 양어장을 겸한 저수지를 거치게 되고 띄엄띄엄 민가가 나온다. 마을을 벗어나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는 민박집은커녕 포장마차 하나도 없다. 해수욕장은 온통 흰 모래가 펼쳐진다. 해변을 가르는 야트막한 언덕에는 수령이 오래지 않은 소나무가 있을 뿐. 온통 하얀 억새풀이 주인이다. 이곳은 안면 제일의 사구가 발달된 곳이다. 완만한 수심과 맑은 물이 즐거움을 더해준다. 특히 멀리 보이는 작은 섬 하나가 수평선에 지는 해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석양과 구름떼가 만들어내는 경관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감동적이다.
▲백사장, 안흥항, 방포항의 해산물 : 지명이 백사장인 안면도 최대의 어항, 백사장 포구는 해산물 맛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해산물 타운이다. 인근에서 잡힌 싱싱한 대하와 꽃게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대하는 보통 8월 중하순부터 눈이 내릴 때까지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우럭 도미 광어 도다리 등등 횟감도 풍성하다. 특히 가을이면 해물들이 살도 오르고 안전성도 높아져 맛을 즐기기엔 딱 좋은 제철이 시작된다. 때마침 9월은 대하가 시작되는 시기다. 그 외 근흥면의 안흥항, 방포항 등 안면도와 태안반도 각 포구마다 싱싱한 횟감을 만날 수 있는 횟집들이 늘어서 있다.
▲별미 & 숙박 : 안면도 백사장해수욕장 근처에서 싱싱한 활어회를 비교적 싼 값으로 맛볼 수 있다. 대하와 조개구이는 푸짐하지만, 어느 집에서도 절반만 덜어파는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어른 3~4명은 어울려야 남기지 않고 한번에 먹기 적당하다. 복음횟집(041-673-5349)은 평범한 횟집 건물이지만 실속 있고 푸짐하며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간월도에는 굴밥으로 유명한 맛동산집(041-669-1910, 1901)이 있다.
숙박은 안면휴양림이나 오션캐슬(02-567-5555, 회원전용) 외에 꽃지 주변으로 신식 모텔들이 많이 들어섰으며, 황도에는 sea & son(016-9234-8252, 041-672-5100) 등의 펜션들이 이용할 만하다. 안면도 숙박시설은 안면넷(http://www. anmyon.net) 사이트가 잘 안내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파도가 일품이란 뜻이었을까. 모래가 아닌 작고 동그란 조약돌(몽돌)로 덮인 긴 해안선을 따라 끊임없이 부딪치는 아름다운 파도의 해변, 파도리.
해안 끝에는 작은 갯바위가 발달돼 낚시꾼들에게도 인기있는 곳이다. 바위 틈새마다 굴과 작은 가재, 고동들이 지천이다. 물이 빠지면 굴 캐러 나온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체험이 시작된다. 자갈과 돌이 어우러져 물이 맑은 것이 특징이다. 해안의 돌을 가공해 만든 해옥은 파도리의 특산품이다. 파도리 가는 길목에 전시장(041-672-9898)이 있다. 외부인이 몽돌을 주워가는 것은 금지돼 있다.
안흥항과 신진도항을 갈 때 지나치게 되는 갈음이해수욕장. 70년대부터 군사지역 통제되다가 90년대 중반 해제되면서 비로소 일반인들이 드나들게 된 곳이다. 모래가 유난히 곱고 빽빽이 들어선 해송이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용의 눈물> <번지점프를 하다> 등 TV 사극과 영화의 해변장면으로 눈에 익은 곳이다.
신두리는 서해안의 작은 사막으로 알려졌던 곳이다. 대륙으로부터 날아오고 파도가 밀어다 쌓은 모래들이 광대한 벌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탁트인 백사장 끝에 깊고 푸른 바닷물이 일렁이는 해안은 먼 태평양의 어느 해변을 연상케 한다. 수만 년 세월동안 쌓인 모래의 언덕, 사구는 국제적으로 보호되는 특이지형이라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신두리 주변의 사구는 ‘사막’이란 별명이 어울릴 만큼 눈에 띄었으나 지금은 휴양지 개발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져 급속히 지형이 바뀌고 있다.
구례포 해수욕장 앞에는 학의 모습을 한 바위가 물에 떠있다. 바위가 포인트를 만들어 줘 일몰이 아름답다. 썰물 때에는 소분점도까지 2백m 바닷길이 열린다. 30여 척의 전용 낚시배가 운영되고 있어 낚시꾼들의 발길이 잦다. 구례포에서 황촌리쪽으로 들어가면 막다른 길. 잘못 들어가면 군부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유의. 바로 안뫼마을이다. 마을 앞에 몇 채의 민가가 있다. 안뫼는 드라마 <용의 눈물> <야망의 전설> 등의 촬영지다. 소나무 한그루가 당차게 살아있는 바위를 끼고 떨어지는 마을앞 낙조가 아름답다. 밀물 때는 바위 앞까지 물이 찬다.
▲어시장과 맛집 : 어시장은 안흥항이 괜찮고 신진도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으며, 만리포 옆에 있는 모항이나 통개항도 괜찮다. 안흥항에서는 안흥하우스(041-675-1002)에서 싱싱한 자연산 회를, 모항의 붕장어구이를 맛볼 수 있는 곳은 반도회관(672-2626) 등이다.
이혜숙 여행작가http://www.hyes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