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그때 달라요 국회 국방위원회는 9월 24일 합동참모의장 인사청문회를 열어 이상의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사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도마에 올랐던 각종 의혹들은 지난 2000년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수많은 후보자들을 당혹케 했던 ‘단골메뉴’들이다. 다만 여야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공수가 바뀌었을 뿐이다. 청문회 때마다 야당의 날선 공세에 여당은 후보자들을 감싸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청문회에 임하는 정치권의 태도를 두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리당략에 따라 ‘이중 잣대’가 난무하는 인사청문회,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정치권이 가리고 싶어 하는 역대 인사청문회의 속살을 들춰봤다.
“누구는 낙마하고 누구는 인준된다면 청문회가 아니라 후보자의 운을 시험하는 시험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청문회가 한창이던 지난 9월 18일 장상 민주당 최고위원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공개적으로 한 발언이다. 장상 최고위원은 지난 2002년 김대중 정부 때 총리로 지명됐다가 위장전입 등의 이유로 한나라당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국회 인준이 부결된 바 있다. 그런데 부인의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던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해 한나라당이 ‘봐주기’로 일관하자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장상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이 청문회에서 그때그때 다른 궤변과 다수 의석으로 돌파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행태를 꼬집었다.
사실 위장전입은 한나라당이 지난 10년간의 야당 시절 동안 인사청문회를 치르면서 주요 타깃으로 삼았던 ‘전공’ 분야다. 최근 한나라당이 위장전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는 것에 비난 여론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반면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위장전입 의혹에 휩싸인 후보자를 두둔하는 등 지금의 한나라당과 비슷한 스탠스를 취했다. 이에 대해 한 정치 컨설턴트는 “지난 정권의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은 도덕적인 문제를, 여당이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정책적인 사안을 질의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돼버렸다. 물론 지금은 그 반대가 됐다. 이처럼 청문회를 각 당의 이해득실에 따라 실시하기 때문에 도입한 지 9년이 넘도록 확고한 기준이 세워지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으로 가장 먼저 불명예를 안았던 이가 바로 장상 최고위원이다. 당시 총리 청문회에서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주민등록법을 명백하게 위반했고 위장전입을 세 번이나 했는데 어떻게 국민들에게 ‘투기하지 마십시오’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대단히 우려스럽다”며 장상 후보자(총리 서리)를 공격했다. 이에 대해 여당이던 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흥미 위주로 개인적인 신상문제를 부각시키는 바람에 청문회가 희화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논의를 차단하려 했다.
장상 최고위원에 이어 총리 후보로 지명된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회장도 위장전입을 비롯한 여러 의혹들이 불거진 끝에 중도하차한 케이스다. 당시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장대환 후보자의 위장전입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돼 있다. 후보자께서는 범법자가 됐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장 후보자에게 해명성 질의만을 던졌다. 설훈 당시 민주당 의원은 “분통이 터질 수도 있겠지만 청문회 정착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며 장 후보자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두 명의 총리를 낙마시켰던 한나라당은 ‘참여 정부’에 들어와서도 위장전입 등을 내세워 여러 국무위원들을 공직에서 끌어내렸다.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도입되기 전인 2005년 1월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가 서울대총장 시절 판공비를 과다 사용한 것이 드러나 쓴 맛을 봤고 3월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위장전입 시비로 취임 11일 만에 물러났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전여옥 의원은 “이 경제부총리가 위장전입을 했던 때는 20년 전이라 억울하다고 호소하지만 이것은 이 땅의 대다수 공무원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로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같은 달에는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장이 위장전입으로 사표를 내야 했다. 2005년 4월엔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위장전입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를 놓고 맹형규 한나라당 의원(현 대통령 정무특보)은 “주미대사가 그런 문제에 휩쓸린 게 국제적 망신이라 청와대가 우물쭈물 넘기려는 것 같으나 옳지 않은 대응”이라며 정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9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 ||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이후 한나라당의 공세는 점점 거세졌다. 그 강도는 2006년 8월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절정에 달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부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고 민주당은 그를 보호하는 데 급급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자녀 문제 공방만 있는 걸 보고 김 후보자가 흠이 없는 분이란 걸 깨달았다”며 김 후보자를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결국 김 부총리 후보자는 수많은 의혹들을 그대로 안은 채 취임했지만 좀처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17일 만에 물러나야만 했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김 전 부총리 사표에 결정적이었던 이중 논문게재는 현 정권에서 그야말로 ‘깜’도 안 되는 사안이다”라며 “정운찬 총리 지명자를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처럼 위장전입만큼은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던 한나라당의 태도는 지난 2007년 9월 이재용 환경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백팔십도’ 돌변했다. 이는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위장전입 의혹이 확산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부인이 위장전입한 것이다. 본인이 한 것 아니다. 부부가 일심동체기 때문에 이 후보자가 책임지겠다는 것이지 본인은 위장전입한 일이 한 번도 없다”라며 그동안 대립각을 세워 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정한 이 장관 후보자를 감쌌다. 오히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이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걸고 넘어졌다. 심지어 청와대 측에 내정 철회를 요구하며 해임건의안 제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시 여당에서는 이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심재철 안택수 의원 등이 위장전입을 문제 삼았던 전례를 들추며 한나라당의 ‘이중 잣대’를 문제 삼았다.
정권교체 후 인사청문회에서의 이러한 여야 모습은 그대로 반복됐다. 다만 공수가 뒤바뀌었을 뿐이다. 한나라당은 여당으로서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들에 대해 방어에 나섰고 민주당 등 야권은 공세를 가했다. 그 결과 2008년 2월 이춘호(여성) 박은경(환경) 남주홍(통일) 등 장관 후보자들이 청문회 벽을 넘지 못했고, 지난 2009년 7월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위장전입과 세금미납 등으로 인해 낙마했다. 민주당이 지난 10여 년간 한나라당이 ‘주무기’로 사용했던 위장전입 카드를 내세워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이다.
이 같은 야당의 공세에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예전의 여당이 그랬던 것처럼 후보자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총무가 “후보자 흠집 내기에 ‘올인’하는 무차별적인 정치공세는 통합을 저해한다”고 말한 것은 집권 후 바뀐 인사청문회 기조를 여실히 드러낸다는 평이다.
한나라당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9월 21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국민들이 화나는 이유는 서민들한테는 법을 철저히 지키라고 하면서 높은 사람들은 왜 법을 지키지 않느냐, 또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장상 총리 서리에 대해 적용한 기준이 왜 바뀌었느냐. 이 두 가지 때문”이라고 밝혔다. 장광근 사무총장 역시 회의석상에서 “솔직히 고백하건대 야당 시절에 집중적으로 공세를 펼친 적도 있고 그 때문에 (후보자들이) 낙마라는 마음의 아픔을 당하신 적도 있다”며 “이중적인 측면 때문에 곤혹스러운 점도 있다”고 ‘고백’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