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악산 해안 절경에서 바라본 산방산 전경. 아기와 함께 온 한 쌍의 부부가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내려앉았다. | ||
그러나 아직 연인들의 제주 여행은 서귀 중문 일대 폭포와 CF촬영지 등으로 매우 한정돼 있는 듯한 느낌이다. 제주는 사실 어디를 가도 다 그림이 되는 멋진 비경들이 가득하다. 천편일률적인 낯익은 장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코스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가을하늘치고도 맑은 바다를 낀 제주의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높다. 제주의 깊은 맛을 느끼기에는 송악산과 산방산 등 제주 서남쪽 해안 주변이 제격이다. 최근 수년 사이에 들어선 테마공원들도 한껏 가을의 낭만을 뽐내고 있다. 승용차를 렌트하여 한바퀴 바닷길로 돌아보는 것도 좋다. 연인들을 위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를 소개한다.
제주도 남서쪽 대정읍 상모리 산이수동 해안에 오롯이 솟은 송악산. 높이가 겨우 104m인 이 산은 먼 데서 보기에는 ‘저게 무슨 산인가’ 싶을 정도로 작고 볼품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인근 산방산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러나 송악산은 숨겨진 멋이 많은 산으로 연인들을 위한 최고의 데이트 코스 중 하나다.
송악산은 일명 ‘절울이’라 불린다. ‘절’은 제주말로 ‘물결’의 뜻. ‘절울이’는 ‘물결이 운다’는 말이다. 바다 물결이 절벽에 부딪쳐 우레같이 울린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 산은 정상까지 자동차 도로가 나 있다. 산 아래 포구에서부터 정상까지는 겨우 2km 남짓. 자동차로 5분도 채 안 걸린다. 하지만 단숨에 정상까지 가속 페달을 밟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람 따라 물결치는 은빛 억새와 초원을 뛰노는 말들, 신이 빚은 예술품인 해안 절벽 등이 가는 걸음을 잡아채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들을 뒤로 두고 정상으로 발길을 향하는 게 아쉬울 정도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곧 가벼운 흥분으로 바뀐다. 송악산 정상에 오르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남으로는 끝간 데 없이 펼쳐진, 바다 위에 잡힐 듯 국토 최남단 마라도와 가파도가 떠 있고, 서로는 산방산과 그 뒤로 수묵처럼 유유(幽幽)한 한라산이 눈을 떼지 못 하게 만든다.
▲ 산방산, 산방굴사, 용머리해안에 있는 하멜기념비(위부터). | ||
이 곳 해안절벽에는 15개의 인공동굴이 뚫려 있다. 너비 3∼4m, 길이 약 20m의 일정한 크기인 이 동굴들은 일본군이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어뢰정을 숨겨 놓았던 곳. 아픈 우리 역사의 흔적이다. 드라마 <대장금> 최종회에서 의녀 장금이 임산부를 수술하는 장면을 찍은 직후 한동안 찾는 이가 많았지만, 지금은 시들해져서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송악산 포구에서 국토 최남단 마라도로 향하는 배가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하루 7번 출항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한반도 끝자락을 한번 밟아보는 것은 어떨까.
송악산과 함께 추천하고픈 곳은 바로 산방산과 그 앞 용머리해안. 송악산에서 산방산까지는 사계해안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다. 이 길이 또 가히 예술이다.
멀리 산방산이 보이고 검은 갯바위와 푸른 바다가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져 있는 게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용하는 차량도 별로 없기 때문에 한적하기까지 해서 급히 차를 몰 하등의 이유가 없다. 속도를 낮추고 남국의 맑은 공기를 한껏 호흡하면서 천천히 경치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아니면 가던 길을 멈추고 갯바위 위에 잠시 앉아서 쉬어도 좋다. 갯바위 곳곳에는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감성돔이나 뱅에돔이 주 어종인데 운이 좋으면 낚시꾼들이 직접 떠주는 회를 맛볼 수 있기도 하다.
산방산은 안덕면 사계리 해안가에서 용머리 퇴적층과 이어져 있는 조면암질 용암원정구로 종모양처럼 생긴 화산체다. 345m 높이의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용암덩이다. 이 조면암질 용암의 절대연령치는 대략 70∼80만 년으로 제주도의 지표질을 구성하고 있는 화산암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산방산은 전설로 둘러싸였다. 옥황상제가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 서쪽으로 내던진 것이 산방산이라고 하고, 혹은 제주의 여신(女神) 설문대할망이 빨래를 하다가 실수로 한라산 봉우리를 내리쳐 떨어져 나가 생긴 것이 산방산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방산의 수십만 년 나이에 비해 한라산은 겨우 2만5천 년 전에 생긴, ‘젊어도 한참 젊은’ 산이다.
▲ 송악산 정상 산책로 | ||
전설에 의하면 여신인 산방덕이 고승이라는 청년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산방덕의 빼어난 미모에 반한 벼슬아치가 그녀를 빼앗기 위해 신랑인 고승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귀양을 보내기에 이른다. 탐욕스런 인간의 모습을 눈으로 목격한 산방덕은 인간세계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산방굴로 들어가 스스로 바위가 되어 그 일을 한탄하며 지금까지 울고 있다는 것이다.
산방굴사에서 바라보는 제주바다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아름답고 경이롭다. 용머리해안과 형제섬, 그리고 송악산이 모두 내려다보인다.
산방산에서 내려와 큰 길을 건너 5분 정도만 걸어가면 용머리해안. 네덜란드 선원 하멜이 표류했던 곳으로 뒤에 <하멜표류기>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용머리해안 오른쪽에는 하멜이 타고 온 범선을 재현해 정박해 놓았다. 모조물이긴 하지만 물이 차오르면 당장이라도 돛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도 될 성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튼튼한 모습이다.
용머리해안은 수십만 년 동안 켜켜이 쌓인 사암절벽이 파도에 부딪혀 만들어진 해안이다. 한 마리 용이 바다를 향해 날아들 듯한 모습을 닮았다. ‘누룩돌’ 또는 ‘누룩바위’라고도 불린다.
해안 길이는 총 6백m 가량 된다. 이곳은 파도가 꽤 거칠어서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출입을 통제할 때가 많다. 해안으로 내려가면 그 경이로운 풍경이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다.
해안을 두른 평균 높이 20m의 용상 절벽은 그 단면이 마치 잔잔한 수면에 이는 고운 물결과 닮았다. 어떻게 해서 그런 무늬가 생길 수 있는지 신비롭다. 용머리해안에서 해녀들이 직접 따온 소라와 고둥을 회쳐 먹는 맛도 그 경치만큼이나 일품이다.
▲교통: 제주-서부산업도로-덕수마을-산방산-사계리마을-해안도로-송악산 / 서귀(중문)-창천-화순-산방산-사계리마을-해안도로-송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