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인데도 주홍빛 감귤이 매달린 제주도는 봄처럼 화사하다. 오른쪽은 말고기 요리. | ||
에구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남편이나 마누라 떼어놓고 은근슬쩍 혼자 와서 재미보구 가란 말은 설마 아니겠지요? 하하. 상상도 야무지셔. 어서 오시라는 인사말입니다. 혼저는 어서라는 말이지요. 독촉할 때는 빨리라는 뜻이 됩니다. 하영 놀당 갑서.
식상할 틈도 없이 몇 번을 찾아간 뒤에라야 은근한 속살을 엿볼 수 있게 되는 제주는 역시 우리나라의 이색적인 문화특별구라 아니할 수 없다.
제주에서 아침해를 맞은 곳은 성산 일출봉 아래였답니다. 사실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죠. 겨울철 해가 뜨는 위치는 일출봉으로부터 적잖이 멀어지기 때문에 일출봉과 아침해를 한 장의 사진에 담기가 너무 어려웠거든요.
그렇다고 어깨 숙이고 하릴없이 돌아서기는 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오랫만에 우도에나 들어가보자 하고 배를 탔지요. 우도 가는 배는 성산리에서 뜨는데, 성산포는 남제주군, 우도는 북제주군입니다. 요금 체계가 다소 복잡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성산포-우도간 똑같은 페리인데도 성산항에서는 2천5백원, 우도에서 나올 때는 2천원의 편도 배삯을 냈답니다.
우도 안에는 일반 주민들이 타고 다니는 마을버스와 관광객을 위한 관광버스가 서로의 영역을 절묘하게 피해가면서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우도봉에는 등대가 있습니다. 세계의 명물 등대 모형들도 전시되고 있죠. 관광버스는 이어서 검멀레해수욕장-비양도-산호사해수욕장 순으로 손님을 안내합니다. 한사람에 5천원, 섬을 일주하는 데 한 시간쯤 걸립니다.
검멀레란 검은 모래라는 뜻인데 해변쪽으로 물에 잠길 듯한 동굴이 보입니다. 겉에서는 작은 동굴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속이 꽤 넓답니다. 이번 연말에도 동굴 안에서 음악회가 열렸지요.
제주도에는 두 개의 비양도가 있답니다. 서쪽 협재해안에서 보이는 비양도가 제법 큰 유인도인데 반해 우도에서 이어진 비양도는 등대 하나 서 있는 무인도랍니다. 우도 산호사해변은 산호가루가 모래를 대신하고 있답니다. 그래선지 물이 남태평양의 섬에서 보듯 에머랄드 빛으로 빛난답니다.
우도에서는 버스 말고도 자전거나 스쿠터를 빌려탈 수 있는데, 자전거는 3시간(5천원), 스쿠터(1만5천원)나 네 발 달린 ATV오토바이(2만5천원)는 1시간 빌리면 섬을 모두 돌아보기에 충분합니다. 이크싱싱(iksingsing.com.ne.kr)이란 사이트로 들어가면 보다 상세한 정보가 있죠. 작은 섬이지만 있을 것 다 있어서 중앙동이라는 ‘다운타운’에는 면사무소며 농협 하나로클럽이며 노래방 PC방이 있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함께 다니는 학교도 있구요.
▲ 섭지코지. <올인> 촬영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위), 우도 산호사해변. 모래 대신 산호가루가 쌓여 있어서일까, 열대의 해변 못지않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출렁인다. | ||
섭지코지는 이제 TV드라마 <올인>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드라마 끝난 지가 언젠데 올인 얘기냐구요? 중국말 일본말로 떠드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절벽을 찾아오는데, 그들은 방송사에서 세운 듯 <올인> 캐릭터 입간판들 앞에서 이병헌이나 송혜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기념촬영에 열을 올립니다.
절벽 위에 있던 성당과 하얀 집 세트는 사실 지난해 태풍으로 모두 날아가 버렸답니다. 하지만 똑같은 모양의 성당과 집을 실제 벽돌을 쌓아 새로 지었답니다.
제주도에 올 때마다 번번이 서부해안도로부터 찾은 바람에 사실 섬 동북부쪽으로는 제대로 구경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제주시내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시내에 숙소가 정해진 덕이었죠. 제주시 동쪽 탑동 해안쪽에 새로운 호텔들이 많이 들어섰더군요. 이마트도 생겼구요. 해안은 매립되어 깔끔하게 도로가 생겼고, 길 끝은 난간처럼 콘크리트 방파제가 빙둘러 쳐있었습니다. 그 끝에 광장과 해변공연장도 마련됐더군요.
해안 따라 바다쪽으로는 쭈욱 무지개 조명까지 설치돼 밤새 부서지는 파도 끝을 비춥니다. 이 시설을 놓고 시민들 사이에 찬반 논쟁도 치열했던 모양입니다. 나름으로 공을 들여 깔끔해진 맛은 좋았지만, 자연 상태의 해안선을 쉽게 볼 수 없게 된 건 아쉬움이었습니다.
이제 곧 제주에서는 ‘신구간’(新舊間)이 시작되겠군요. 신구간이란 한해 동안 지상에서 임무를 수행한 각종 신들이 연말에 옥황상제에게 그동안의 일을 보고하러 하늘에 올라가 지상의 인간들에게 자유가 보장되는 기간이랍니다. 제주 사람들은 이 기간이 되어야 마음놓고 집을 고치고 이사도 합니다.
본래 대한 절기 후 3일째부터 입춘이 오기 전까지 10일 정도였는데, 요즘은 신식으로 양력을 쓰게 돼서 1월25일부터 1주일간을 신구간으로 정했답니다. 아예 이사 대축제를 벌여도 좋을 성 싶습니다.
제주에 전해오는 고유의 풍습들은 이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답니다.
사흘 동안 치러지는 결혼식 풍습은 들어보셨나요? 첫날은 소 돼지를 잡아 음식을 준비하고 둘째날부터 손님을 맞아 잔치를 벌이며 셋째날이 되어야 결혼식을 올립니다. 사흘 동안 고역을 치를 신랑 신부를 돕기 위해 처녀 총각 친구 중에서 부신랑 부신부를 세우는데요, 부신랑 부신부를 맡게 되면 직장에서도 아주 당연스럽게 사흘간의 휴가를 허락한다는군요. 사흘 밤낮 고락을 함께 한 부신랑 부신부가 그 다음 커플이 되는 일도 많답니다. 참, 신랑들은 청혼을 위해 적잖은 지참금을 내야 한답니다. 제주에서 만난 한 젊은 남자도 1천만원을 모아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 국내 첫 성인테마파크 ‘러브랜드’. 네 명의 남자상을 이용한 음수대가 재밌다. 체격에 맞게 다른 수도 꼭지를 달아놓았다. 오른쪽은 한화콘도 내 아쿠아토닉. | ||
이어서 새로 생긴 러브랜드를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지나가던 승용차 관광버스들이 길에 멈추어 엔진을 끄고 깜박이를 켠 채 ‘흘러 올라’가는 구간이 나타났습니다. 실제는 내리막인데 오르막처럼 보이는 착시현상 때문에 도깨비도로가 되었다는 곳이네요.
도깨비도로를 벗어나자 마지막 관심지대, 러브랜드(www. jejuloveland.com 064-712-6988)가 금세 나타났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좀 면구스러울 듯한 흥미진진한, 재치발랄한 성적 조형물들이 유토피아인 듯 펼쳐져 있었습니다. 지면이 좁으니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해야겠군요.
여행 피로를 푸는 데는 지난해 명도암 근처에 문 연 제주한화콘도(064-725-9000)의 테라피센터가 어떨까 싶습니다. 허브향 그득한 대형 풀에서의 아쿠아 토닉, 산소수면, 건초 속에서의 휴식과 트로피칼 레인샤워. 몸뿐 아니라 머리속까지 향내 그득하게 고인답니다. 제주녹산장(064-784-9557)에서 난생 처음 먹어본 부드러운 제주 말고기의 맛은? 백 번 듣는 것보다 직접 한 번 체험해 보시라고 해야겠군요.
제주도의 전통가옥 농장은 물론 무덤까지도 돌로 담장 쌓은 것을 볼 수 있답니다. 도둑도 없는 제주도에서 정성스레 돌담을 쌓은 게 모두 말의 접근를 막기 위해서였다니 제주에선 역시 말(馬)을 빼놓고는 말(言)이 안되나 봅니다.
허엇, 그런데 이번엔 말을 못타봤군요. 언제 다시 한번 와봐야겠습니다. 죽 돌아보고 나니 어떵하우꽈. 폭삭 속았수다. 또 봅서.
(‘폭삭 속았수다’는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