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는 섬 전체가 역사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볼거리가 풍부하다. 위 사진은 토담이 정겨운 옛집. 아래는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 자리한 보문사. | ||
철 지난 파도 소리를 옆으로 두고 달리다보면 갈림길마다 어디로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각기 색다른 곳에 닿게 된다. 섬 전체가 그야말로 역사박물관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섬 이곳저곳을 미리 익혀둔다면 더욱 뜻 깊은 여행과 함께, 가는 날이 2일이나 7일이라면 읍내 장터까지 둘러볼 수 있는 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선수리, 외포리, 창후리 등 포구에서 갈매기 소리를 들으며 밴댕이회를 시켜먹은 것도 강화도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강화도 연안에서 많이 잡히는 밴댕이는 희고 분홍빛이 나는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비싼 횟집에서 내놓는 화려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쓸쓸한 겨울 바다에 곁들일 횟감이라면 밴댕이 쪽이 나아 보인다.
보문 선착장으로 향하는 석모도행 배를 탈 수 있는 선수선착장 옆 선수포구는 강화도 내에서도 특히 밴댕이회로 유명하다. 그래선지 인적이 드물어 보이긴 해도 열 곳이 넘는 횟집이 바닷가를 따라 늘어서 있다.
강화도 서쪽 끝에 위치한 외포리에서 석모도를 왕복 운항하는 유람선을 떼 지어 따라 나는 갈매기들은 그 유명한 ‘거지 갈매기떼’다. 배 꽁무니를 에워싸고 따라 날며 연신 새우깡을 구걸해댄다. 한 번쯤 재미로 던져졌을 새우깡이 이제 그들의 주식이 되어 피와 살을 만들고 있다.
갈매기의 흰무리들 틈을 비집고 다니며 공무를 수행하는 행정선, 고기를 잡는 여러 고깃배, 해군의 군함, 관광객들의 여객선, 어로 저지선, 어로 지도선 등의 많은 배들이 떠다닌다. 또 거기에 배들의 안전한 운항을 위해 항로를 알리는 등대가 우뚝 서있다.
창후리 포구는 일대가 황복촌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서해에서 나는 자연산 황복과 농어 숭어 우럭 등 활어회를 메뉴로 내놓는 횟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새로운 ‘타운’을 형성한 것은 남북관계 덕분. 창후리 선착장은 민통선 북단에 위치한 교동도를 왕래하는 배가 뜨는 곳인데 남북 화해 분위기에 검문검색이 완화되면서 여행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전등사 가는 길에 연등이 매달려 화사하다. | ||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어 있다.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대웅보전 네 귀퉁이를 보면 벌거벗은 여인의 조각이 추녀를 떠받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전등사를 그토록 신비로운 이름으로 만드는 것은 여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닐는지.
절을 맡아 짓는 도편수(都便手)가 온갖 정성과 재주를 다하기를 여러 해. 집에도 한 번 다녀오지 못하고 객고를 달래며 일을 하고 있던중 어여쁜 여자가 나타나 유혹의 손길을 뻗었다. 그러나 도편수는 절을 중수하는데 부정스러운 여자의 손길을 외면하고 전심전력으로 일을 하였으나 계속되는 유혹에 마음이 흔들려 그 여자의 정체를 알아보니 절 밑에서 술장사를 하는 여자였다. 그후부터 주점을 찾아 심신의 위안처로 삼고 여인과 달콤한 생활을 하면서 나날을 보내던 중 품삯으로 받은 돈을 여인에게 모두 맡기게 되었다. 여인은 더한층 도편수를 반겼지만 며칠 후 주막 여인의 모습이 보이질 않게 된다.
여인에게 쏟았던 정이 배신감으로 변해 그 고통이 컸던 도편수는 그 여자의 상을 추녀밑에 만들어 전등사 대웅전의 무거운 추녀를 받혀 들고 영원히 벌을 서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전등사 경내는 마치 잘 운영되고 있는 작은 공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죽림다원’이라는 찻집이 그러하며 군데군데 눈 쌓인 나무 계단과 현재 전시되고 있는 사찰 사진전이 그러하다.
정수사까지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폭이 좁기 때문에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 조심해야 한다. 특히 겨울철 눈이 내린 후라면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가 많아 되도록이면 걸어서 오르는 편이 좋다. 입구에서부터 자동차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굳이 차를 끌고 오르다가 반나절을 다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숲이 우거진 여름이라면 삼림욕을 즐기기에도 충분할 만큼 좋은 길. 지금은 빈 가지들 사이로 시리게 파란 겨울 하늘이 가득하다. 대웅전을 오르는 계단 위로는 여러 소망들을 담은 등이 분홍빛으로 피어나 있다.
정수사는 서해안에서 드물게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정동향의 대웅전 마루에 앉으면 바다 건너 떠오르는 해가 장관을 이룬다. 사찰 보수공사로 당분간은 일출까지 바랄 수는 없겠지만 소박하고 절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에 물맛 좋은 찬 약수를 마시는 걸로도 충분할 것이다.
조선 초, 우물맛에 반한 함허스님이 닦을 ‘수(修)’자를 물‘수(水)’자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 위 사진 부터 보문사 가는 길. 그림처럼 내려앉는 보문사 낙조. 정수사 이름이 새겨진 바윗돌. 닦을 ‘수(修)’자가 물‘수(水)’자로 바뀌었다고. | ||
동막리에서 여차리, 장화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정말로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갯벌과 그 위에 드문드문 정박하고 있는 고깃배들과 철새 떼들에 누구나 낭만에 젖게 된다.
바닷바람이 차가워도 커다란 통유리로 밖이 내다보이는 찻집에 앉아있으면 오후 햇살에 나른한 졸음까지 밀려온다.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아낌없이 쏟아지는 햇살에, 빛나는 백사장과 흰 눈밭, 갯벌에서 작은 갯것들을 잡아 올리는 사람들이 전부다.
장화리에서 조금만 더 가다보면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촬영지로 유명한 건평리 마을이 있다. 이곳은 몇 가구 안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전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정경이다.
선수리나 외포리 포구에서 바라다 보이는 석모도를 다녀오는 것도 좋다. 강화도는 온통 사적지와 전적지가 즐비한 반면 석모도는 빼어난 해상 풍광과 아름다운 산들이 어우러져 있다. 왕복티켓을 끊는다면 선수리나 외포리 어느 쪽에서건 왕래가 가능하다.
차 안에 앉은 채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훈훈한 히터 열기 속에서 따뜻한 겨울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들의 석모도 방문도 한결같이 보문사가 목적이다. 섬의 주봉인 낙가산 중턱에 자리한 보문사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외포리 포구에서 들어온다면 석모도의 석포리 선착장에 도착하게 된다. 다른 뱃길에 비해 거리가 짧고 운항하는 배가 많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오가는 사람들의 수에 비해 석포리는 소란스럽지 않아 보인다.
선착장에서 길은 양편으로 갈라진다. 해안 일주도로다. 갈림길에서 왼쪽길을 택해 달리고 골 깊은 ‘전득이고개’를 넘으면 왼편으로 ‘민머루 해수욕장’ 입간판이 보인다. 햇살을 받은 염전이 눈밭처럼 반짝인다.
해수욕장에서 보문사를 거쳐 한가라지 고개에서 다시 석포리 선착장까지 19km의 석모도 일주는 굴곡 있는 고갯길 드라이브가 인기다.
바다를 향해 앉아있는 보문사 왼쪽으로는 백팔 계단이, 뒤쪽으로는 마애석불좌상이 있다. 일명 눈썹바위라는 이름의 암벽에 양각된 석불좌상이다. 소원을 빌며 촛불을 켜고 향을 태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엄숙하기만 해 나뭇가지에 걸리는 바람소리도 숨을 죽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