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차보다 사람이 더 많은 이곳은 주말이면 이국적인 정취를 즐기려는 사진작가와 연인들로 가득해진다. | ||
전남 담양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대숲이다. 크고 작은 대나무군락이 사방 천지에 널려 있다. 사계절 항상 같은 모습이면서도 철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담양의 대숲은 여름철 피서지로 더할 나위 없다. 공기가 주변에 비해 서늘할 뿐만 아니라 대나무가 만들어내는 음이온이 심신을 안정시킨다.
대숲 안의 온도는 밖에 비해 4~7℃가량 낮다. 대숲 바닥의 습기가 기화하면서 숲의 온도를 전체적으로 내리는 탓이다. 게다가 대나무에서 나온 음이온이 공기 1cc 당 1천 개 이상으로 풍부해지면서 뇌를 맑게 하고 긴장을 해소한다.
대나무 향기 그윽한 담양에서도 죽림욕장으로 손꼽을 만한 곳은 ‘대나무골테마공원’과 ‘죽녹원’, ‘삼인산대나무밭’ 등 세 군데가 있다.
이들 대나무밭들은 각각 저마다의 색깔이 확실하다. 죽녹원이 아기자기한 멋을 풍긴다면, 삼인산대나무밭은 야생의 미를 뽐낸다. 죽녹원은 최근 담양군에서 전격적으로 조성한 기획공원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대나무공원이기는 하지만 삼인산대나무밭에 비하면 대나무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반면 삼인산대나무밭은 산책로가 잘 정비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 두 공원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 곳이 바로 대나무골테마공원이다. 금성면 봉서리에 자리한 이 대숲은 굵고 큰 대나무들과 잘 정비된 산책로가 조화롭다. 죽녹원의 인공적인 느낌이나 삼인산대나무밭의 불편함이 없다.
▲ 왼쪽은 가장 걷고 싶은 숲길 1위에 선정된 관방제림, 오른쪽은 죽녹원의 잘 정비된 대나무숲 산책로. | ||
신록이라는 말을 꺼내기 무안할 정도로 들녘 나뭇잎이 짙푸르다. 그러나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은 이제 막 광합성을 시작한 듯 연초록 그 싱그런 물감을 물씬 풀어놓고 있다. 88고속도로 담양 톨게이트에서 순창 방면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 20리 길에 2열 종대로 늘어선 나무들의 사열식은 지금이 절정이다.
1970년대 초 당시 내무부의 시범가로로 지정되면서 심은 어린 메타세쿼이아들은 아름드리 두께에 높이 30여m 크기로 자라나 담양의 자랑이 됐다.
하지만 이 길 역시 하마터면 개발 광풍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담양군에서 왕복 2차선인 이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가로수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기로 결정했던 것.
길을 살린 것은 주민들이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우회도로를 만들어 나무를 살리자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의 마음이 담양군을 움직였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이제 차를 위한 도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도로가 됐다. 가로수들을 보기 위해 차는 서행을 하고, 지친 운전자들은 내려서 산책을 한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기도 했다. 주말이면 이국적인 풍경을 담으려는 사진작가들과 연인들로 활기가 넘친다. 그저 가로수일 뿐인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추억과 사랑을 생산하는 공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강요하거나 애써 유혹하지 않아도 숲은 사람들의 걸음을 잡아채게 마련이다. 콘크리트에 갇혀 진이 빠진 육체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끊임없이 채찍질해왔던 정신을 감싸고 온기를 불어넣는 곳. 거기가 바로 숲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걷고 싶은 숲길 1위에 선정된 관방제림. 단 한 번의 산책만으로도 마술처럼 그 매력에 사로잡히는 이곳은 치유의 숲이며 행복의 숲이다. 3백여 년 전 조성된 나무들이 토해내는 포화상태의 산소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고, 느긋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보면 세상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 조선 중기의 대표적 정원인 소쇄원.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지어져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조화로운 미를 자랑한다. 오른쪽은 죽녹원 쉼터를 찾은 연인들. | ||
대나무는 예부터 선비의 올곧은 기개와 비유되곤 했다. 속이 비어 사심이 없고, 부러질지언정 타협하지 않는 점이 쏙 빼어 닮았다. 그래서인지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는 현실정치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숨어든 사림(士林)들이 유독 많다. 그들이 낙향하여 지은 서원이나 정자들은 담양의 또 다른 볼거리다.
‘소쇄원’은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 이곳은 양산보가 지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정원으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소쇄’(瀟灑)라는 말은 ‘맑고 깨끗하며 시원하다’는 뜻. 계곡물이 흐르고 오른쪽에 대숲을 끼고 뒤로 송림의 호위를 받는 산기슭에 제월당, 광풍각 등의 정자가 자리하니 그 이름 그대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속에 한 폭 그림처럼 녹아드는 정원, 그 곳이 바로 소쇄원이다.
소쇄원의 자연친화적인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연못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물고기를 위해, 계곡물을 바로 연못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대나무수로를 만들어 상온에서 물이 따뜻해진 후 떨어지도록 한 것이다. 행여라도 계곡물의 차가운 기운이 물고기들을 상하게 할까 배려한 마음 씀씀이가 참 곱다.
소쇄원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는 달빛도 쉬어간다는 ‘식영정’이 있다. 이곳은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표고 40여m의 언덕에 내려앉은 이 정자에 오르면 그 앞에 고요히 담긴 광주호 저수지가 한없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송강은 하늘에 뜬 달과 저수지에 잠긴 달, 술잔에 비친 달을 보며 노래했을 것이다.
이밖에도 죽림재와 면앙정, 송강정 등 산재한 조선시대 서원과 정자들도 담양 여행길에 한 번쯤은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문의: 담양군청 문화레저관광과(www.damyang.jeonnam.kr): 061-380-3150
▲가는 길: 대나무골테마공원(061-383-9291) : 담양톨게이트 지나 24번 국도를 타고 순창방면 약 5km 진행 후 석현교 건너 우회전 2km.
*메타세쿼이아길: 24번 국도 순창방면 2km 달린 후 군민회관 삼거리에서부터 순창군 접경까지 8km 구간
*관방제림: 29번 국도 따라 광주방면 - 887번 지방도로변
*소쇄원, 식영정: 담양읍에서 15번 국도 타고 남쪽으로 12km 달려 호남고속국도 지나 좌회전 후 고서면 소재지에서 887번 지방도 이용
▲숙박: 쪾담양리조트호텔(금성산성 입구/ 061-381-5000/ 숙박시 온천무료이용)쪾에버그린모텔 (061-383-5986), 추월산(061-381-1366) 로빈각(061-381-0207)
▲맛집: 쪾신식당(떡갈비/ 읍사무소 인근/ 061-382-9901) 쪾민속식당(죽순회/ 읍사무소 인근/ 061-381-2515) 쪾한상근대통밥집(대나무통밥/ 061-382-1999)