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로 또 같이… 지난 3일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당의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한 의원들. _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더욱이 여권발 친서민·중도실용 드라이브와 ‘정운찬 총리 카드’가 약발을 나타내면서 민주당 내 비주류는 목소리 톤을 더욱 높이고 있다. 급기야 “조기전당대회라도 열어서 난국을 뚫어야 한다”는 주장이 ‘무소속’ 정동영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자 정 대표와 정 의원 간 대결양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첫 파열음은 지난 3일 민주당 의원워크숍에서 들려왔다. 이날 비공개 자유토론에서 재선의 문학진 의원이 정 대표를 향해 작심한 듯 포문을 연 것. 문 의원은 정 대표가 밝힌 ‘친노 우선의 단계별 통합론’을 겨냥해 “통합을 한다면서 무슨 이유로 우선순위를 두느냐. 결국 정 대표가 당을 사당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정 대표의 월권이고, 독단이다. 재신임을 거치든 조기전대를 하든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걸 의원도 “당을 무기력증에 빠지게 만든 데 대한 반성과 조기전대 등의 결심이 있어야 한다”며 거들었고, 전북 출신의 장세환 의원도 “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데는 당 대표에게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정 대표를 몰아세웠다.
정 대표 측도 곧바로 반격했다. 대표 비서실장인 강기정 의원은 “무슨 근거로 정 대표가 당을 사당화한다는 것이냐”며 “단식투쟁에, 의원직까지 버리며 헌신한 정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응수했다.
이날 충돌은 중도파 의원들의 중재로 더 이상 확전 없이 일단락됐지만, 정세균 리더십의 불안한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당권을 거머쥘 때도 ‘대안부재론’에 기댔던 정 대표다. 숙원이던 당 지지율 20% 돌파도 김대중(DJ)·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외부변수’에 무임승차한 덕분이었다. 그나마 정 대표의 ‘작품’이랄 수 있는 미디어법 장외투쟁은 ‘조건 없는’ 정기국회 등원 결정으로 안 하니만 못한 꼴이 됐다.
▲ 정세균 대표 | ||
그러나 정 대표 측은 ‘느닷없는’ 조기전대론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여권의 파상공세에 밀려 잠시 주춤하고는 있지만 지도부를 교체해야 할 만큼 대과를 저지르진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 386 출신 측근은 “조기전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 대표를 흠집내기 위한 시도”라며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 대표 측은 배후에 정 의원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 대표가 자신의 민주당 복당을 계속 지연시키고 있다는 판단에 측근인사들을 동원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문학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총무본부장을 지냈고, 이종걸 의원과 장세환 의원 역시 지난 4월 재·보궐선거 당시 정 의원의 공천을 주장했던 전력으로 이 같은 추측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정 대표 측 핵심인사는 “복당 시기에 따라 정치적 재기와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 여부가 달린 만큼 정 의원이 필사적으로 나서는 것 같다”며 “특히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서거정국에서 운신의 한계를 절감했고, ‘정적’인 친노진영의 세 결집, 손학규 전 대표의 재등장이 가시화되면서 더욱 초조해하는 기색”이라고 분석했다.
정 의원이 지난 5월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 조문을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가 성난 노사모 회원들에 떼밀려 문전박대를 당했던 것은 유명한 사건. 정 의원은 DJ 국장 때도 과거 ‘정풍운동’을 주도하며 척을 졌던 동교동계와의 구원 때문에 적잖은 마음고생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포스트 DJ’를 노리는 정 의원으로서는 민주당 복당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컨설팅사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정 의원 스스로 대권 재수가 가능한 복당 시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고 있다”며 “그것을 넘기면 정치적 재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정동영계 의원들의 ‘정세균 흔들기’는 더욱 빈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 정동영 의원 | ||
그렇지만 정 대표의 최근 행보가 눈에 거슬리긴 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지난 10일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의 정치결사체인 ‘시민주권모임’ 발족식에서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며 통합론을 노골화한 것이나, 10월 수원 장안 재선거가 결정되자마자 손 전 대표에게 “당의 활성화를 위한 역할을 기대한다”고 러브콜을 보낸 데 대해 “유독 정 의원만 차별하는 게 아니냐”는 푸념도 새어나왔다.
일각에서는 정 대표가 ‘단계별 통합’이 아닌, 결국 ‘일괄통합’을 선택해 정 대표와 동교동계 인사들까지 한꺼번에 수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DJ가 ‘민주당 중심의 범야권 통합’을 유훈으로 남긴 이상, ‘적통’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통합과정에 정치적 타산을 따지지 못할 것이란 것이다.
중도성향의 한 재선의원은 “정 대표가 최근 의원들과의 연쇄 간담회에서 ‘친노 우선 통합론은 친노신당 동력을 빼기 위한 전술적 발언이었을 뿐 정 의원을 배제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며 “정 대표 스스로도 진정한 ‘포스트 DJ’로 서기 위해선 정 의원이든 손 전 대표 등 잠재적 주자들과의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