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한 전설을 담고 있는 아우라지 강변 처녀 동상. 이곳은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알려졌다. | ||
그곳에 가면 바다로부터 벗어나 햇볕 아래 편안히 비린내를 말리는 물고기처럼 우리도 분주한 세상을 잊고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바다 위에 표류하듯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흐르다 문득 아름다운 섬이라도 만나 쉬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장이 열린 저잣거리를 한나절 쏘다니다보니 절로 정선아리랑이 흥얼흥얼 나온다.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정선아리랑 가락에 절로 취했음이다. 모처럼의 여행길. 맛나는 오일장 풍경이며 봄나물이며 구수한 옥수수막걸리가 아니더라도 나른히 취기가 오를 이유는 수두룩하다.
평소에는 한적한 읍내가 잔치라도 열린 듯 분주해진다. 산에서 막 따온 두릅과 나물취 곰취 참나물 신선초 등 흙냄새 물씬한 산채며 약초들이 수북히 쌓인 좌판 앞에서 손님 부르는 소리, 모처럼 만나 안부를 주고 받는 촌로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전국의 장돌뱅이가 모여든 시골 장터는 사람의 향기로 구수하다.
보따리째 풀어놓은 달래 냉이 씀바귀는 촉촉한 뿌리에 흙까지 매달고 있다.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녹두전이며 김치부꾸미를 만들어내는 손길은 종일 바쁘기만 하다.
▲ 서울 청량리역에서는 끝자리가 2일 7일마다 ‘정선 5일장 관광열차’가 출발한다. 위쪽부터 흥겨운 기차 안, 정선 항골계곡, 화암동굴. | ||
“이런 거는 서울에서 못 먹는 거래요. 정선에 왔음 정선 음식을 먹어봐야지. 어서 앉아 봐요.”
말꼬리를 감아올리는 강원도 사투리에 절로 웃음이 튀어나온다.
해질 무렵까지 이어지는 정선 오일장은 역사가 오래돼 여기저기 알려져 있지만, 오지는 오지인지라 있을 게 다 있을 만큼 큰 규모는 아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만난 사람 또 마주치고, 헤어진 사람 또 만나다 보면 오랜 이웃이 따로 없다. 두 물이 합수되어 아우라지로 흘러드는 정선은 헤어지는 곳이 아니라 만나는 곳이다.
2일과 7일마다 찾아오는 장날이면 ‘정선아리랑’ 무료공연도 펼쳐진다. 관광열차를 타고 왔든, 물 흐르듯 지나치다 잠간 멈춘 사람이든, 누구라도 반긴다. 구구절절 애틋한 아리랑을 함께 배우고 부르며 지게춤과 물박장단까지 구경할 수 있다.
‘개구리란 놈이 뛰는 것은 멀리 가자는 뜻이요, 이내 몸이 웃는 뜻은 정들자는 뜻일세’
혹 정 들고픈 사람과의 동행이라면 아리랑 애정편을 조용히 불러볼 일이다.
정선역에서 심심산골 아우라지로 가는 철도 중간에 나전역이 있다. 이 간이역에서 가까운 항골계곡과 난향로원을 걸어보자. 이 계곡은 본래 지금은 문을 닫은 탄광이 있던 곳이다. 마이산의 돌탑들을 연상시키듯 계곡 옆 산비탈을 따라 크고 작은 돌탑들이 무리지어 서있다. 지나는 사람마다 하나 둘 소망을 담아 얹었을 작은 돌탑부터 크고 정교하게 쌓은 것까지 가지각색이다. 계곡의 바위 위에도 탑이 있고 비탈진 산까지 1백m가 넘는 길을 따라 모두 1백80여 기의 탑들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반 장난으로 하나둘 돌을 쌓기 시작한 것인데 서로 더 큰 탑을 쌓으려고 경쟁을 벌이다보니 나중에는 마을 대 마을 주민대항전으로 탑쌓기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마을들까지 참여해 본격적으로 돌탑을 쌓은 것이 폐광촌 ‘항골’을 돌탑마을로 바꾼 계기라고 한다.
나전역 건너 국도변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기 쉬울 만큼 눈에 띄지 않는다. ‘난향로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난(蘭)이라도 전시된 정원이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엉뚱하게도 남녀의 성기를 빼닮은 큰 돌이 서있는 공원이다. 보기 드문 ‘음양화합공원’이라,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곳을 다녀가는 애인끼리나 부부는 애정이 돈독해진대나.
▲ 정선 5일장 풍경. 상인들의 간단한 점심에도 인심은 넉넉. | ||
예전에는 동굴 입구까지 힘들게 오르막길을 걸어 올락갔지만 이번 달 16일 모노레일이 개통된다. 2km 가까이 되는 동굴 속을 꼼꼼히 둘러보는 데만도 2시간은 족히 걸린다.
동굴 속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길은 한두 갈래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총 다섯 테마로 나누어져 은밀한 데이트 코스나 시원한 동굴 산책코스로 부담이 없다.
테마 제1장은 실제 금광맥이 널려 있는 갱도 체험. 채광 당시 모습들을 재현해 금광의 꿈과 어려움, 그 애환을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제3장은 동화속 나라. 금깨비, 은깨비 등 캐릭터를 이용해 금광개발 과정과 함께 금의 가치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제4장에는 18.5kg나 되는 대형 순금괴(3억원 상당)가 각별한 보안 속에 전시되어 있다. 비록 ‘그림의 떡’이지만 주먹크기로 구멍이 뚫린 방탄유리 속에 손을 넣어 금덩어리를 직접 만져볼 수 있다.
테마 제5장은 기존의 화암동굴. 신비롭고도 거대한 종유석 석회동굴이다. 아직도 살아서 성장하고 있는 종유석 석순과 돌꽃들을 보호하기 위해 손으로 만지거나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행동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동굴 여행을 마치고 나오면 다시 매표소 옆 출구로 이어진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푸르다. 눈 아래로 보이는 신축건물은 올 여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금 박물관’이다.
화암동굴과 가까이 있는 화암약수터도 들러볼 만하다. 철분과 탄산이 독특한 맛을 내는 이 약수는 위장병,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암관광지 관리사무소 033-560-2578.
정선 가는 길
끝자리 수가 2일, 7일이 되는 날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는 ‘정선 5일장 관광열차’가 출발한다. 오전 8시10분 출발, 12시30분 정선역에 도착한 뒤 다시 정선에서 오후 5시30분 출발하여 밤 9시55분 청량리역으로 돌아온다. 5일장과 함께 이 열차와 연계하여 정선장-화암관광지-아우라지-나전역 등을 몇개 코스로 나누어 관광버스로 돌아보는 코스관광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정선관광 열차가 없는 날은 청량리역에서 태백선 증산역까지 간 뒤, 증산~정선~나전~구절역(아우라지) 구간을 하루 네 번 운행하는 꼬마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평일에는 기관차에 달랑 객차 1량만 달고 운행하지만 관광객이 늘어나면 3량까지도 늘어난다. 역장도 역무원도 없는 구절리 간이역까지의 창밖 풍광이 넋을 뺏어간다.
자동차는 영동고속도로 진부IC로 빠진 다음 33번 지방도로를 이용한다. 정선 입구인 나전 굴다리를 통과하자마자 바로 우회전하면 정선읍과 화암관광지 로 가는 42번 국도, 왼쪽 길은 아우라지로 들어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