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찬 총리의 취임식 전날인 지난달 28일 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총리 인준을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는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인사청문회는 워밍업,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정운찬 국무총리를 향한 민주당의 서슬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시작될 국정감사를 ‘정운찬 국감’으로 명명했다. 인사청문회에서 못 다한 각종 의혹에 대한 규명작업을 국감을 통해서라도 기어이 완수하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오는 10월 24일까지 치러지는 국감의 ‘성적표’가 10·28 재·보궐선거 결과로도 연결될 가능성이 큰 만큼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정운찬 옥죄기’과 ‘재보선 승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각오다.
지도부는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정세균 대표는 지난 9월 28일 의원총회에서 “왜 진돗개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 못하느냐고 하는데, (정 총리 문제만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총리 인준안이 통과된 다음날인 29일 “(정 총리에 대해) 미진한 의혹들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총리 인준이 이뤄졌다”며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 예산심의과정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해 철저히 규명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했다. 이 원내대표는 “(사안별로) 해당 상임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집중적으로 규명하고 파헤칠 것”이라며 “국감은 국민이 궁금해 하고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속 시원히 알려드리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 총리가 서울대 교수 신분으로 겸직과 영리업무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교육과학기술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가,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기획재정위가 맡았다.
또 한 기업인이 건넨 1000만 원 ‘소액 용돈’의 포괄적 뇌물죄 검토는 법제사법위원회에, 병역기피 의혹은 국방위원회에 분담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세청 등 관련부처 국감에선 정 총리 주변 인사들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파상공세를 취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아울러 정 총리가 출석하는 국회 본회의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대정부질문을 통해서도 직접 도덕성 문제를 제기해 ‘청문회 효과’의 불씨를 살려나간다는 복안이다.
때문에 청문회가 끝났어도 정 총리와의 ‘긴장관계’는 계속 이어가는 모습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9일 의원총회를 이유로, 국회 본회의에 신고식을 치른 정 총리 인사말을 듣지 않았다.
취임인사차 예방하겠다는 정 총리에게 정세균 대표는 “일정이 꽉 차서 만날 수가 없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정 총리 인준 자체를 거부했고 국정감사도 ‘정운찬 국감’으로 치르겠다고 밝힌 마당에 임명됐다고 해서 곧장 만나 악수하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감에서 집중 부각할 ‘세종시’와 ‘4대강’ 문제도 정 총리를 통해 논란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4대강과 관련, 정 총리는 지난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50년간 산림녹화 사업을 잘해 왔다. 대운하는 반대지만 강도 한번 잘해 보자는 생각은 있다”며 적극 추진 의사를 내비쳤다. 또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도 “(수정 추진이라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며 야권의 압박에 굴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일단,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2010년 예산 중 사회간접자본(SOC), 복지 및 교육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게 불가피한 상황에서 ‘중도개혁’ ‘서민 중시’ 이미지를 안고 있는 정 총리가 어떤 처방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2010년 예산에서 4대강 사업 예산은 337.5%가 증가한 반면, 서민정책 지원사업은 69.5%가 감소했으며 유아·초중등 교육예산도 1240억 원이나 줄었다”며 “이 모든 게 무리한 4대강 사업 추진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국감을 통해 세부적으로 해부하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이 과정에서 정 총리가 대통령의 의견을 따를 경우, ‘소신을 접었다’는 비난을 가할 수 있어 정 총리는 물론 여권의 ‘중도·친서민’ 행보의 허구성도 부각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민주당이 이처럼 ‘정운찬 옥죄기’에 나서는 이유는 정 총리의 ‘쓰임새’ 때문이다. 한 핵심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정 총리를 짧게는 지방선거, 길게는 대선을 염두에 두고 영입한 것”이라며 “야권의 고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권과 정 총리 간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총리 체제가 안착해 여권의 중도화가 성과를 낼 경우, 민주당의 운신 공간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고, 다자구도를 통한 여권의 잠재주자 운용계획도 순탄하게 진행돼 내년 지방선거, 급기야 대선까지도 기약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행정부의 각종 실정을 점검하고 따져야 할 국감에서 정 총리 문제만 물고 늘어지는 게 과연 국민들 눈에 좋게 보이겠느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오히려 여론 피로감만 가중시켜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재보선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총리와 관련된 의혹은 모든 것이 밝혀질 때까지 검증하겠지만, 그와 상관없이 국감도 철저하게 진행할 것”(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같은 기류를 의식한 탓이다.
또 일부에서는 정 총리를 백안시할 게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한다. 정 총리가 이 대통령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관을 갖고 있는 만큼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야당이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위의 한 핵심관계자는 “정 총리가 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게끔 도와서 여권 내부의 자중지란을 유도해야 한다”며 “길게 봐서는 그게 민주당에 이로운 길”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넘어서는 총리’가 돼서는 안 된다”고 훈수를 둔 것도 이를 염려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