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평 문씨 인흥마을의 ‘광거당’. 하늘로 뻗은 대숲에 바람이 불면 ‘쏴아’하며 물결이 일어 여름이 더욱 시원하다 | ||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자리잡은 인흥마을은 달성군 문화유산 관람의 시작에 해당되는 곳이이지만 아직은 대구 시민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천수봉을 주산으로 삼은 이곳에는 명심보감의 산실인 인흥서원과 조선조 전통한옥이 그대로 남아있는 민속마을,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야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해졌다. 본래 인흥사라는 절이 있던 터를 기반으로 형성된 인흥마을은 들어서는 길목부터 아늑하다. 마을에 위치한 남평 문씨 세거지는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조선의 문풍을 지키고 장서를 많이 소장한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지은 아름다운 전통 한옥 9채와 정자 2채가 들어서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는 목화 보급으로 유명한 고려 중신 충선 문익점 선생(1329∼1398)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선생의 18세손 문경호가 가솔들을 이끌고 터를 잡기 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던 폐사지였다고 한다. 지금도 세거지 앞 밭 가운데 옛 절의 석탑이 남아 있다.
이곳 가옥들의 담장은 유난히 높다. 1천 석에 가까운 재력을 가지고 있던 문경호는 구획을 정리하고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닦은 후 집을 지었다고 하는데, 반상의 집이 어우러진 외암리나 낙안읍성과 같은 소박한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담장에서는 서민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권문세가의 벽이 느껴진다.
마을의 가옥 배치는 매우 특이한 형태를 띄고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아홉 채의 가옥을 우물 정(井)자처럼 가로 세로로 줄을 맞춰 지어 오늘날의 계획도시를 연상케 한다. 주택을 아홉 채만 지어 유지하는 것도 ‘건물을 더 지으면 품격이 떨어진다’는 문중의 규약 때문이란다. 주택은 모두 장남 상속을 원칙으로 하되 문씨 세거지 보호를 위해 외부인에게 집을 파는 것은 지금까지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주택 외에 문씨들의 공공 건물이자 일반 관람객의 주요 관심사인 광거당, 수봉정사, 인수문고 등은 문씨 문중의 가보이자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광거당이나 수봉정사 같은 건물은 <황진이> <씨받이> 등 사극 영화의 단골 촬영지였으나, 보수적인 마을 특성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내의 사극 영화 감독이라면 이곳을 모르는 이가 없다.
▲ 인흥마을 수봉정사 누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는 관광객들(위)과 도동서원 내 강당으로 쓰였던 중정당. | ||
수봉정사 옆에 위치한 인수문고는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한 ‘문중 문고’다. 인수문고의 청지기 역할은 화려한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수봉의 손자 문태갑(75세)가 맡고 있다. 1만 권의 장서들이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되어 있으나 아쉽게도 동양사상과 고전을 연구하는 전문 학자들에 한해서만 열람을 허락한다.
살림채와 100여m나 떨어져 있는 광거당은 사대부의 위엄이 느껴지는 수봉정사와 달리 편안하고 소박한 맛이 있는 객사 같은 곳이다. 원래 제사를 위한 재실로 지어졌지만, 만권당(1만 권의 책을 비치함)을 설치한 후로 전국의 문인과 학자들이 줄을 지어 방문, 당대 최고의 민간 아카데미 구실을 했다. 하늘로 곧게 뻗은 대나무 숲이 광거당을 감싸고, 누마루에 앉으면 바람이 들려주는 정다운 이야기도 들릴 것만 같다. ‘쏴아’ 춤추는 대숲이 광거당의 고풍스러움과 맞닿아 오래된 친구처럼 마음이 열린다.
“광거당은 바람 부는 대숲 소리가 좋고, 수봉정사는 비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름답지예.” 이곳을 안내하는 이영주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이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에도 수봉정사나 광거당에서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나무로 지어서 그럴 수도 있고 아스팔트가 없어서, 혹은 대숲이 그늘을 만들어 주어서일 수도 있다. 그 궁금증으로 한 번쯤 찾아가 보는 여름이면 좋을 듯하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곳에 전형적인 산지형으로 자리잡은 도동서원(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은 먼저 경치가 장관이다. 4백 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여러 가지를 뻗으며 서원 앞뜰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가을은 가을의 정취가, 여름은 여름만의 경치가 살아나는 곳으로 계절마다 한 번은 다녀가고픈 명소에 속한다.
사실, 도동서원은 경치 못지 않게 역사적 의의가 크다. 조선 5현(김굉필, 조광조, 정여창, 이언적, 이황)의 수장격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모신 서원이니 이곳 사람들의 자부심은 말할 것도 없다. 조선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예외로 보전된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강당과 사당, 그리고 담장이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은 크게 진입, 강학, 제향공간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진입공간에는 외삼문 대신 정면에 수월루가 서 있는데, 이곳에서는 낙동강과 고령 일대의 평야가 한눈에 들어찬다. 도동서원의 담장도 그냥 지나쳐지기 어렵다. 돌과 흙과 기와를 골고루 사용한 축조기법과 아름다운 장식 때문에 보물로 지정된 최초의 토담인 것이다.
▲ 계절변화의 아름다움을 건축으로 끌어들인 ‘도동서원’은 서원건축의 백미로 손꼽힌다. | ||
도동서원은 아직도 매년 중정(2월, 8월)에 향사를 지내는데, 그에 따른 예를 철저히 갖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동서원 주변에는 ‘현풍 석빙고’나 ‘현풍곽씨 십이정려각’을 만나기도 한다. 십이정려각의 경우, 조선 선조 때부터 영조까지 곽씨 일문에 포상된 12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세운 건물로 전국에서도 그 유례가 흔치 않아 중요한 문화 유산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남평 문씨 세거지와는 달리 문화유산해설사도 없고 버젓한 안내판도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 인흥서원이다. 명심보감의 산실인 이곳은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인 노당 추적(秋適,1246∼1317) 선생을 봉안한 서원이다. 추적 선생이 저작한 명심보감 목판 31매가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경내에는 서원과 사당 등 5동의 건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을 지키는 추적 선생 24세 종손 추연섭(82세) 씨다.
이마엔 헬멧을 쓰고 삽을 든 노인이 “안내가 필요한교?” 혹은 “What's your job?”이라 말을 건네도 너무 놀라지 말일이다. 비록 흙 묻은 삽을 지휘봉으로 삼지만, 명심보감의 목판을 꺼내어 자세히 설명해주는 등 그 안내만큼은 어떤 문화유산해설가도 흉내내지 못할 만큼 훌륭하다.
“오시는 분들 수준이 다 달라서 가끔 당황스러워. 나보다 더 깊이 알고 있는 학자들이 왔을 때도 그렇고 또 너무 어린애들이 찾아올 때도 그렇고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안하나.”
가끔씩 찾아오는 외국 방문객들 때문에 영어 안내도 척척, 듣고 보니 그는 평생 교육계에 몸을 담은 사람이다. 선조의 뜻을 기려 한글로 된 <명심보감> 책을 출판했으며 지금도 매주 토요일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명심보감을 강의하고 있다.
달성군 관광정보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대구 시티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대신 코스가 정해져 있어서 원하는 장소를 하루에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용요금은 일반인 3천원. 신청할 때는 지정코스를 꼭 확인하는 것이 좋다. 문의(053-627-8900 www.daegutour.or.kr)
교통
▶남평 문씨 세거지(053-637-5416): 구마고속도로 화원IC-화원읍내로 가다가 고령 방면 5번 국도-화원삼거리 지나고 천내교가 보이면 다리 건너기 직전 좌회전-우측 달성초등학교 지나 왼쪽. 대구에서는 836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인흥서원(422-1530)은 남평문씨 세거지 가는 길에 표지판이 있다.
▶도동서원(617-7620): 구마고속도로를 따라 창녕, 마산으로 가다 현풍IC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난 1093번 도로를 따라 구지로 달리다가 18번 도로 이용.
박수운 여행전문 프리랜서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