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부도 바닷길(위)과 시화호 갯벌. | ||
이 겨울, 터닝 포인트를 위한 색다른 여행이 필요하다면 개화하는 길, 곧 서해안 시흥 화성 주변의 바닷길을 찾아가 보자. 연달아 나타나는 섬들은 대부도~영흥도~제부도로 이어지는 시화지구 일대의 섬들. 혹은 길다란 방조제를 따라, 혹은 수문 위로 난 짧은 다리를 건너, 혹은 물때에 맞춰 나타나고 사라지는 바닷길을 따라 자동차로 넘나드는 섬길 여행. 제부도 측도 목섬 누에섬 등 개화하는 길에서 바람 한 번 실컷 쐬어보자.
1. 드라이브 여행 - 뭍으로 가는 징검다리 섬
대부도를 위시한 시화지구 일대 섬 여행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다. 소년이 물장난하던 소녀를 만났던 징검다리처럼 대부도 선재도 영흥도 선감도 불도 탄도가 바다 위로 길을 내고 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대부도가 시화방조제와 탄도방조제라는 2개의 방조제로 뭍과 항시 연결된 채 5개의 작은 섬들을 새끼처럼 좌우로 거느리고 있다. 여행은 ‘어미섬’ 대부도부터 시작된다.
물론 대부도 여행의 시발점은 안산의 오이도와 대부도를 잇는 시화방조제다. 11.2km의 길다란 방조제 길은 바다 위로 뻗은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차창 밖으론 아늑한 수평선과 짙은 초콜릿색 갯벌이 그림처럼 스친다. 방조제 건너 대부도에 다다르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방아머리 선착장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대부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덕적도와 자월도 가는 카페리가 뜨는 간이 여객항인 방아머리 선착장은 작지만 활기로 가득 찬 곳. 널따란 갯벌 해변 위로 바지락 칼국수에 조개구이 간판을 내건 횟집촌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갯벌과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조개구이나 칼국수를 먹으면 서해의 겨울 체취를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방아머리 선착장을 나와 대부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길은 섬 내륙으로 이어진다. 논밭 한가운데 옹기종기 자리잡은 마을과 작고 그림같이 예쁜 구봉도 해변을 지나면 길은 옹진군의 막내섬 선재도를 달린다.
5백50m 길이의 선재대교로 대부도와 연결되어 있는 선재도는 목섬과 측도라는 비경을 숨겨 두고 있는 간이섬으로, 대부도 안쪽 길과 달리 길 옆으로 내내 바다를 끼고 있어 눈이 즐겁다. 선재도를 뒤로 하고 2001년 육지가 된 영흥도로 향하면 시화지구 일대 섬 여행의 서쪽 끝인 영흥도의 관문 영흥대교가 객을 맞는다.
영흥대교 아래 진두 선착장을 지나 3km 가량을 더 달리면 십리포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서어나무의 뼈 같은 나뭇가지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십리포해수욕장을 나와 섬의 서쪽으로 길을 잡으면 장경리해수욕장과 용담리해수욕장이 차례로 나타난다. 노송지대가 1만 평에 달하는 장경리해수욕장은 서해 낙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십리포해수욕장과는 임도로 이어져 있다.
장경리~국사봉~십리포해수욕장을 잇는 임도는 특히 영흥도의 ‘알려지지 않은 보물’이다. 높지 않은 고갯길에서 외항선이 떠있는 인천 앞바다와 자월도, 시화호가 한눈에 들어와 가슴을 틔운다.
용담리해수욕장 인근의 드넓은 갯벌과 함께 길은 다시 원점인 대부도로 회귀한다. 여기서 대부도를 빠져나가도 되고 남양반도 끝에 위치한 제부도로 가도 된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고민할 것 없이 선감도와 불도, 탄도를 지나 제부도로 향할 일. 시화호가 생기면서 선감도 불도 탄도 일대 갯벌은 죽었지만 그 자리를 황금빛 갈대가 빼곡이 채우고 있어 얕은 햇살 내리는 겨울 오후면 눈부시게 빛난다.
2. 바닷길 산책 - 하얗게 열리는‘바다의 속살’
시화지구 일대 섬 여행의 즐거움은 자동차로 바다를 가로지를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에 있지만, 아무래도 하이라이트는 ‘바닷길의 열림’에 있다. 남양반도 끝머리 서신에 있는 제부도는 이미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이곳 말고도 누에섬 목섬 측도 등 다른 세 개의 섬이 똑같이 바다가 갈라지는 섬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 선재도 초입에 자리한 목섬. 바닷길이 왕복 1km 밖에 안되지만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는 인기다. | ||
하지만 제부도 안쪽은 정작 소설이 주는 그 아스라한 낭만에는 미치지 못한다. 월미도를 옮겨 놓은 것처럼 횟집과 모텔 일색인 제부도. 다만 끝없이 이어지는 갯벌과 매바위의 절경 때문에 바닷길을 건너온 보람은 충분하다.
제부도 일주는 제부도 가장가리를 빙 둘러싼 도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바닷길 끝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건 좌회전하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대개 선창가로부터 해수욕장을 지나 최고 볼거리인 매바위까지 달린다.
해수욕장 주변에 차를 세워두고 부드러운 진흙을 발가락 사이로 느껴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선창에서 해안을 따라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해안 체험로’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밀물 때는 발 밑에서 파도가 철썩이고, 썰물 때는 발 아래로 초콜릿색 갯벌이 깔린다.
제부도 선창 앞으로 가까이 보이는 누에섬에서도 또 하나의 바닷길이 만들어진다. 누에를 닮았다 하여 누에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잿빛 보도가 거의 직선으로 나 있어 제부도에 비해 운치는 떨어진다.
누에섬은 탄도에서 진입할 수 있는데, 탄도는 대부도 남쪽이다. 탄도를 지나 대부도를 경유하면 다시 선재도.
선재대교를 건너가는 예쁜 갯마을 선재도에서는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는 두 개의 다른 섬을 더 만나볼 수 있다.
선재도 초입의 목섬은 손때 묻지 않은 무인도로 썰물 때면 살결 고운 모랫길이 하얗게 드러난다. 왕복 1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바닷길이지만 물 빠질 때까지 연인 둘이서만 비경을 독차지 할 수 있어 데이트 코스로는 최적이다. 목섬 너머로 보이는 측도도 선재도의 ‘바닷길 보물’ 중 하나다.
11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측도는 원래 칡넝쿨이 많아 ‘칡도’라 불리던 곳. 제부도를 위시한 인근 ‘바닷길’ 중에서 최고의 풍광이라고 할 만큼 썰물 때 드러나는 자갈길이 예쁘다. 특히 인근 한전에서 설치한 가로등이 저녁이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해 바닷길의 로맨틱 무드는 최고조에 달한다.
하지만 시화지구 일대의 섬은 주말 한낮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한적한 겨울 섬 바다의 여로를 즐기고 싶다면 주중에 이용하는 것이 좋고, 주말이라면 늦은 오후나 밤에 바닷길을 달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우연이라도 하얗게 열리는 바닷길과 조우한다면 감동에 겨운 소리라도 질러볼 일이다.
여행 Tip
▲제부도 바닷길 통행시간: 바닷길이 열리는 시각은 하루하루 변하므로 일일이 시각을 소개하기가 어렵다. 제부도로 바닷길은 화성군 전화자동안내(031-369-2360~9)나 인터넷(www.hscity.net)을 통해 물때를 알아볼 수 있다. 제부도 입장료는 1천원이며, 주말에는 정체되므로 물때보다 조금 먼저 도착하는 것이 좋다. (주의: 최근 바닷길 통행시간이 공고시간표와 오차가 자주 발생, 최소 30분 정도 여유있게 가서 대기하는 것이 좋다.)
▲교통: 영동고속도로 월곶IC에서 좌회전, 오이도를 지나 시화방조제로 간다. 대부도에 접어들어 3km 가량 가면 선재도, 영흥도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영흥도 일주 후, 다시 대부도로 회귀하는 대부중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제부도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비봉IC를 거쳐 남양~사강(306번 지방도로)~서신까지 간 후, 제부도나 대부도로 들어갈 수 있다.
주말엔 정체가 심하므로 오후 2~3시에 귀가를 서두르거나 아예 밤 늦게 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